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읽기

[회화록] 대선에 패배한 촛불들이여, 이제 민주당을 장악하자! / 백낙청 오연호

[인터뷰] 대선에 패배한 촛불들이여, 이제 민주당을 장악하자!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

 

  • 이 인터뷰는 오마이TV ‘오연호가 묻다’(2022년 3월 16일)에 방송된 것이다.

 

오연호 안녕하세요, 오연호입니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지난 3월 9일 있었으니 딱 일주일이 지났네요. 여러분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금 인수위를 꾸려서 정권을 인수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지자들에게 ‘미안하다, 모든 것이 다 내 탓이다’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지지자들은 낙심한 가운데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오늘 ‘오연호가 묻다’에서는 백낙청 교수님을 다시 모셨습니다. 백낙청 교수님은 서울대 영문학과 명예교수님이시죠. 그리고 『창작과비평』의 명예편집인이십니다. 약 한달 전쯤인가요? 바로 이 자리에 오셔서 촛불, 깨어 있는 시민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좋은 말씀 들려주셨는데요. 지금은 낙담하고 길을 헤매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모색하는 깨어 있는 시민들과 오마이TV 시청자 여러분들께 좋은 말씀을 주실 거라고 믿고 백낙청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백낙청 예, 안녕하세요.

오연호 3월 10일 새벽 개표가 있었는데요. 윤석열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됐을 때 가장 처음 드신 생각은 뭐였습니까?

백낙청 저는 나이도 들고 그래서 밤새우는 일을 잘 안 합니다. 출구조사 결과 두가지가 조금 다르게 나왔잖아요? 양쪽 다 박빙 승부를 예측한 것만 보고 잤어요. 투표지는 이미 다 투표함 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그걸 열어보고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을 내가 지켜보면서 마음 졸일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내가 지켜본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잤습니다. 잘 자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카카오톡이 들어온 게 하나도 없어요.{(웃음)} 가까운 사람들은 대개가 이재명 지지했으니까 이겼으면 막 카톡도 보내고 난리를 쳤을 텐데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거 이상하게 됐나보다’ 하고서 텔레비전을 틀어봤더니 무슨 윤석열 어릴 때 사진이 나오고 벌써 용비어천가가 시작됐더라고요. 그래서 최종 득표율만 확인하고 꺼버렸죠.

오연호 오마이TV 시청자 중에서도 그후에 TV를 안 본다는 분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어제 점심에 한 식당에 갔는데, 자주 가던 식당이라 주인 분이 저를 아시는데도 그전에는 『오마이뉴스』나 오마이TV 얘길 한번도 안 하고 티도 안 내셨어요. 그런데 어제 갔더니 ‘아, 너무 속상하다’고 하면서 그동안 오마이TV 봤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잠을 못 자고 밥맛도 없는 분들 꽤 많습니다. 아까 댓글 보니까 ‘우리 백교수님 오마이TV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오늘도 힘 받으러 왔습니다’ 이런 분들이 있던데, 백교수님께서는 TV도 끄시고 이런 상황에서 지난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백낙청 내내 끄고 산 건 아니고 더러더러 보았는데, 옛날같이 열심히는 안 보고, 속상하기로 말하자면 저도 누구 못지않지만 그래도 평상심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지금 내가 살 날도 많이 안 남았는데 애통해하고 밥 안 먹고 잠 안 자고 그렇게 보내기엔 시간이 좀 아까워서 어떻게든지 평상심으로 되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연호 백교수님께서는 해방 전에 태어나셨어요. 해방 때 초등학교를 다니셨죠?

백낙청 제가 태어나긴 대구에서 났는데 전라남도 광주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그러다 2학년 진학하던 해에, 그때 일제 말기에 미군이 폭격할지 모르니까, 소개(疏開)한다 그러죠, 여기저기 시골로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만 빼고 온 식구가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로 갔습니다. 해방은 거기서 맞이했고, 그해 10월에 배 타고 월남했습니다.

