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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록] 작가 선우휘와 마주 앉다: 문학의 현실참여를 중심으로

선우휘(작가, 조선일보 편집국장)

백낙청(문학평론가, 서울대 문리대 전임강사)

1968년 1월 26일 사상계사 회의실

*이 대담은 월간 『사상계』 1968년 2월호에 「작가와 평론가의 대결-문학의 현실참여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것이다.

백낙청 오늘 선우선생님을 모시고 말씀을 나누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문학의 현실참여에 관해서는 그간에 여러가지 얘기가 있었고 특히 지난해 연말께 되어 세계문화 자유회의 쎄미나에서 ‘작가와 사회’ 토론이 있은 이후로 여기저기서 논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우선생께서도 관심을 많이 표명하신 것 같은데, 여러가지로 얘기가 얽히기는 하였습니다만, 제가 읽은 바로는 선생님의 주장은 문학이라는 것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좋은 의미의 장난 비슷한 것이고 어떤 행동의 도구가 될 수 없는 것이라는 요지의 말씀이었고, 또 요즈음 지식인이나 문단의 풍조에 대하여 몇 가지 의구심을 표명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특히 한 가지 꼬집어서 하신 주장은 한국의 현 실정에서 싸르트르(J.-P. Sartre)를 추종하는 작가의 현실참여라는 것은 결국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었지요. 따라서 참여문학을 말하는 사람들이 싸르트르를 추종하지 않는다거나 추종하더라도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달하지 않는다는 선명한 답변을 요구하셨는데요. 아직 거기에 대하여서 답변을 못 받으신 셈이죠?

선우휘 네.

백낙청 저는, 제 자신이 싸르트르의 추종자라고 생각지를 않으니까 제가 구태여 답변을 한다는 것이 우습습니다만, 저도 개인적으로 그의 문학이나 문학이론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데 대해서 저의 해명을 시도해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싸르트르의 문학이론이라는 것은 오히려 선우선생님의 이론, 다시 말해서 문학은 도구가 아니고 어떤 면에서 일종의 장난이다 하는 그런 이론하고 오히려 부합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싸르트르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규정한 바에 의하면 문학의 본질은 자유(自由)라는 것입니다.

그 자유란 어떤 행위의 도구가 될 수 없고 어디까지나 작가의 내면적인 자유에서 나와가지고 또 읽는 사람의 자유에 호소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문학이라는 것하고 연장 혹은 도구하고를 싸르트르가 아주 명백히 구별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연장이라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들의 자유에서 주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장도리나 해머를 가지고서 궤짝을 만들 수도 있고 사람을 때릴 수도 있고 집을 지을 수도 있다는 거지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무엇무엇을 하기로 한다는 어떤 가정을 한 후에 그 가정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결정되는 것이고 그 연장 자체가 우리들의 자유에 호소한다거나 우리의 자유를 표현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거기에 비해서 문학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자유의 행사이고 너그러움의 행사다, 이런 말도 하는군요. 그렇기 때문에 도구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것하고 싸르트르 개인의 정치적인 견해라든가 또는 그의 행동강령하고는 어떤 연관이 지어지는가 생각해볼 때, 첫째로는 문학의 본질이 자유니까 문학은 자유에 대한 억압을 물리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속박에 대한 하나의 반항(反抗)이 된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자유로워야지 문학을 할 수 있고 독자도 자유로워야지 그 문학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런 문학의 가치를 주장하고 그런 문학을 만든다는 것이 곧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 및 저항과 직결된다는 것이지요. 특히 싸르트르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도구화하는, 그가 살고 있는 기존사회 즉 서구 자본주의사회를 부인하고 한층 자유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노력이 안되려야 안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문학이론의 일부로서 참여론(參與論)이 있는 것 같고, 또 하나는 문학이라는 것은 일종의 장난이니까 사태가 급할 때는 그런 장난은 집어치우고 차라리 망치나 총칼이라도 들고 나서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하는 식의 발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오히려 문학이 장난이라는 이론에 입각해서 문학을 경시한다고 할까 그런 입장으로 발전하는 듯도 합니다.

한국의 지식인의 입장에서 볼 때 저는 우선 싸르트르가 문학의 본질이 자유며 도구가 아니고 바로 그런 속성 때문에 문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현실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밝혀준다는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의 문제로서, 그러면 기성사회를 어떻게 보느냐, 그리고 이 사회를 좋은 의미에서 부정하고 지양하는 것이 과연 프롤레타리아혁명을 통한 공산주의사회의 실현인가, 이런 문제에 도달하게 되면 싸르트르 자신도 과거에 분명히 선을 그은 바가 있습니다만 설사 싸르트르가 안 긋고 있는 경우에도 우리 스스로가 그으면 그만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제 식으로 이렇게 싸르트르에 접근할 때에는 싸르트르의 문학이론 즉 그의 참여문학론에서 출발하면 프롤레타리아혁명에 필연적으로 도달한다 하는 말은 나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선우휘 사회참여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떠들어진 지는 오랜데 작년 말에 있은 하나의 쎄미나가 또 한번 격발작용을 일으켰어요. 불연속선처럼 이어져왔어요.

한때 떠들어지다가는 또 잠잠해지고 잠잠했다는 또 일어나고, 그 불씨가 꺼질 것 같다가는 다시 일어나고 하는 과정을 밟아왔는데, 문학의 사회참여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늘 싸르트르가 문제되는 것은 싸르트르를 중심으로 한 실존주의 문학을 받아들인 때에 아울러서 그 참여론을 받아들인만큼 그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물론 여러가지 참여방식에 있어서 참여는 싸르트르의 독점물이 아니다, 다른 참여론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에는 6·25 당시 부산 피난지에서 실존주의라는 것이 단편적으로 소개되었고 그후 이것이 여러 사람들의 연구대상과 관심거리가 되면서 거기에 따르는 사회참여의 얘기가 이제 말씀드린 것처럼 불연속선처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뭘 그걸 새삼스럽게 논의하느냐 하지만은 이게 결국은 한번도 정리를 하였다 할까 결론을 얻지 못하고 내려온만큼 이제 어떤 정리랄까 결론을 얻지 않아서는 이것이 10년도 갈 수 있고 20년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두 차례 단편적으로 발표한 저의 의견이 싸르트르의 도구가 아니다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하나의 장난이란 것과 도구설을 곁들여서 위급할 때에는 장난 같은 것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냐는 싸르트르의 의견을 말씀하는데 그 점은 저도 대체로 찬성입니다. 싸르트르가 언젠가 후진국, 말하자면 저개발국가 같은 데서 달리 할 일이 많은데 예술은 무슨 예술이냐 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견에 저도 공감을 느끼는데 제가 말하자면 장난이라고 한 것은 단순히 어린애 장난이라는 것이 아니지요.

