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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민족문학의 새 단계

3년 전 이맘때는 ‘독재타도’를 외치는 국민의 함성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었다. 도시마다 자욱한 최루탄 연기도 그 아우성을 어쩌지 못했다. 지금도 기억에 새로운 6월항쟁의 빛나는 날들이었다.

6월의 거리에서 나 자신이 해낸 몫은 극히 미미하였다. 개인적인 몸사림도 없지 않았지만, 『창작과비평』 57호라는 부정기간행물을 내고 폐쇄당했다가 겨우 소생한 출판사에서 또 한권의 ‘무크’를 엮어내는 일로 때마침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고심 끝에 『창비 1987』이라 이름 지은 그 부정기간행물의 머리말 원고를 써서 넘긴 날이 바로 6·29 직전 최후의 ‘국민대행진’이 선포된 26일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는 물론 항쟁의 귀결이 6·29선언이 될지 다른 무엇이 될지 예측할 수 없었고, 다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정세를 일일이 점치고자 애태우느니보다 좀더 긴 앞날을 내다보며 살피고 다지는 몫도 누군가는 맡아야 하리라는 뜻을 당시의 머리말에 피력하였다.

거의 3년이 지난 오늘의 상황이 그때처럼 긴박하달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땅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6·29 전보다 결코 못지않은, 때로는 그 이상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고, 이 사회에 무언가 극적인 변화가 없이 그대로 나가기는 힘들겠다는 난국설 또한 자자하다. 물론 6·29 이후로 군사독재가 철폐되었으니 무슨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들도 만만찮게 자리잡고 있다. 아마 이 점이 3년 전과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일 것이다.

이처럼 여전히 괴로우면서 옛날처럼 명료한 맛도 없는 세월에 『민족문학의 새 단계』라는 이름으로 네번째 평론집을 내놓는다. 구성이나 내용으로는 앞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이란 제목을 달았던 두권에 이어 그 3집이라 일컬음직하지만, 동일한 제목이 판매에 이롭지 않다는 출판사 측의 지적도 있어,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Ⅲ’은 부제로 돌린 것이다. 민족문학의 현단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문제는 70년대에 민족문학 논의가 본격화되면서부터 나의 관심사였고, 특히 광주 5월항쟁을 겪고 난 80년대에 와서는 줄곧 평단의 핵심적 논제 가운데 하나로 되었다. ‘5월’의 민족사적 의의에 충분히 유의하면서 동시에 문학적 성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민족문학의 새 단계를 언제부터 설정하느냐는 것이 논란거리였다. 이 책 서두의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도 1985년의 싯점에서 그 문제를 다룬 글인데, 표제와는 달리 아직 본격적인 새 단계라기에는 이르다는 논지였다. 6월항쟁을 거친 이듬해 가서야 나는 6월 이후 우리 문학이 드디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묻기 시작했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그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듯도 하고 아무것도 안 달라진 듯도 한 헛갈리는 세월이 작금의 3년이다. 거기에 ‘새 단계’의 명칭을 달아줌으로써 아직도 엄연한 반독재·민주화의 과제를 얼버무려서도 안되고, 87년 훨씬 전에 이미 새로운 민중·민족문학의 단계를 주장하던 성급한 논리에 뒤늦게 합류하는 꼴이 되어도 곤란한 것이다. 그러나 남한사회 내부의 민주화가 여전히 급선무라 해도, 분단극복운동 속에서 여타 과제들과의 연관이 달라지고 한결 긴밀해진 것이 6월 이후의 상황이다. 자주화의 진전 없이 민주화가 어렵다는 점은 광주에서도 이미 뼈저리게 배운 교훈이지만, 이제는 국제화의 현실 속에서 자주화의 구체적 의미를 매겨나가는 과제가 맡겨졌으며, 6공화국의 제한된 개량조치에 안주하지 않고 민주화를 위해 앞으로도 피땀을 쏟을 주체세력을 찾는 문제도 노동자계급의 경제적·정치적 요구가 표면화되면서 그야말로 실질적인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가 되었다. 게다가 북한사회에 대한 인식 문제도 당장의 민주화투쟁이 바쁘니 일단 보류하자거나 독재정권의 선전을 무조건 불신하면 된다는 식으로는 반민주진영의 한층 세련된 응전력을 못 따를 형편이다. 6월 이후 정권교체를 놓치고도 우리가 끈덕지게 얻어낸 것 또한 적지 않지만, 무엇보다 민족사적 과업의 복합적인 성격이 비로소 구체적으로 현실화되는 공간이 열렸다는 점이 6·29 이후의 가장 큰 새로움인 것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쟁취’든 ‘노동계급 주도성의 관철’이든, 이런 복합적 양상보다 더 간단명료한 그 어떤 고전적 기준도 좀체로 안 들어맞는 사회가 바로 우리의 분단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걸맞는 전반적 활기와 진전된 문제의식이 문학에서도 감지된다는 것이 ‘민족문학의 새 단계’를 들먹이는 취지이다. 그러나 문학에서 역시 이를 판정하는 기준은 국내의 작품생산만을 위주로 할 만큼 확실한 것이 못 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정확히 언제부터 새 단계가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어째서 우리의 분단시대에는 그러한 단계구분이 유달리 모호할 수밖에 없는지를 모호하지 않게 인식하는 일이며, 비평가로서는 구체적인 작품에 대한 정직한 반응을 근거로 그때그때의 정세에 대응하는 일이다. 대부분 1985년 이후에 쓴 글들을 여기 모아본 것은, 90년대의 우리 문학이 새로운 단계의 임무를 완수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제1부는 거의 편편이 ‘민족문학’이라는 낱말이 제목에 나오듯이, 민족문학운동의 이념정립에 기여하면서 민족문학의 현단계를 구체적으로 짚어보는 노력을 다분히 명시적으로 수행한 글들이다. 또한, 본격적인 작가론·작품론을 따로 써내지 못한 나로서는 한국문학에 대한 실제비평을 주로 이런 식으로 해온 셈이다. 이렇게 모아놓고도 전혀 푸짐한 느낌이 안 드는 것이 아쉬울 뿐, 실제비평과 이론비평에다 더러 시국론까지 뒤범벅이 된 문학평론들이 이 책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데 대한 후회는 없다. 또한 이들 문건 중 대부분이 80년대를 통해 ‘소시민적’ 입론으로 꼬리표가 붙여진 데 대해서도, 본문에서 충분히 드러날 터이므로 따로 변명을 않겠다. 우리 사회와 문학을 아직도 알게 모르게 지배하고 있는 소시민적 세계관을 극복하려는 이 문건들 나름의 노력이 더욱 줄기차고 힘차지 못했던 것은 나 스스로 반성하여 시정할 일이나, 90년대에는 민족문학론을 둘러싼 논쟁도 새 단계에 걸맞는 실질을 획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제2부에는 서양의 문학을 어떻게 주체적으로 읽을 것인가에 대한 ‘교양적’인 글들을 실었다. 네편 모두 비슷한 제목으로 각기 다른 청중을 상대로 행한 강연을 토대로 한 것이어서 다소 중복되는 내용이 있음이 민망스럽다. 그러나 일정한 되풀이를 감내하면서 동시에 일정한 논의의 진전을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임을 변명하고 싶다.