오연호 그렇게 해방 정국부터 지금까지 근현대사를 지켜보셨네요. 그간에 여러 역사의 아픔과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나중에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월 19일 출연하셨을 때 대선을 몇가지로 분석하셨는데 기득권 엘리트 카르텔 대 촛불정신・촛불시민의 대결이다, 그리고 절박함과 간절함의 대결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결과는 촛불과 이재명 후보 쪽이 0.7퍼센트가 모자랐습니다. 지금 소셜미디어와 언론 등에서 다각도로 패인을 분석하고 있는데요, 백교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백낙청 우선 역사적으로 볼 때 이번 대선이 기득권 카르텔과 촛불시민들의 대결이라는 분석은 맞는다고 보고요. 다만 이기기 위해서는 이재명 후보와 촛불시민들의 연합이 훨씬 더 강하게, 더 일찍부터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이재명 후보가 잘 싸웠고 또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위로받을 일이자 큰 소득이 있다면 김대중 대통령 이후로 이만한 정치인을 만난 것이라고 봅니다. 스스로 본인이 부족했다고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이고 동지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다른 후보보다 뛰어났지만 준비부족은 없지 않았던 것 같아요. 패인을 들자면 일단 민주당이 그간에도 너무 못했고, 선거기간에도 민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의 간절함은 오히려 국힘당보다 못했다고 봅니다. 국힘당은 특히 이재명씨가 후보가 된 이후로는 이번에 지면 진짜 우린 다 깨진다 하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달려들었는데 솔직히 민주당 국회의원들이야 져도, 그들이 다 그렇게 계산했다는 건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지더라도 여소야대의 의원들 아닙니까? 그렇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당의 상당부분이 이재명 후보와 촛불시민들이 타파하려고 했던 기득권세력의 일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간절함이 모자랐는데,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민주당에 돌리는 건 옳지 않고 우리 시민사회의 활동가나 논객들도 한번 되짚어볼 문제입니다. 과연 그동안에 우리가 촛불을 기억하고 촛불혁명을 화두로, 불교 용어로 화두로 잡고 연마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과연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사실 촛불이 거의 망각돼 있었거든요. 그러다 정말 저쪽이 대대적인 공세로 나오니까 그때부터 위기의식을 느낀 시민들이 다시 간절함을 갖고 일어났고 이재명 후보도 촛불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하기 시작해서 그래도 막판에 이만큼이라도 따라잡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저는 드는데, 처음부터 우리 시민사회에서 준비가 돼 있고 촛불의 기운이 살아 있는 상태였다면 이재명 후보도 선거전을 설계할 때 이 힘과의 결합을 분명한 목표로 세우고 거기에 맞는 전략을 세우지 않았겠나 생각해요. 이재명 후보가 나중에 가서 호소한 건 처음부터 세웠던 전략은 아니었고, 처음에는 아마 민주당 내부의 조언이 많아 그랬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든지 중도확장을 해서 이겨보려고 했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뭐다 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들의 요구를 하나씩 들어주겠다, 나는 한번 약속하면 지키는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하려다보니까 기운이 제대로 안 살아났고 막판에 가서야 제가 보기엔 제대로 된 선거전을 펼쳤습니다. 지난번 방송에서도 주장했습니다만 이렇게 촛불정신에 호소하는 것하고 국민들에게 구체적인 실용적 정책을 약속하는 것은 얼마든지 양립 가능하다고 봐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2기 촛불정부가 우리의 역사적인 사명인데, 2기 촛불정부를 만들 뿐 아니라 성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유능한 경제대통령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설득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점이 아쉽죠.

오연호 패인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점검해주셨습니다. 민주당, 촛불시민, 이재명 후보 그다음에 이들의 연대, 준비 정도, 간절함 등을 말씀해주셨는데, 지난번 방송이 생각납니다. 그때도 ‘아, 그래 촛불이 있었구나. 내가 촛불이었지. 내가 주인이구나’ 이렇게 자각하고 우리가 판을 만들 수 있겠다고 말하는 댓글들이 많았는데요. 오늘이 2월 19일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패인을 대략적으로 짚어봤는데,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번 선거를 통해서 얻은 게 뭔가를 짚어보고 분석해보면 좋겠습니다. 아까 김대중 대통령 이후에 이만한 정치인이 없었다는 표현을 하셨어요. 백낙청 교수님은 지금까지 12명의 대통령을 지켜보셨는데 일단 김대중 대통령을 언급하셨어요. 이쪽에서 보면 노무현 대통령도 있었고 문재인 현직 대통령도 있지 않습니까? 왜 이재명 후보를 그렇게 언급하셨나요?