말하자면 인간의 생존의 기본적인 의식주로 따질 때에는 역시 문학이라는 것은 그 다음에 가는 문제가 아니냐 그런 식으로 보면 배부른 후의 문제라고 할까 먹고 입고 난 뒤에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할 때에 이것을 장난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또 이 장난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생존조건이 갖추어진 연후에는 오히려 그것밖에 할 것이 없다고 보는 그런 뜻의 장난입니다. 그렇게 볼 때 문화전반의 활동을 장난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한 사회의 이상(理想) 상태는 문학의 사회참여를 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어야 합니다. 장난으로만 문학을 할 수 있는 상황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싸르트르를 추종하는 경우에 프롤레타리아혁명까지 갈 수 있다는 의견에 동조한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제 나름으로 그 하나는 무엇인가 하면은 공산주의체제에 있어서는 프롤레타리아혁명까지 가느냐 안 가느냐는 문제가 안되니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공산주의적 사회체제에서 논해지는 거다. 또 하나는 사회참여의 형태가 여러가지 있지만은 싸르트르를 끝까지 (이 점이 중요합니다) 추종할 때에 프롤레타리아혁명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싸르트르가 표명한 실존주의 철학이라든가 또는 그의 문학관을-그는 분명히 문학이 어떤 정치의 예속물이어야 한다든가 하는 얘기는 물론 않고 있습니다. 그의 저서에 나타난 한 공산주의와는 일선을 긋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근래 싸르트르의 어떤 정치적 발언이라든가 사회적 활동을 볼 때에는 반드시 그렇게 볼 수도 없지 않느냐 하는 의문을 느낍니다. 싸르트르가 실존주의 철학이나 문학관에서 표방하던 초기의 의견이 그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그것은 싸르트르 자신이 말한 것처럼 제2차대전 이후에는 한국전쟁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렵에 프랑스에서 있었던 공산당에 대한 탄압, 이 문제가 있었고 그 다음에 싸르트르가 장편 『자유의 길』을 쓰다가 결국 중단을 하였는데 중단의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싸르트르가 공산당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렇기 때문에 자기는 집필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가장 최근에는 그가 자기의 문학관이나 행동철학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 재작년에 보부아르(S. de Beauvoir)와 함께 일본에 와서 두 달 동안 강연도 하고 좌담회도 하고 하는 그때에 표명되었는데, 이때 그는 분명히 강연회에서도 그랬고 질의서에 대한 문답에서도 작가에게 기초를 주어야 하는 것은 맑시즘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명백히, 그리고 결국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새로운 어떤 가치를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은 맑시즘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 사람이 그 초기에 나타낸 경향과는 달리 우리가 말하는 좌경적으로 그것도 단단히 좌경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볼 때 만약 우리의 작가들이 싸르트르의 문학관 동조에서부터 시작해서-물론 문학이론 그 자체에만 국한되고 싸르트르의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안 따라간다면 모르지만, 그건 논리적으로도 아주 불가능한 일일 줄 압니다.

그러니까 싸르트르를 끝까지 충실하게 추종하게 되면 결국 프롤레타리아혁명까지 가는 것이 아니냐, 말하자면 그가 작가의 역할을 기존사회의 모순을 파헤쳐야 한다는 데 둔다고 할 때 그러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무엇이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백낙청 네. 그러니까 싸르트르의 문학이나 문학관을 우리가 비판적으로 소화해서 받아들이지 않고 요즈음 특히 좌경하고 있는 싸르트르의 모든 행동을 우리 지식인들이 맹종한다면 우리 지식인들도 그에 못지않게 좌경하리라는 것은 명백한 논리적 귀결이겠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다른 작가나 사상가보다 싸르트르의 경우에서 우리가 그의 작가로서 및 사상가로서의 특징을 알아가지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싸르트르가 전세계의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그중에 하나는 싸르트르는 복잡한 정치적·역사적 문제들을 아주 선명하게 도식화하는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선우선생님께서도 싸르트르의 정치적 발언 같은 것을 ‘주책’이라는 말로 특징지으신 적이 있는데 싸르트르는 어마어마하고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다루는 사람으로서는 과연 주책스러울 정도로 사태를 선명하게 처리하고 도식화하는 재능이 있고 바로 그 때문에 지식인들에게 특히 어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일단 ‘주책’이라는 말을 들을 법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싸르트르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것을 그 특유의 하나의 방법론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싸르트르는 좀 역설적인 얘기 같지만 끊임없이 주책을 떪으로써 자기 나름으로의 성실성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고, 우리가 주책스럽게 보는 언동의 끊임없는 연속이야말로 그로서는 하나의 구도자(求道者)다운 행적, 쟝 쥬네(Jean Genet)를 두고 한 그의 유명한 구절을 빌린다면 ‘순교자(殉敎者)이며 희극배우(喜劇俳優)’다운 자세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싸르트르의 이러한 면모에 대한 통찰이 전연 없이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그야말로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서 우리 사태에 적용한다고 하면 싸르트르 자신도 아마 웃고 말겠지요.

선우휘 네. 그 점 저도 동감입니다. 이제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의 그런 언동에 대해서는 주책스러울 만큼 하는데 그것은 자기도 잘 알고 할 것이다. 말하자면, 보통 사람도 어떤 계산이 있는데 계산이 전연 없다고 생각하면 싸르트르를 어떤 도학자처럼 보는 흠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경력을 보면 제2차 세계대전 때에 기후 측정병인가 아마 그런 병역에 종사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후에 포로가 되었다가 독일점령지구 안에 남아서 그 사람이 한 것이 물론 저항운동입니다. 심야총서 같은 데 희곡도 써서 발표했던 것 같고 그중에 한 가지는 그 독일점령 하에서 그렇게 방대한 서적이 아무 거리낌 없이 발표된 것은 그 사람이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를 많이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결국은 독일점령 당국도 그것으로 넘어가고 만 거지요. 이러한 것을 볼 때 그후 이 사람의 정치적 발언에 있어서도 심지어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그 자체도 그 뒤에는 어떤 단순치 않은 의도가 있었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싸르트르 그 사람에 대하여서는 탓할 것이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싸르트르는 프랑스라는 데서 태어나서 프랑스 문화의 전통 속에서 자랐고 그 정치정세 속에서 그 사람 나름으로 어떤 정치적인 안목이 생기어서 그 사람이 어떤 발언을 하건 어떤 행동을 하건 자기 나름의 성장의 과정을 밟아서 된 것이니까 우리가 그것을 나무랄 것은 조금도 없지요. 그와같은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문학인이나 지식인들이 싸르트르를 전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지식인은 우리의 지식인대로 싸르트르와는 달리 태어난 곳이 한국이고 또 한국의 문화적 전통과 정치풍조에서 자라고 또 프랑스와 다른 특유한 상황의 연속 속에서 살아왔다면 마땅히 그것은 싸르트르와는 달라야 되겠어요. 물론 지식인의 어떤 보편성이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지만은 일종의 독자성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 또 한국의 문학인이나 지식인들이 어떤 특이한 독자성을 나타낼 때에 역설 같습니다만은 보편적인 어떤 공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백낙청 이제 그 ‘장난’이라는 말로 되돌아가보지요. 아까 잠깐 설명하셨습니다만, 저도 선생님이 문학이 장난이라고 쓰신 것을 읽었을 때 물론 선생님이 아무 장난이나를 얘기하신 것은 아니고 특수한 의미로 쓰셨다는 것은 짐작이 갔습니다. 그러나 약간 놀랐다고 할까요, 의외로 생각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지금 현재 문화풍토에서, 특히 적어도 한동안은 주도권을 잡고 있다시피 한 문인들 가운데서, 문학을 모든 현실적인 문제하고 절연시켜서 작가의 시민으로서의 상식적인 책임감 같은 것은 물론이요, 문학 자체가 어떤 현실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고 문학 나름으로 그와 대결해야 할 필요성조차 전혀 외면하는 경향이 널리 퍼져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제가 알기로 선생님은 문학인으로서나 언론인으로서나 그러한 경향과는 달리 활약해오셨는데 갑자기 장난이란 말을 들고 나오시니까 선생님의 본의 아니게나마 우리 문단의 고질과 같은 경향을 오히려 보강하는 결과가 뒤따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선우휘 이제 장난이라는 말에 대하여 좀 해명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 장난이라는 말이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이긴 합니다. 그런데 제가 문학은 좋은 의미의 장난이다 한 것은 이제 우리의 비근한 예를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19가 터졌다 하면 문학인이나 문학활동이라는 것이 거기 무슨 기여를 할 수 있느냐, 또 6·25 같은 전쟁이 터졌다, 이때에 소설가나 시인이 거기에 직접적으로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문학은 그런 경우에 무력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눈앞에 보고 문학이 당장에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문학은 인간 생존의 아주 기본적인 일면에서는 효용성이 없습니다. 한 편의 소설이 시민생활에 주는 효용성은 모기약의 설명서만 못하고 한 편의 시는 어떤 정치적인 집회에서 외치는 한마디 구호만도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문학의 가치를 낮게 여긴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문학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장차 인간의 기본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인간이 할 일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예술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럴 때 문학은 장난이라는 의미에서 벗어나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작업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장난이란 말을 무슨 어린애들 장난처럼 오해하는 것은, 오해하는 그 사람이 단순한 탓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의 문학인들이 문학은 장난이라는 생각에 철해주었으면 합니다.