제3부야말로 많은 변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 빈약한 모듬의 그 어느 한 품목도 본격적인 작가론이나 작품론으로 쓴 것이 아닌 소품들임을 먼저 밝혀야겠다. 그리고 제1부까지 합쳐도 국내 작품들의 구체적인 논의가 뜻한 만큼 풍성치 못했음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이고 싶어진다. 정성과 기운이 모자란 점은 물론 변명할 길이 없다. 다만 나로서는 영국소설 분야의 작가론·작품론 역시 민족문학적 작업의 일부로 치면서도 아직껏 한권 분량을 못 채워서 젖혀둔 상태이고, 아울러 계간 『창작과비평』 복간 이후로는 본의 아니게 편집위원 중 문학 이외 분야 전담위원 비슷이 돼버리는 통에 문학평론가의 주임무를 더욱 소홀히하게 되기도 했다. 90년대에는 나 스스로도 분발하고 동지들의 협력도 얻어 좀더 나은 성과를 올려보고자 한다.

제4부의 내용은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라는 또다른 졸저의 제목에 더 걸맞을지 모르겠다. ‘이론비평’이라는 딱지가 붙을 법도 하고 엄밀히 따져 ‘문예비평’이 아니랄 수도 있다. 동시에 본격적인 학술논문이 아닌 것만은 저자로서 확언할 수 있다. 해당 주제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섭렵을 전제하는 학술논문으로서의 요건을 처음부터 갖출 시도조차 안했으려니와, 나로서는 민족문학운동의 그때 그 지점에서 긴요한 쟁점을 어디까지나 일반 독자들과 진지하게 의논한다는 평론가의 자세로 임한 작업들인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단편적인 대신, 본서의 나머지 부분들과도 이어지는 일관된 평론작업일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80년대 들어 유행한 표현을 빌린다면 이런 글들도 ‘장르 확산’의 한 예가 될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전 평론집들과 마찬가지로 여기 실린 글 역시 모두가 그때 그곳에서의 발언이라는 성격이 짙은 만큼 발표 지면과 연도를 매편 끝에마다 밝혀놓았다. (중간표지에는 집필연도를 표시했기 때문에 더러 어긋나는 수도 있다.) 내용 역시 부분적인 표현들을 손질했을 뿐 당시의 논지를 그대로 두었고, 꼭 필요하다 싶은 경우에는 덧글을 달거나 괄호 안에 별도의 주를 붙였다.

끝으로, 이 책이 진정 명분 없는 또하나의 간행물이 안 되어야 될 터인데라는 조심스러운 마음과 더불어, 저서 하나를 더 내는 기쁨이 염치불고하고 나선다. 이거나마 가능하기까지는 여러 사람들의 은공이 있었고 그 점에서 나는 꽤나 복이 많은 인간이라는 생각이다. 머리말을 마치며 특별히 떠오르는 얼굴들 가운데는 가까운 식구도 있고 벌써 유명을 달리한 친구도 있으며 고맙게도 여전히 동시대를 숨쉬고 사는 선배·동료도 있다. 그들의 이름을 굳이 열거하지는 않겠고, 단지 이 책을 펴내주고 여기 담긴 작업의 요긴한 일터를 늘상 마련해준 창비사의 여러 벗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뜻을 전하며, 편집·교정의 과정에서는 김이구형의 수고가 남달랐음을 덧붙인다.

1990년 6월
지은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