백낙청 노무현 대통령은 참 훌륭한 분이지만 대통령으로서 썩 잘하신 건 아니라고 봐요. 그 얘긴 길게 안 하겠습니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아주 착하고 선량한 분이고, 촛불정부의 대통령으로서 잘해보려고 열심히 애쓴 건 사실이지만 원래 그분은 정치지도자라고 보긴 어려운 면이 있어요. 그래서 그분들보다 나은 정치인이 되는 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닌데, 도대체 김대중 대통령 이후로는 뛰어난 정치인이 없었고 특히 촛불혁명 이후로 촛불혁명을 현실정치권과 연결시켜줄 인재가 없었다고 봐요. 그런데 이번에 드디어 한 사람 발견했다, 건졌다는 점에서 다소나마 위로가 됩니다. 그다음에 오대표도 말씀하셨듯이 촛불시민의 재발견이라고 할까요, 재탄생. 사실은 촛불혁명이 어디 간 것은 아니고 이렇게 저류로 흐르면서 여기저기서 중대한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것을 상층부로 끌어올려 정치계라든가 주류 언론, 학계에서 논의하는 일이 전혀 안 이루어지다보니까 이를 잊어먹고 사는 사람이 많아졌죠. 게다가 이것이 그냥 세월이 흘러서 잊힌 게 아니고 촛불의 힘이 더 상층으로 분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엘리트 카르텔이 있다고 봅니다. 정치계도 그렇고 학계도 그렇고 언론계, 사법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가운데 그래도 이번에 연결이 지어지고 그 과정에서 내가 촛불시민이구나 하고 자각한 분들이 늘어났던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인데요. 참 말하기가 어렵지만, 지금 시청자 댓글 중에서도 저에게 힘을 좀 받고 싶다는 분도 있는데, 위로 일변도로 가다가는 우리가 해야 할 통렬한 반성・성찰을 게을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까 패인을 제가 대략적으로 분석했다고 하지만 조금 더 분석이 필요하다고 봐요. 남 탓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성찰해야 하는데, 우선 저만 해도 지난번 왔을 때 오대표께서 3월 9일 승자가 누가 될 거냐 물으셨을 때 나는 주술사가 아니니까 그 답변은 못하겠다고 이렇게 말을 했지만 솔직히 윤석열 대통령이란 상념은 떠오르질 않았어요. 그건 이런 데 나와서 대중을 상대로 아는 척하고 떠드는 인간으로서는 결격사유예요. 상상력의 부족, 현실인식의 부족이었죠. 그래서 그런 저부터 통렬한 자기반성을 해야 하고, ‘졌지만 크게 진 건 아니다’ 심지어는 ‘졌지만 이겼다’ 이런 식으로 나가는 건 곤란할 것 같고요.