백낙청 네. 물론 정말 무의미한 장난 이야기였다면 선생님께서 문학은 장난이다라고 구태여 그렇게 강조하지도 않으셨겠지요.

그런데 지금 인간의 모든 기본적인 요구가 충족되었을 때 이것이 가장 함직한 장난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거기에는 물론 동감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어떨까요? 물론 아주 시급한 경우, 당장 굶어죽는 경우에는 문학이 쓸 데가 없고 당장 누가 총을 들고 쏴 죽이러 오는데 셰익스피어를 가지고 막아봤자 막아지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꼭 그런 위급한 순간의 연속만은 아니고 그렇다고 이런 모든 위급한 문제가 해결되었을 미래라는 것은 너무 요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극단적인 위기와 상대적인 평안이 뒤범벅된 지금 현실에서는 문학이 장난으로서든 아니든 어떤 기능을 가져야 할까요?

선우휘 글쎄.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문학에서 사용하는 것은 일상용어 아닙니까.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일상용어를 구사하는 것이 문학인데 그렇게 언어로 따져볼 때 문학과 관계지을 수 있는 다른 사회과학 분야, 즉 정치학이나 경제학이나 사회학 등 지식의 전문화라 할까 세분화랄까 그로 말미암아 17세기 인문주의 시대처럼 일상용어로써 모든 것을 표현하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럼 오늘날 문학은 무엇을 하여야 되느냐. 그건 일상어의 사수일 줄 압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할 일이 있다고 봐요. 하나는 문학이 다른 지식에게 빼앗긴 용어, 그 용어의 가치를 좀더 높여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문학은 정치학이나 경제학이나 사회학과 다르다는 것, 그러니까 경제학이나 정치학이나 사회학이 하지 못하는 문학만이 할 수 있는 분야를 확인해야지요. 그러면 문학은 이데올로기의 부연도 아니고 사회학의 하나의 방편이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 뚜렷해집니다. 거기서 문학의 뜻은 더 커집니다. 지식의 세분화로 말미암아 현대인이라는 것이 종합적인 어떤 사고와 통찰을 못 가지게 되는데 누가 해야 하느냐 하면 그것은 문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문학이 이것을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 이것은 앞으로의 큰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문학은 어떤 장난이기는커녕 도리어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백낙청 근래 신문에 쓰신 글에서도 대개 그런 생각을 피력하신 것으로 압니다. 동시에 요즈음 문단의 풍조니 그런 것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구심을 표명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중에 제가 한 가지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어 이 자리에서 털어놓겠습니다. 선생님이 쓰신 용어 가운데 ‘사회과학파’라는 명칭이 있었지요. 거기에 젊은 평론가들을 한데 묶어서 비판하신 것 같아요, 제 인상으로는. 그런데 저는 거기에 상당히 불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는 실제로 제가 알기로는 하나의 파(派)라 할 것이 없는데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되고요, 또 하나는 ‘사회과학파’라는 말이 사실은 분명한 뜻이 없는 것 같아요. 제 자신의 경우 평론을 하면서 사회과학적인 지식을 빌려 써보려고 한다거나 또는 사회과학적인 접근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첫째 문학활동도 여하튼 한 가지 사회활동이니까 문학활동 하는 사람이 문학활동이 무엇인지, 사회활동으로서 문학이 어떤 것인지를 좀 알도록 하자 그런 것이고, 또 하나는 이제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이 현대사회의 복잡한 세계를 문학이 정리하고 종합하려면은 그것은 물론 작가가 피부로 느끼고 상상력을 통해 재창조하는 것이 제일 긴요한 일이지만 이것이 어느정도 지적(知的)으로 정리가 되어야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에서 우리의 복잡한 삶을 지적으로 정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가 사회과학적인 탐구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주장은 어디까지나 사회과학과 문학이 다루는 모든 분야의 상호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사회과학적인 지식이 문학에 도움을 주고 또 문학은 사회과학에 도움을 주도록 해나가자는 것인데요, 이것은 하나의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가나 평론가가 이런 상식을 받아들이고 있느냐 안 받아들이고 있느냐, 또 어떤 사람이 말로는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하면서 사실은 그것을 정말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거기에 관련된 전문용어나 휘둘러서 행세를 하려는 거냐, 또는 사회과학적인 통찰과 식견에서 문학을 위한 도움을 얻어오는 것이 아니고 문학을 사회과학의 한 종속분야로 예속시키려는 것이냐, 이런 것을 가려내는 것이 정말 문제의 촛점일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 사회과학적 지식이나 방법에 대해 상식적이거나 몰상식적인 관심을 갖는 일체의 문인들을 ‘사회과학파’로 묶어버리면 이것은 문제규명에 전연 도움이 되지 않는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선우휘 이제 그 점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죠. 지금 사실 우리나라 문학의 주류가 무어냐 하면 분명치가 않은데 어떻게 보면 아직도 상당히 샤머니즘적인 흐름이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일례를 들면 어떤 작품에 토속적인 것이 나오는데 무당이 굿을 해서 나오는 괘와 한의사의 진맥에서 나오는 처방이 같다던가 말예요. 현대의 어떤 예리한 두뇌나 전기계산기나 알아낼 만한 것들이 무당의 괘에서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입니까. 이런 경향의 문학이 상당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사회과학파란 막연한 용어이지만, 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모든 지식을 섭취한 위에 문학을 보다 풍족하게 한다 하는 경향은 하나의 긴급한 과제라고 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이의가 없어요. 그런데 제가 거기에 대하여서 어떤 의구를 느끼는 것은 그런 가운데 아주 생경한 술어가 많이 튀어나오는 점입니다. 일례를 들면 어떤 단편 하나를 놓고 얘기하는데 ‘보수반동적이다’라고 단정하는데 이런 평론은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 생경한 용어를 나열하면서 사회에 대한 어떤 관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것은 좋지만 보수반동적이란 용어를 사회과학의 전문용어가 갖는 뜻으로 쓰고 있다고 할 때, 그와 반대되는 용어를 내세우는 것이라면 그저 들어 넘길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1920년대의 카프문학의 용어구사와 상통되는 점이 있어요. 그러나 그때의 상황이나 시대조류로 볼 때 당시의 카프문학은 그럴 만한 충분한 존재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해볼 만했어요. 그러나 해방 후 우리는 좌우익투쟁이라든가 6·25 같은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또 상당수의 작가와 시인들이 해방 직후에 이북으로 넘어갔는데 그럼 그 사람들이 그후 어떻게 되었는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박헌영(朴憲永) 일파의 숙청선풍에 휩쓸려 죽음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태준(李泰俊)이 같은 사람은 시골에 있는 작은 인쇄공장에서 교정을 보기까지 낙박(落泊)했습니다. 그런 생생한 경험을 알고도 우리 문학인들이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거기 안주한다면 그것은 역사에서 아무 교훈도 못 받았다는 탈을 면할 길 없어요.

그래서 싸르트르의 경향, 그러니까 그의 초기의 문학이론이 어떻든 현재까지에 이른 변화의 과정이라든가 현재 그가 표방하는 행동철학으로 볼 때 사회과학적인 관심이 깊은 우리 문학인들이 싸르트르를 추종한다는 것에 위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어요.

