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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

우리 사회의 인간해방운동이 아직껏 그만그만한 성과밖에 못 올리고 있는 까닭의 하나는 우리의 노력이 아직도 충분히 논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 충분히 민중적인 것이 못되고 있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얼마전에 읽은 어느 외국 학자의 말 가운데, “학자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활에서는 논리에 어긋나면 생활이 안되기 때문이다. 학자는 논리에 어긋나고도 월급을 탈 수 있지만, 민중은 논리에 어긋나면 당장에 굶어죽기 때문이다”라는 표현에 나는 깊은 공감을 느꼈다. 민중생활의 논리만큼 어김없고 분명하며 삶의 진실 그대로인 글을 써보는 것이 문필업으로 나선 한 사람으로서 나의 꿈이기도 하다.

그러나 ‘논리’라고 하면 어렵고 까다로운 것, 민중과는 일단 떨어진 지식인들의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퍼져 있는 것 같다. 그만큼 민중생활의 논리는 아직껏 말과 글로 충분히 표현되지 못했고, 말하고 글쓰고 생각한다는 사람들은 자기네만 알고 자기네만 알아서 편리한 이야기를 하는 데 몰두해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어김없이 “월급을 탈 수 있”도록 해준 ‘생활상의 논리’였던 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인간해방의 논리’, 곧 논리라는 이름에 값할 보편성을 띤 논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런데 어차피 이런 거짓논리가 휩쓸다시피 된 세상에서 지식인으로 자리잡고 보면 참논리의 명료함에 다다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자기의 주변뿐 아니라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까지 스며든 논리의 혼란을 인식하고 정리하는 번거로운 작업이 선명한 마음의 결단과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의 글이 때로는 어렵다는 말을 듣는 데 대한 하나의 변명일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떤 글의 어려움 가운데는 주어진 현실의 왜곡작용들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어려움도 들었다고 나 자신은 믿고 싶고, 또 더러는 어려움 끝에 비교적 분명하고 알기 쉬운 글이 된 예도 전혀 없지는 않기를 바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해방의 논리 자체가 갖는 평이함과 생생한 실감에는 너무나 못 미치는 것을 지금의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글공부가 모자라는 것도 모자라는 것이려니와, 민중생활의 현장에서 아직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출간이 또한번 반성과 전진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빌 뿐이다.

두번째 책을 내면서의 심경은 이런 것이지만 출간의 계기 자체는 그만한 생각조차 없이 이루어졌다. 첫 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을 문학평론서로 꾸미다보니, 같은 기간에 썼던 좀더 일반적인 성격의 글들은 그 분량이나 질도 변변치 않았지만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것들을 새삼 모아서 고르고 거기다가 최근에 쓴 몇편을 덧붙여 한 권의 책을 만든 것은, 시인사 조태일형의 끈질긴 추궁과 나 자신의 못난 욕심이 어느 틈에 맞아떨어지고 만 결과이다. 이미 평론집을 하나 묶어낸 사람으로서 이제는 한 권의 저서다운 저서를 내놓는 것이 좀더 떳떳할 줄 알면서도, 첫번 것과는 성격이 약간 다른 평론집이라는 핑계로 우선 이렇게 정리해보았다.

제1부에는 지난 6년간에 걸쳐 행한 몇몇 강연의 원고와 비교적 짧은 글들을 모았고, 제2부는 최근에 쓴 상호연관된 세 편의 논문이다. 1·2부 모두에 문학 이야기가 상당히 나오지만 대체로 일반적이고 ‘계몽적’인 성격이고, 전문적인 문예비평에 해당되는 글들은 넣지 않았다. 책으로 묶어내는 기회에 부분적으로 조금씩 손질을 하기도 했다. ‘부록’의 좌담은 독자의 흥미를 위해 문자 그대로 뒤에 달아놓은 것이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오래된 토막글 몇개만 빼고 전부가 1975년 5월의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이후에 국내 정기간행물에 발표되었던 것들이다. 또 그렇게 발표될 수 있도록 썼던 글들이다. 자신의 모자라는 용기와 역량을 무슨 외부적인 제약에다 돌려댈 생각은 없지만, 이 세월을 함께 살아온 독자들에게는 동시대의 저자로서 남다른 애정과 이해를 부탁해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다. 저자의 모자람에 대해서는 그만큼 더 호된 꾸짖음을 내려주기 바란다.

책을 내주시는 시인사 여러분들, 이런 책이나마 지어낼 수 있도록 그동안 이끌어주고 북돋아주신 여러 선배·친구 들과 ‘창비’ 편집·업무진의 벗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드린다.

1979년 8월
지은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