특히 우리가 한번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일은 우리 국민이 위대하다고 믿고 있지만, K팝에 K드라마에 K방역에 또 나아가 K민주주의를 자랑해온 이 민족과 국민이 어쩌다 K트럼프까지 생산했는가예요. K트럼프라는 말은 해외동포들 간에 쓰이고 있다고 해요. 윤당선인이나 그 주변에서는 그 말을 듣고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K트럼프라는 말이 나온 김에 이걸 조롱하는 차원이 아니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거둔 승리와 한국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이긴 걸 비교 분석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우선 비슷한 점은 두 사람 다 선거기간에 그야말로 온갖 비리, 부패, 사실과 다른 주장이 다 드러나고도 당선되었다는 거죠. 그런데 그 과정만 보더라도 다른 점이 있는데, 미국서는 트럼프가 그런 발언을 할 때마다 소위 레거시 언론들 특히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주류 언론에서 일일이 팩트체크를 하고 검증하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도 당선된 게 미국이고요. 우리나라는 제가 볼 때 만약 레거시 언론, 적어도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만이라도 그런 역할을 해줬다면 토론 한두번 하고 선거가 끝났을 것 같아요. 바꿔 말하면 우리 레거시 언론은 엘리트 카르텔 부패에 미국보다 훨씬 더 깊이 연루돼 있는 반면에 우리 국민은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처럼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가 아무리 떠들어도 전혀 영향을 못 미치는 사회하고 우리의 차이고요. 또다른 차이를 말한다면 우리가 이번 대선에서 얻은 것 얘긴데, 트럼프는 상대가 이재명이 아니었거든요. 이재명처럼 개혁적인 사람이 아니라 크게 봐서 엘리트 카르텔의 일부였지만, 우리는 이재명을 내세워서 한번 붙어봤다는 게 다른 점이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도 나은 부분입니다. 그 저변을 들여다보면 한국에는 촛불혁명이 있는데 미국엔 그게 없어요. 그래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비록 트럼프의 재선을 저지하긴 했지만 전망이 안 보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있다고 봐요. 또 하나 우리가 이해할 것은 미국에서 트럼프가 그렇게 당선되고 지금도 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꼭 트럼프 지지자들 때문인가, 트럼프를 반대하는 다수 미국 사람들 마음속에도 크고 작은 트럼프가 하나씩 들어 있는 것 아닌가, 이 점을 미국 사람들은 반성해야 한다는 거예요. 역사적인 연원을 따지고 올라간다면 트럼프가 대표하는 백인우월주의 같은 것은 흑백차별 이전에 백인들이 인디언 토벌을 할 때부터 존재했던 미국 역사의 일종의 원형질에 속합니다. 우리는 그런 것으로부터는 자유롭죠. 그러나 제가 언젠가 분단체제가 괴물이라면 우리 마음속에도 괴물 하나씩 있다는 걸 우리가 상기하자는 말을 했는데, 사실 우리는 이번 윤석열 당선자나 그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저놈들이 완전히 나쁜 놈이고 나는 그런 결함이 전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마음속에도 윤석열이 대변하는 그런 욕망이나 욕심, 성내는 마음, 어리석음이 조금씩 있기 때문에 윤석열의 당선이 가능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이걸 깨끗이 씻어내고 새로운 전략을 세우지 못하면 윤석열 다음에 비슷한 사람이 또 들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다 내 잘못이야’ 하고 가슴 두드리면서 통곡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있고 성찰이 있어야지 그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제대로 보이니까요.

오연호 ‘오연호가 묻다’에 출연한 김누리 교수도 그런 얘길 했어요. 우리가 파시즘을 비판하지만 내 안에도 파시즘이 있을 수 있다, 한번 점검해봐야 한다.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배경으로서 우리 안에 알게 모르게 젖어들어 있는 모습들을 점검해보자는 말씀인데요. 아까 통렬한 반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 더 질문하자면 왜 많은 국민들은 민주당을 그토록 증오하게 되었을까요? 이런 후보가 승리하게 만든 배경에는 증오가 있다고 봅니다. 정권교체 여론이 꽤 높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행위와 민주당의 집권당으로서의 행위를 봤을 때 어떤 면 때문에 시종일관 정권교체 여론의 비율이 더 높고 결국 0.7퍼센트 차이이긴 하지만 저쪽이 승리를 거두었을까요?

백낙청 정권교체 여론이 높았던 건 분명히 민주당의 책임이고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이죠. 그러나 그 프레임 자체를 언론에서 만들고 계속 강조하면서 강화해온 탓도 있다고 봐요. 그래서 남의 탓으로 자꾸 돌리자는 건 아니지만 총체적으로 성찰하려면 우리 언론 지형에 대한 성찰도 필요합니다. 우리 지식인들의 담론 지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나중에 가서 이재명 후보 측에서 정권교체 프레임을 정치교체 프레임으로 바꾸려고 노력했고 어느정도 성공했습니다만,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다’라는 말 자체가 정권교체라는 프레임 속에서 놀고 있는 면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2기 촛불정부가 우리 국민의 소망이고 그 2기 촛불정부가 성공하려면 유능한 경제대통령이 필요하다 이렇게 나가는 것이 더 맞지 않았을까 하는 게 저의 아마추어적인 생각인데, 그런 구체적인 구호를 정하는 건 현장의 선수들이 알아서 해야죠. 저는 민주당 국회의원 대부분이 그런 간절함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구호를 개발하지도 못했다고 봅니다.