제가 그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라는 글을 두 차례 발표하고 난 뒤에 이런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선우휘씨는 너무하다, 우리가 이 상황 하에서 더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럼, 이 상황에서 말 못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쉽사리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입니다. 그러면은 이 문제를 저는 기회 있으면 당국에도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적어도 문학의 세계에서만은 모든 문제를 웬만큼 표면화해서 토론하여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제 말은 지금 이 나라의 정치상황이 그런 문학적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으니까,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이질적인 문학이론이 나와서 그것과 어떤 대화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만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 이것을 따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여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이 정치상황이 이렇다, 그러니까 할 말도 못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당신은 매카시즘적이 아니냐? 그래서 내가 그럼 ‘너는 빨갱이가 아니냐?’……

이렇게 되면 문학토론도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승강이가 되어버려서 피차가 지적으로 빈곤하다는 것밖에 드러낼 것이 없습니다.

백낙청 그런데 그 선우휘씨 너무하다, 이 상황 하에서 우리보고 무슨 말을 하라고 하느냐, 하는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또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세 가지 경우를 저는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말할 것이 정말 어마어마한 게 있어가지고 말하게 되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말 못하는 경우가 있겠는데, 그런 경우가 정말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그 경우를 여기서 대변할 필요는 없구요. 또 한 가지 경우는 사실은 말할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표현의 자유가 다분히 제한되어 있으니까 그것을 기화로 내가 자유만 있다면 굉장한 것을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자유가 없어서 못한다라는 식으로 행세하려는 친구들의 경우인데, 아마 이런 사람들의 수도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 역시 제가 여기서 대변해줄 필요는 없는 것인데, 그밖에 제3의 경우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이 상황에서 응당 말해져야 하고 또 실상 말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으로서 현실적인 여러 제약도 없지 않고 또 오해를 받을까봐 필요 이상의 겁도 집어먹고 있어서 말을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을 겁니다. 지금 선우선생님도 당국에 당부를 하시면서, 우리가 적어도 문학에 있어서만은 모든 문제를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아직은 어느정도 하나의 이상론이요 당위론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선생님이 무슨 문제를 제기하신 데 대해 그것을 곧 매카시즘적이다라고 나오는 것은 선생님의 의도를 오해하고서 토론이 더 진전할 여지가 없게 만드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문제에 부닥쳤을 때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매카시즘 공포증에 걸리게 되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는 해야 할 문제일 듯합니다.

그리고 이제 카프시대 얘기를 하셨는데, 요즘 냉정하게 카프시대를 돌이켜보면, 그것을 하나의 시도로서 어떻게 평가하느냐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나온 몇몇 작품들을 어느 정도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별문제로 치고, 실제 그 당시의 비평적 발언 같은 것을 읽어보면 상식 이전의 얘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유명한 얘기입니다만, 팔봉(八峰) 김기진(金基鎭)이 문학이라는 것은 일종의 건축인데 집을 지으려면 서까래도 있고 기둥도 있어야지 뻘건 지붕만 갖다놓고서 그걸 어떻게 집이라고 하겠느냐, 하는 정도의 심히 온당한 주장을 했다가 날벼락을 맞고서 그 동네에서 쫓겨날 뻔한 일이 있었지요. 이런 것이 상식 이전의 일이라는 것은 지금쯤은 어느정도 널리 인정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상식 이전의 사람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나 있는 법이고 지금 선생님이 지적하신 투의 난폭한 평론을 하는 평론가들이 있는 것은 제 자신이 알고 또 개탄하는 바입니다만, 이 문제에 관해 한 가지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선 카프시대하고는 시대가 달라서 우리가 옥석(玉石)을 분별하려고 노력하는 한, 이런 사람들이 절대로 그때처럼 문단 전체를 휩쓸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이고요, 또 하나는 이런 난폭한 평론이 횡행하는 이유로는 이 사람들의 개인적인 잘못도 있겠지만 이런 방향으로의 토론이 너무 오래 억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관한 온당한 비평이 자라날 소지가 없었고, 심지어 이런 문제에 언급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슨 대단한 투쟁이나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남에게도 줄 수 있고 스스로도 도취감을 맛볼 수 있게 되어버렸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선우휘 아 그건 있지요. 그러니까 문학인은 남의 자유를 얘기하기 이전에 자기 자유를 획득해야 될 것입니다. 생활이 어려울수록 더 용기를 가지고 발언을 해야지요. 아니 그건 용기가 아니고 당연한 것이죠. 그것이 바로 참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니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 하는 따위의 뒷공론만 하는 것은 분명히 도피경향이지요. 그러자면 아예 말을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일제시대만 보세요. 춘원 이광수(李光洙)는 나중에 가서 친일행동을 해서 규탄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무언가 정면으로 현실을 받아들였어요. 그 나름으로 발언하고 반항했습니다.

그 당시 전혀 발언 않고 침묵을 지킨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자제도 하나의 태도표시이긴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도피한 것도 사실입니다. 해방 직후만 하더라도 당시 문학동맹이라 해서 이북에 간 임화(林和)나 김남천(金南天)이가 주동을 하여가지고 좌익적 문학이론이 아니고는 거의 잡지나 신문에 글 한 줄도 쓰지 못했어요. 그후에 상당수의 문학인들이 이북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여기 남아 있던 사람들이 이럭저럭 문학활동을 해오다가 6·25가 났습니다. 6·25 때는 물론 종군 작가단이란 게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참가는 했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은 주로 부산에 있으면서 꼼짝을 안했어요. 그렇다고 저는 작가들이 군복이나 걸치고서 일선으로 나다녀야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이념이야 어떻든 자기는 전쟁이라는 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에 전쟁을 외면한 것이라면 그 나름의 절실한 작품이 나왔어야 합니다. 죽도 밥도 아닌 것이 질색입니다. 자유당 말기에 있어서도 매한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자유당 말기에 문학인이 반드시 야당적인 발언을 하였어야 옳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기껏 나타났다는 것이 만송족(晩松族)1)입니다.

참가하는가 하면 그런 따위의 참가니까 기가 차다는 거예요. 4·19 후에는 중공식(中共式)으로 말하면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되어서 이 소리 저 소리 못할 소리 없이 혼란만 일으켜놓고 5·16이 나니까 자라목처럼 일제히 쑥 들어가버렸어요. 이렇게 볼 때 참여란 말은 하기가 부끄럽다는 겁니다. 그러고는 이제 와서 불투명한 말을 늘어놓다가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슬쩍 몸을 피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우습다는 겁니다. 작가들은 흔히 우리가 역사적인 엄청난 경험을 했는데 왜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느냐, 하면 누구나가 그것은 아직 작품을 쓸 만한 자유가 없어서 그런다고 합니다. 나는 그것은 99%의 변명이라고 단정합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역량부족이지 자유가 없는 탓은 아니에요.

백낙청 그러니까 제가 아까 말한 둘째의 경우, 즉 사실은 자유가 주어져도 뭐 그렇게 할 말도 많지 않은 사람이 특수한 사정으로 자유가 제약된 것을 기화로 도리어 휘두르고 다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말씀이시군요.

선우휘 네. 그러니까요 저는 아까 백낙청씨가 사회과학파라는 한 묶음으로 치는 것은 이건 당치가 않다고 하셨는데, 이제 말씀을 듣고 나니 앞으로는 거기서 백낙청씨만은 빼겠습니다.(웃음) 앞으로 백낙청씨가 보다 높은 차원에서 독자적 보편성을 갖는 어떤 이론을 만들어놓으면 초사회현실파라 할까 만강의 찬의를 표명하겠습니다.

백낙청 글쎄요. 감사한 말씀인데요.(웃음) 하지만 저로서는 제 개인을 뭐 사회과학파에서 제외하여주시는 것보다 그 사회과학파라는 상당히 모호한 용어 자체를 철회해주셨으면 하는 거지요. 그리고 사회과학적인 관심의 중요성, 이런 데에는 어느정도 동의를 하시면서 문학평론을 하거나 창작활동을 하거나 그런 관심을 정말 진지하고 분별있게 활용하는 사람, 적어도 그런 방향으로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한쪽은 초사회과학파(超社會科學派)도 좋고 무슨 파도 좋구요, 다른 한쪽은 실상 사회과학도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러니까 사회과학이라는 막연한 경향, 막연한 인상으로 이렇게 묶어서 하시지 말고……

선우휘 물론 인상비평이라는 것은 나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싸르트리앙이랄까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그를 맹종하고 마치 교주(敎主)처럼 모시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싸르트르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또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언젠가는 좀 독자적인 제 얘기를 하면 어떠냐는 겁니다. 일례를 들어 싸르트르의 모든 언동에 대해서 항상 박수만 보내는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월남전에 반대한다. 대체로 지식인들은 찬성하지를 않습니다만 그런 경우 싸르트르가 반대했다, 세계 최고의 지성이 반대했다, 그러니까 나도 거기에는 반대이다. 그러고 만족을 느끼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지 말고 월남전이라는 것이 하나의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면 이 현실을 우리로서는 어떻게 보아야 되느냐? 한 차례 생각하여보라는 겁니다. 또 한 가지, 문학인이 할 일이 이 사회의 어떤 모순을 파헤치는 데 있다는 것 그 점은 찬성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의 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문제예요. 휴전선 이남의 남한만을 우리의 현실로 국한하느냐 이북 지역도 넣어야 하느냐를 저는 문학인이 다루는 경우에 적어도 휴전선 이북, 북한지역까지도 우리의 현실로 고려에 넣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50년의 시간적 간격은 있지만 문학인의 자세를 이렇게 따져봅시다.

제정러시아 말기에 러시아의 문학인들은 그 대부분이 제정러시아의 현실이 지닌 모습을 파헤치고 어떤 새로운 혁명을 갈구했습니다. 인뗄리겐찌야라는 말이 거기서 나온 말이 아닙니까. 또 다른 하나는 혁명 50년 후에 이르러 스딸린 치하에서 창작의 자유를 잃고 있다가 해빙과 더불어서 레닌그라드를 중심으로 해서 자유의 폭을 넓히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문화인들의 태도, 이 두 가지 태도를 아울러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제정러시아 말기의 지식인과 현대의 자유를 갈구하는 소련의 지식인들을 아울러 고려하고 우리 스스로를 생각할 때 한국 지성인의 고민은 더 큰 것 같습니다. 서방측의 사회면, 거기서는 그 사회체제에 반항만 하면 됩니다. 그와 반대로 공산주의사회에서는 거기에만 반항하고 자유를 찾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 경우는 어쩌면 그 두 가지를 다 아울러 해야지만 되잖겠느냐? 조선 때부터 일제를 통해서 지금까지 남아 내려온 여러가지 좋지 못한 잔재 또는 이 자본주의사회가 지닌 모순, 여기에 대해서도 반항하고 어떤 권력적인 압력에 저항해야 하는 동시에 또한 북한지역에 대한 고려에서 공산치하에서 획득해야 할 자유, 거기에 대한 반항 그것까지 아울러 생각한다면, 참신하고 독자적인 참여이론이 나와서 거꾸로 선진국 지성인들에게 상당한 깊은 인상을 주고,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한국에서의 ‘현실’을 선생님은 편의상 이남과 이북으로 갈라서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그뿐만이 아니죠. 한국 바깥의 세계라는 것도 ‘한국현실’의 일부를 이루고 있고요. 한데, 작가가 겪는 현실이란 것은 실제로 자기가 몸으로 느끼고 살고 있는 전부가 아닙니까? 한국의 현실이 이남의 현실과 이북의 현실이 있다 할 땐 사실은 작가에게 느끼는 것은 자기가 이남에 살면서 느끼는 이남의 현실하고, 또 이남에 살면서 이북이 저런 형태로 공산치하에 있다는 것이 이남에 사는 자에게 파급되어올 때에 그것을 느끼는 현실, 또는 세계가 이남에 파급되어오는 현실-그런 것이니까요. 이 복잡한 현실을 철저히 살고, 절실히 살고, 그것을 정직하게 표현하면은, 그것으로서 작가는 작가의 임무를 다한 것이고, 이남이니 이북이니 하는 일반화된 개념을 창작 자체에 개입시키는 것은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하는지 얼핏 생각이 안 나는군요.

선우휘 그것에 대해서 내가 비근한 예를 들죠. 요전에 어떤 문학인이 이런 단상을 쓴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무장간첩 출몰지구에 갔다가 욕을 본 모양이더군요. 그야 유쾌할 리가 있겠습니까? 아주 불쾌했을 겁니다. 그런데 인권이 이렇게 취급되어서야 어떻게 되겠느냐-이런 얘길 하고 있어요. 그건 그런대로 탓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 발자국만 더 나가서, 그럼 그렇게 욕을 봐야 할 사태는 왜 생겼느냐 하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백낙청 전 그 단상을 못 읽었습니다만, 그야말로 형사에 대한 증오에만 그치고, 대국적인 논의랄까, 거기에 대한 이해가 빠졌다면 그것은 불충분한 보고이고, 정직한 작품이라곤 못 보겠죠. 그렇지만 다른 한 가지는, 작가란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생생하게 그려내는 거니까요. 생생하게 느낀 것을 쓰지 않고, 형사에 대한 일반화한 증오로 일관되었을 때 그것이 나쁜 것이지, 그렇지 않고 과장이나 설익은 결론을 맺음이 없이 느낀 그대로 보고만 한다면 자연히 독자로 하여금 그 원인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주지 않을까요.

선우휘 작가는 자기가 느낀 것에 대해서 생생하게 그리기만 하면 된다고 할 순 없습니다. 상상력이라는 것이 있잖습니까? 상상력은 작품만 던져주고 독자에게 맡긴다?

백낙청 제가 뭐 생생하게 느낀다는 것은 생생하게 상상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선우휘 아, 상상력까지 포함해서?

백낙청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의견이 같아지는지도 모르겠는데요. 아까 말씀하신 ‘단상’의 경우에, 자기가 어떤 불쾌한 경우를 당했을 때 말입니다. 불쾌한 것을 과대하게 말한다거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반대로 이건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면 무장간첩이 나타나서 그런 거니까 불쾌한 감정은 감춰버리자, 하고 마는 것 역시 정치적으론 현명한 처사일지 모르지만, 작가로서는 어떤 피상적인 판단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 하는 겁니다.

선우휘 저는 여기서 참여에 곁들여서 참여의 성격이라고 할까, 문학인의 무엇인가를 보는 눈, 일종의 통찰력을 좀 얘기하고 싶은데요. 독일에 고트프리트 벤(Gottfried Benn)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쓴 저서에 『이중생활(二重生活)』이라는 것이 있어요. 나찌 때 토마스 만(Thomas Mann)이니 슈테판 쯔바이크(Stefan Zweig)니 이런 사람들은 다 망명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망명을 안 하고 나찌 치하에 남았습니다. 남았다가 나중에는 나찌에 실망을 하고 말았는데 처음에는 토마스 만이나 이런 사람들처럼 전적으로 배격할 수만은 없었다는 거예요, 자기는 초기에 희망을 걸 수가 있었다는 겁니다. 전후 망명작가들이 돌아와 굉장히 벤을 공격했어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어떤 경향이 있었느냐 하면 고트프리트 벤을 상당수의 독일인들이 동정을 하고 그에게 공감했다는 것입니다. 즉 무어냐 하면 망명의 문제 즉 토마스 만이나 슈테판 쯔바이크 같은 사람은 우리말로 하면 지조는 지켰지만 그는 국민들에게서 떠났다. 하지만 고트프리트 벤은 지조는 지키지 못했을지 모르나 우리와 함께 살고 더불어 고민했다는 겁니다. 연전에 『친일문학론(親日文學論)』이란 책이 나와 일제시대 때 친일문학을 한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있었는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치적인 무엇에 대하여서는 우리가 좀더 통찰이 깊어야 되지 않느냐, 가령 6·25 때 도강파, 비도강파라고 해서 한강을 건너간 사람은 애국자이고 남아 있었던 사람은 비애국자라는 그런 단순한 판가름 문제, 그리고 현실참여에 있어서 권력에 반항한다고 할 때 전투적인 형태로 하느냐 토마스 만처럼 망명을 하여야 되느냐 또는 그런 속에서 가능한 최대한도의 참여에 머무르느냐,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경우를 생각하고 모든 가치를 따져봐야 할 겁니다. 단순한 판단은 말아야죠. 요즈음 발표되는 작품들에서 느끼는 것이 그것입니다. 옛날 대중소설에서 사장(社長) 하면은 이것은 비서나 건드리는 놈으로 되거나, 검사(檢事) 하면은 정치적으로 부당하게 구형하는 악인으로 규정하거나 이런 것은 문학인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통찰력이 결여돼 있는 탓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미국의 서부활극 같은 데에도 그렇게 선악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악인에게도 웬만큼 필연성은 주어서 30%의 동정은 보내는 것인데 초기의 서부활극처럼 소설에서 좋은 놈, 나쁜 놈을 분명히 갈라가지고 어느 놈은 좋은 놈, 나쁜 놈 하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문학비평이 작품을 누르는데 한마디로 ‘보수반동이다’ 하는 따위도 그런 것이지요.