오연호 지난 방송부터 간절함과 절실함을 계속 강조하셨습니다. 물론 민주당에는 172명의 국회의원이 있고 그중에 많은 분들이 열심히 뛰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촛불이 무엇을 얻었나 했을 때 우선 이재명이라는 지도자 그리고 촛불시민의 재발견을 드셨습니다. 정치지도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닐 텐데, 우선 이 질문부터 해야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면에서 정치지도자라고 표현할 수가 있습니까?

백낙청 1971년이었나요? 그분이 박정희하고 대결한 선거가. 그때 대통령 후보로 처음 나올 때부터 남달랐죠. 4대국 보장 한반도 평화라든가 예비군 폐지 등등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담대한 공약을 들고나왔고, 당시 부정선거나 탄압은 지금하고 차원이 달랐는데 그런 가운데도 그때 40 몇 퍼센트를 거두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죠. 그후에 쭉 민주화투쟁을 하면서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고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어려운 큰 인물인데, 물론 그분이 한 일을 다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의견을 달리했던 부분도 있고. 그런데 이재명 후보는 한편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죽을 고비 같은 건 없었죠. 시대가 다르니까. 저는 앞날을 내다볼 때 촛불정부 2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하는 2기 촛불정부가 되어야 하는데, 그 점은 이재명씨가 당선이 되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사실 그렇게 보면 우리 국민으로서는 참 비통하지만 이재명씨 개인으로 보면 이번에 2기 촛불정부 덜컥 만들었다가 성과를 잘 거두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물론 능력이 탁월하고 학습능력이 특히 뛰어나니까 국정을 맡았으면 잘했겠지만, 한가지 제가 생각나는 것은 팀이 없어요. 성남시나 경기도에서 보좌하던 그룹들이 있는데 이분들은 이재명 후보가 시장에서 도지사 되고 도지사에서 중앙무대에 정치인으로 나가면서 이룩한 눈부신 발전 속도를 못 따라가게 마련이에요. 그건 꼭 그이들이 잘못해서가 아니고요. 그러면 대신에 누가 옆에 들어가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을까. 내가 그 내막은 모르지만 제대로 된 팀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재명 전 후보가 앞날을 내다보고 새로운 준비를 한다면 자기만 발전할 게 아니라 옆에서 같이 발전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모아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연호 굉장히 중요한 말씀 하셨네요. 물론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참모들 이른바 동지들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뭔가 이재명 후보는 상당한 정도 부각이 되는데 함께하는 팀의 모습이 덜 마련되었다는 말씀이시네요. 물론 민주당이라는 당의 조직은 있습니다만, 이건 경선 이후의 조직이고.