백낙청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작가가 하는 작업이라는 것이 우리 일상생활에 만연하여 있는 상투형(常套型)에 대해서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선생님 말씀대로……

선우휘 나는 그 점이 현재로서는 참여에 앞서는 자기확립의 첫걸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백낙청 예, 그런데 우리나라 작품에서 인물묘사만 보아도 상투형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좋은 작품이 많지 않다거나 아예 없다는 얘기인데요. 그런데 그 대책이 무엇입니까? 선생님은 작가이시니까.

선우휘 저로서 백낙청씨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비평작업입니다. 얼마 전 부산에서 유괴사건이 났을 때 어느 신문에서 그 계모가 청부살인을 한 것이다, 이렇게 오보를 낸 일이 있어요. 그게 인권을 침해했다는 문제도 크지만 저는 거기서 무엇을 느꼈느냐 하면 젊은 세련된 두뇌를 가진 편집기자가 딱 그렇게 계모의 짓으로 단정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머릿속에 계모라는 것은 전처자식을 학대하는 것이다, 장화홍련전 때와 꼭 같은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거예요. 문학에서도 그런 점이 상당히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려 부수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참여의 첫걸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백낙청 그 점은 저도 동감입니다만 제가 평론을 하니까 얘기인데 평론이라는 것이 남을 많이 비판하는 직업이 아닙니까, 그런데 나쁜 것을 비판만 한다는 것은 할수록 더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껴요.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는 작품을 비판하면 이것이 인신공격으로 오해를 받아가지고 마찰이 생기니까 그런 데서 오는 피로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그냥 상투형을 상투형이라고 말한다거나 좋지 않은 작품을 좋지 않은 작품이라는 말은 암만 해보았자 끝이 없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결국은 우선 작가들이 상투형이 아닌 그런 것을 창조해놓은 연후에 비평가들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면서 그렇지 못한 것을 까야지 비평하는 보람도 느끼고 남에게 먹혀들어가기도 할 것 같습니다.

선우휘 그런데 이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좀더 구체적인 얘기를 합시다. 뭐냐하면은 이번에 『신동아(新東亞)』엔가 손창섭(孫昌涉)씨의 「환관」이라는 단편이 나왔습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그 당시의 서민으로서는 도저히 권력에 가까워질 수 없다, 그래 생식기의 어떤 부문을 제거함으로써 고자가 되면은 고자로서 중국에 가서 고관을 할 수 있고 권력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셋이 제거를 했는데 하나는 죽고 다른 둘이 성공을 해서 벼슬을 하였다, 그중에 하나는 자기 동생을 시키려다 안돼서 자기가 스스로 환관이 돼서 또 출세를 하였다. 손창섭씨 단편으로서는 근래 보기 드문 매끈한 단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끌고 갔는가 하면 거기서는 그런 행위를 부정적으로 비웃고 하였어요. 세상에 원, 권력이 아무리 좋다 한들 그걸 제거하고까지 탐이 나? 이렇게 탓하고 있어요. 그런데 대개의 우리 소설에서 돈이라는 것은 더러운 것, 돈 없으면 양심적이고 돈 있는 놈은 나쁜 놈, 물론 아직도 그런 공식이 우리 사회에는 해당됩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가 소설 자체가 전진해야 하는 동시에 사회가 전진하기 위해서는 그런 비판과 아울러서 거기 그치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권력이나 돈 문제가 더럽다 깨끗하다로만 그치지 말고 어떤 인간의 악착 같은 의욕, 삶에 대한 의욕이라 할까 그런 각도로 보기도 했으면 해요. 그러니까 한 인간이 그것을 제거하여서까지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말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낙청 그건 재미있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뒤집어서 보는 안목이 완전히 구체적인 작품으로 되어 나왔을 때는 참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고 비평하는 친구가 앉아서 손창섭씨 써놓은 것을 가지고서 이것 참 재미있는 단편이기는 한데 이거 뭐 상투적이 아니냐, 이걸 좀 바꾸어서 누가 써보면 어떠냐, 하는 정도로 비평을 해보았자 그 비평 자체가 아주 상투적인 발언으로 끝나버리거든요. 별반 실효가 없다는 것입니다.

선우휘 그러니까 앞뒤를 바꾸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백낙청 그렇죠, 그것마저도 일종의 공식이죠. 말하자면 남보다 수가 한수 높은 놈이 앉아가지고서 남이 뭘 해놓으면 아-, 그거 뭐-

선우휘 아- 제 말은 우리가 종래의 소박한 가치관을 한번 바꾸어놓아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그것도 상투이고 이것도 상투이지만 어느 쪽이 더 우리가 앞으로 채택할 수 있는 가치관이냐? 정치가 하면 자식들 권력욕에 사로잡혔다, 뭐 이런 식으로… 권력욕이라는 것은 과연 그렇게 나쁜 것이냐. 그렇게 한번 생각해보기 전에 권력이라는 것은 더러운 것, 돈이라는 것은 더러운 것, 이렇게 모든 것을 아주 단순 소박하게 규정해버리지 않는 것이 나는 소설의 세계에서 우선 한발자국 되지 않느냐. 그것도 상투적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고쳐야 앞선 것이 아닌가?

백낙청 물론 저도 거기에 동감인데요. 그걸 고치는 길은 그렇지 않은 작품이 있어야지 실효있는 얘기가 출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완벽한 작품은 아니지만은 선생님이 지금 지적하신 것과 같은 수많은 상투형들을 그래도 한꺼풀은 벗긴 작품이 얼마 전에 나온 방영웅(方榮雄)의 『분례기(糞禮記)』라는 작품이라 생각해서 상당히 높이 평가했는데요, 선생님은 거기에는 그렇게 동의하지 않으신 것 같더군요.

선우휘 나는 동의 안합니다. 동의 안하는 것은 안한다고 그래야지. 어떤 사람이 읽지도 않고 백낙청씨 같은 신예 평론가가 좋다 하니까 다 좋겠다 하는 그런 경향도 있는데,(웃음) 아마 그 자체가 기성작가들이 스스로 자신없음을 폭로한 것이라고 보아요. 자기 나름대로 평가를 해야지 하나의 평가가 나오면 거기 따라간다는 자세, 그렇다고 그런 경향이 싫으니까 나쁘다, 이건 아닙니다. 저는 하필이면 『창작과비평』에서 내세웠느냐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그 작품은 김동인(金東仁)의 「감자」라든가 또는 계용묵(桂鎔默)의 「백치(白痴) 아다다」라든가 또는 김유정(金裕貞)의 어느 단편의 세계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요. 새로운 것이 뭡니까? 문장이 기본적으로 안돼 있는 데가 많구요. 제가 볼 때는 그 작가가 알고도 일부러 그렇게 시도해보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역시 소설이 미의식(美意識)이라는 것은 생각해야지요. 미의식을 일부러 손상시켰다고 할까 그런 것을 느껴요. 단적인 일례를 들면 나중 대목에 가서 똥예가 풀밭에서 똥을 싸고 풀잎으로 밑을 씻어서 버리는 대목이 나오는데 지금까지 동서고금 주저앉아 똥 싸고 풀로 밑을 씻어서 내버린다는 얘기는 그 작가가 처음 썼을 거예요.(웃음) 그럼 지금까지의 동서의 모든 작가들이 그걸 쓸 줄 몰라서 안 썼느냐, 그게 아니라 그건 최저한도의 어떤 미의식에서 그걸 안 쓴 것으로 보아요. 말하자면 섹스 장면을 묘사하더라도 『채털리부인의 사랑』만 해도 상당히 자제력을 가지고 썼다고 보는데, 물론 생식기의 이름도 그대로 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섹스가 끝나고 난 뒤의 뒤처리 같은 것에 대해서는 안 쓰고 있지 않습니까? 미의식이거든요. 그런 점 같은 것이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에요. 또 하나는, 그 세계란 무엇이냐, 포크너(Faulkner)가 말하기를 정신이상자라든가 백치 이런 사람을 그림으로써 현대의 어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인간을 그렸다 하는 건데 똥예라는 인물을 형상화하는 데 있어서 그런 비슷한 것이 나타나 있는지는 몰라요, 물론 그걸 작가가 의식했는지 안했는지는 몰라요. 그런데 아까 가치관에 대해서 말한 것처럼 나는 평론가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세계가 작품으로 완성되었을 경우에도 잘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결점이 많아도 전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내세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례기』에서는 우리의 현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잖아요? 그런 점에서 나는 그 작가의 장래를 주목하는데, 그 다음 『주간한국』에 「호도껍질」이라는 것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도시로 옮겨진 얘긴데요. 거기에서도 화백이 어떤 여자가 보는 소피소리를 듣고 그지없는 음악으로 느낀다는 대목이 나와요. 물론 그것이 환상적인 작풍의 풍자라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그 작가는 좀더 정진하여야 할 겁니다.

백낙청 그런데 그 미의식이라는 개념을 작품 개개의 성격에 맞추어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분례기』에 너절한 장면이 많이 나타나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변호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분례기』라는 작품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전체적으로 어떤 미적 내지 예술적 기능을 하고 있다고 봐요. 사는 것 자체라고 그러면 너무 거창한 말이 되겠습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는 것, 특히 시골사람들이 사는 데에 있어서 한없이 너절하면서도 도외시할 수 없고 또 실제로 어떤 생생한 것이 담겨 있기도 한 이런 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는 노력의 일부로 나타났다고 보고요. 저로서는 그런 장면들이 반드시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선우휘 제가 거기에 대해서 반농담으로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창작과비평』에서 염무웅(廉武雄)씨가 「선우휘론」이라는 것을 썼는데 주간인 백낙청씨 이론과 꼭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크게 다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작가의 성분과 경력과 작품관계가 나와요. 선우휘라는 작가의 경력은 이러이러한데 그래서 그의 작품은 이러이러했다는 투입니다. 말하자면 소시민적인 사람이니까 소시민적인 작품을 쓴다. 저는 이것을 가장 안이한 공식적인 평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논법을 백낙청씨에게 그대로 되돌려드리겠습니다. 말하자면 백낙청씨는 우리나라 수준으로 곱게 자라나고 또 대학교도 세계적 명문 미국 하버드를 나와서 서구적인 교양을 가진 탓으로 오히려 그런 작품세계에 어떤 향수를 느낀 탓으로 좀 점수가 많이 간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백낙청 네, 저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듣고 있는데요,(웃음) 이것에 대해서 저는 선우선생님에 대한 해답 겸, 또 한편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해답 겸, 또 제가 주간하는 잡지에 실린 염무웅씨 글을 거론하셨는데 그에 대한 변호 겸해서 한마디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염무웅씨 글을 제가 읽은 바로는 그 글에서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작가의 성분에 대한 평가를 자동적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로 전환시킨 것 같지는 않아요. 작품평가는 평가대로 평론가의 감성과 비판의식을 가지고 하되 그것을 더욱 폭넓게 이해하고 또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배경분석을 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제가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선생님이 옆에서 보시고 어떤 근거 하에서 그 평가 자체가 틀린 평가라고 판단하시고서 그 판단을 설명하고 전달하는 방법으로서 제 경력을 드는 것은 좋은데요.(웃음) 그런데 제가 방영웅씨의 작품에서 너절한 요소들을 좋게 평가하는 것은 제가 너절하지 않아서 너절한 것에 대한 향수를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제 경력이 과연 그렇게 날씬한가는 별문제로 치고요. 또 『분례기』를 너절한 사람들의 너절한 얘기로만 평가하는 것도 아니지요. 저는 오히려 그것이 상투형만 좇는 사람들이 흔히 지나쳐버릴 정도로 너절한 사람들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파헤친 결과 언뜻 보기에 너절하지 않은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내재하는 어떤 세계까지 터치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피상적으로 말할 때는 어떤 역사의식이라든가 사회의식 같은 것도 개재돼 있지 않지만은 그런 것이 어설프게 끼어든 것보다도 훨씬 더 예리하게 우리 시대의 단면이라고 할까요, 전부는 아니죠. 물론-그런 것을 포착하지 않았는가, 저로서는 상당히-

선우휘 인간의 원형 원래적인 것, 그 사람이 가진 경향이라든가 모든 후천적인 것을 제거하고 남는 그 무엇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인간형이 그런 비문화적인 세계에서 그려졌는지는 모르지요. 그런데 아주 더러운 것, 아주 낡은 것, 또는 약한 것, 또는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것, 이런 것을 그릴 때 이것이 예술이다 하는 경향이 아주 짙어요. 강자의 오만보다도 약자의 비운이, 거드럭거리는 부호보다도는 어떤 가난 속에 좀더 리얼리티가 있는 것 같고 인간의 어떤 섬세한 감정도 흐르는 것 같고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약하다든가 가난하다든가 하는 데 더 예술평가의 비중을 주는데 그런 경향은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야 될 줄 알아요. 왜 강자를 그리는 것은 예술적이 못 되느냐 또 부한 자라든가 가해자 이런 것을 그리는 것이 왜 예술이 될 수 없느냐? 아까의 논리를 빌리자면 이것도 상투적이고 저것도 상투적이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 한번 재평가하고 앞으로 나가야 되지 않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강한 자의 입장을 그려주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것은 물론 말이 안되죠. 단지 강한 자를 묘사하는 것이 약한 자를 묘사하는 것보다 예술적으로 성공하기가 쉬운가 어려운가 하는 문제는 있습니다만. 그런데 『분례기』에 대해서 특히 『창작과비평』하고 연관시켜서 선우선생께서 생각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까. 즉 저희가 평론이나 편집 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주장을 통해서는 새 풍토를 마련하겠다고 의욕적으로 떠들어대는데, 실제로 작품을 내놓는 것은 우리 문단에 가장 낡고 복고적인 그런 요소가 많은 작품을 내세우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그런-

선우휘 그런 얘기가 되죠.

백낙청 그 점은 이렇게 해명하면 어떨까요. 저희가 『분례기』 같은 작품을 낡고 복고적인 것이라서 내놓았다기보다 그런 요소가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들 판단으로는 상투형을 깨뜨리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보아서 내놓은 것이니까요, 그 점은 안심해주십사는 말이지요.(웃음)

선우휘 그럼 마음을 놓지요. 그리고 문학의 참여문제와 밀접히 관계가 되리라고 보는데 이북에서의 참여형태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어요. 거기서는 정치적인 문제가 나면 문학인들은 반드시 공동명의로 메씨지를 내고 작품창작에 있어서도 과제문학이라고 할까 아주 현실과는 밀착된 문학활동을 합니다. 물론 폭로나 반항은 아니지요. 제가 한 일 년간 일본에 가 있었는데 그러나 참여는 참엽니다. 거기서 가능한 한 이북에서 나온 문학작품을 찾아 읽었어요. 그네들의 경향을 알기 위해서 국민학교 인민학교 교과서부터 당사(黨史), 해방전사(解放戰史), 시, 소설 닥치는 대로 다 읽어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안되겠더군요. 해방 후 남한에서 이북으로 간 시인, 소설가의 작품은 아주 희귀합니다. 그 사람들이 불쌍한 생각이 들던데요. 월북 작가들은 공산사회 건설의 초기 단계에서 작가나 시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무식했던 겁니다. 소련을 보아도 알 일입니다. 혁명 50년에 겨우 그 모양 아닙니까, 아직도 과업문학 단계를 못 벗어나고 있어요. 벗어나려고 몸부림은 치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니 이북 같은 데는 불문가지(不問可知)지요. 시는 구호처럼 옥타브만 높고, 슈프레히코르(Sprechchor)가 판을 치고 있어요. 소설은 노동영웅이니 영웅전사니 우리 같으면 기관지에나 실을 수 있을 그런 것투성이입니다. 무용이니 음악 같은 부문은 모르겠는데 문학만은 정말 안되겠던데요. 그래 제가 그런 걸 보고 느낀 것은 해방 후 이북으로 상당수의 문학인들이 넘어갔지만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나름으로 당국의 주목을 받는다거나 자유를 제약받는 한이 있어도 여기 남아 있어서 문학활동을 하였던들 숙청 같은 비운도 당하지 않고 그 문학도 좋아져서, 우리 문학에 상당한 공헌을 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입니다. 여기서는 몇 년 전에 남정현(南廷賢)씨의 「분지(糞地)」사건2)도 나고 그랬는데, 그래도 여기서는 떳떳이 재판정에 나가서 문학인들이 변호를 할 수 있었다든가, 이런 상황에서 적잖이 제약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해방 후 20년 동안에 나온 문학작품을 보면 그 예술성이라 할까 문학성은 이북의 것이 댈 게 못 됩니다. 비교가 안돼요, 우리가 월등합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보아도 문학이 지나치게 현실과 밀착하는 것은 도리어 삼가는 것이 좋겠어요. 그래야 문학이 예술성도 지킬 수 있고 밖으로부터의 간섭을 튕기고 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백낙청 그런데 ‘참여’라는 말 자체가 적합하지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왕왕 있습니다. 참여란 말을 넣으면 꼭 무슨 운동장이나 길거리에다 사람을 모아서 줄을 세워놓고 그 대열에 끼는 사람은 참여고 거기에 안 끼는 사람은 참여가 아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참여란 말을 들으면 나가서 데모를 한다거나 정치적인 활동에 직접 가담하는 것이 되는데요. 물론 그럴 필요가 있을 때 빠지면 작가도 욕먹어 싸지요. 하지만 우리가 문학의 참여니 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참여’라는 용어가 이 문제에 대한 소아병적 사고를 유발하는 데 한몫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우휘 글쎄. 그 점은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큰 정치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데모를 한다고 합시다. 이때 두 가지 태도가 있다고 보아요. 하나는, ‘문화인 데모 자체가 무의미하다. 나는 차라리 그러한 데모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를 내 작품을 만드는 데 쏟는다’, 이 경우하고 또 ‘자기 에너지를 작품창작에 쏟지도 않고 아무것도 안하면서 문학인은 데모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입니다.

백낙청 결국 참여라고 하면은 상투적인 얘기입니다만은 작품을 통한 참여를 우리가 주로 다루어야 마땅할 듯한데요.

선우휘 네, 그렇죠. 결국은 작품이 문제죠, 남는 것은 작품입니다. 이건 문학의 유일무이한 철칙이지요.

백낙청 그것은 역시 작가가 관심을 어떻게 갖는가 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의 관심을 올바르게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식견을 쌓고 어느 정도의 예술적 정진을 하며 일단 유사시에 어떤 행동을 하는가, 이런 문제인데요. 관심을 올바르게 유지한다는 것도 너무 막연한 얘기입니다만 하여간 우리가 산다는 것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하고 함께 사는 것이고 삶의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그에 따른 책임감 같은 거지요. 그리고 우리가 문학적인 가치라 하는 것이 사회적인 가치와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고 그 상관관계에 있어서 서로 변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가변적인 것이라는 그런 의식, 그러니까 그 상관관계를 잘 살펴서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 이런 것이-

선우휘 문학지에서 그걸 느끼는데, 문학지 하면 이것은 문학 얘기밖에 안 나와요. 문학인이라 하면 다른 얘기는 알 필요도 없고 다른 종류의 사람들하고는 만날 필요도 없다 하는 이것 때문에 우리 문학이 자꾸 좁아지고 약해지지 않은가, 그러니까 문학의 관계학(關係學)이라 할까 거기 대해서 관심이 많아야 합니다. 제 개인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는 솔직히 얘기해서 문학을 하는 사람들하고 만나서 얘기하고 술 마시는 것보다는 문학 안 하는 사람들, 가령 종교가라든가 법률 하는 사람이라든가, 이런 다른 직업인들하고 얘기할 때에 도리어 인스프레이션까지는 안 가지만, 상당히 자극을 받습니다. 일본학자가 메이지(明治) 백년 동안 사회를 분석하는 데 말예요, 그때그때의 문학작품에서 이 대목 저 대목을 끄집어내가지고 그걸 가지고 자기 전공분야의 논리를 전개시키고 있어요. 어느 시대에는 어떤 소설에 어떤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어느 인물과 어느 인물은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것이 당시 사회의 인간관계를 말한다, 그래 가지고 쭉 자기의 이론을 뒷받침해가고 있단 말예요. 그러면 작가들은 어떤가 하면 소설을 쓰고 난 맨 뒤에 가서 나는 어느 누구누구의 무슨 책과 무슨 책, 어느 교수의 어떤 논문을 참고로 하였다, 그렇게 적고 있습니다. 우리 문학도 좀더 입체적이 되기 위해서는 관계학이라고 할까, 관계될 수 있는 종교, 역사 등등과 피차간에 연관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됨으로써 문학 자체도 풍요해지고 다른 사회과학 부문도 문학과 관계를 가짐으로써 좀더 맛이 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하죠.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이제까지 백낙청씨와 한 얘기는 언젠가 한번 나누어야 했을 성질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농반 진반 삼아 말하면 결국 오늘 우리가 여기서 대담한 것은 우리들의 창작활동에서 볼 때 어쩌면 에너지를 낭비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이 대화를 하는 시간에 나는 가서 몇 장의 소설을 더 썼으면 낫지 않았는가, 백낙청씨도 또 평론을 썼으면 낫지 않았을까. 그런데 결국 문제는 문학인은 역시 작품을 써야 한다, 그게 역시 시작이고 마지막이고 어떻게 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겠습니까.(웃음)

백낙청 그렇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앞으로 선생님이 작품을 통해서 하실 말씀에 더 큰 기대를 걸면서 오늘은 이만 해두지요.

 

  1. ‘만송’은 이기붕(李起鵬)의 호이며, 만송족은 이승만 정권 말기 이기붕에게 아첨했던 어용 문인들을 비꼬는 말-편자.

  2. 1965년 3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소설 「분지」가 북한의 『통일전선』에 전재됐다는 이유로 그해 7월 작가를 반공법으로 구속한 사건-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