백낙청 어떻게 보면 이재명 후보의 최대 불운은 민주당 후보가 아니고서는 대통령이 될 기회가 원천적으로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어서 촛불이란 말도 잘 하지 못하고 또 경선 과정에서 온갖 비방에 시달려야 했고 경선을 이긴 이후에도 한편으로 원팀을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에 시달렸는데, 원팀 만드는 건 중요하지만 이재명의 정체성이랄까 아이덴티티를 흐려가면서 만들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원팀을 위해서 그렇게 한 면이 없지도 않아요. 그래서 이런 건 길게 두고 봐야 할 문제고. 민주당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우리가 그냥 통상적인 개념에 따라서 민주당이라는 정당을 한덩어리로 보고 이게 진보정당이냐 보수정당이냐, 가령 정의당이나 이런 소위 진보정당 쪽에서는 쟤들은 진보가 아니야 보수야 우리가 진보야 그러는데 저는 그 프레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봐요. 진보・보수의 프레임 자체를 재검토하면서 비판도 해야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는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개념을 씁니다. 진보란 말 안 쓰고요. 그런데 이것이 선거구호로는 별 소용이 없는데, 제가 자꾸 그런 용어를 만들어내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그러는 이유는 제 업이 선거구호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그래도 어느정도 학적인 엄밀성을 가진 개념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변혁적 중도주의를 쉬운 말로 풀이하면 한반도적 시각을 가진 실용주의예요. 이제까지 여러가지 이념노선들을 보면 실용성이 결여된 것이 있고 소위 실용주의자란 사람들은 남한 내에서의 실용을 얘기하다보니까 진정한 중도주의가 아니라 중도 마케팅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재명이 대표하는 실용주의하고 한반도적 시각이 더 확실해지면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던 변혁적 중도주의고. 또 2016~17년 촛불대항쟁에서 촛불시민들이 비록 그런 용어는 안 썼지만 요구한 게 그거였다고 봅니다. 실제로 이 나라를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어다오, 그런 실용성인데, ‘나라다운 나라’란 말 속에 담긴 것은 분단으로 인해서 분단체제의 기득권세력이 맨날 해먹는 이런 나라가 아니라, 당장 남북통일은 아니더라도 남북대결을 완화하고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것으로, 이게 바로 한반도적 시각을 가진 실용주의거든요. 그래서 정당들도 이걸 더 검토하고, 누가 진보냐 누가 보수냐는 논의는 그만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시민들이 민주당을 볼 때도, 정치인들을 그냥 한덩어리로만 보지 말고요. 촛불혁명을 수행하려면 우리가 기득권세력과 싸우면서, 엘리트 카르텔과 싸우면서 반드시 점령해야 할 고지 내지는 요충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현실적으로는 지금 가장 중요한 요충지의 하나가 민주당입니다. 왜냐면 170여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고, 이재명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서 저만한 성과를 올린 실적이 있고, 또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도 내가 비판적인 얘길 많이 합니다만 그중에는 이재명 노선에 동의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러니까 이 요충지에 대해서 시민들은 쟤네는 정당이고 우린 시민사회다 이렇게만 생각해서, 밖에서 민주당에 요구나 하다 그들이 안 들어주면 욕하지만 말고, 이 요충지를 어떻게 우리 세력이 지배할 것인가 장악할 것인가 이 연구를 앞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하고 다른 건 우선 요충지의 중요성이 옛날보다 훨씬 더 커져 있고요, 행정부 권력은 다 저쪽으로 넘어갔고 뭐 언론이든 다른 여러 고지를 저쪽에서 점령하고 있는데 그래도 입법부에 이만한 세력이 있다는 게 옛날에 비해서도 의미가 더 커졌고. 또 하나는 이재명이란 정치지도자가 있지 않습니까? 바깥에서 요충지에 영향을 끼치려는 세력을 대표하면서 지금 당내 기반이 아주 튼튼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당의 후보였고 지지세력이 있고요. 그런 점에서는 지금 그래도 꽤 해볼 만한 싸움이죠. 지금 ‘이재명 사용법’이란 것도 나오던데 저는 그런 구체적인 전략・전술은 모르겠습니다만 민주당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말고 우리 촛불세력과 반촛불세력의 싸움에서 우리가 반드시 차지해야 할 하나의 요충지로 보고 뭘 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보자 이런 생각입니다.

오연호 굉장히 엄청난 말씀을 하셨습니다. 민주당이라는 요충지가 있는데 새로운 사회를 원하는 촛불시민들이 이 요충지를 향해서 요구만 하지 말고 장악해라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민주당 자체를 그냥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말고 촛불정신을 관철할 만한 사람들과의 연대의 관점에서 보자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바로 그 민주당에 대한 주목이 지금 굉장히 많습니다. 이른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이 됐습니다. 그리고 6월달에는 지방선거가 바로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10만명 이상이 새로 권리당원에 가입했다는 뉴스가 있었고요. 이 시간 현재도 권리당원에 가입한 분들이 많이 계실 겁니다. 그리고 민주당과 관련해서 이재명이라는 정치지도자를 이후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두고도 많은 논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어떤 분은 비대위원장 당장 맡아야 한다, 김두관 의원 같은 분은 지방선거에서 바로 도와줘야 된다 이런 말씀도 했고요. 아니다 좀 길게 봐야 한다 이런 분도 계십니다. 백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백낙청 비대위는 좋든 싫든 윤호중 비대위가 출범했으니까 그걸 어떻게 잘 활용할까 이런 생각을 해야지, 이제 와서 뭐…… 더군다나 이재명 전 후보가 비대위원장이 돼서 지방선거를 이끈다는 건 본인도 안 하겠지만 그건 이재명이라는 자산을 너무 헐값에 써먹는 거고요. 자칫 잘못하다간 소모품으로 써버릴 우려가 있어요. 그리고 6월 지방선거 물론 중요하지만 저는 거기에 무슨 큰 기대를 걸기보다는 경기나 인천 같은 수도권의 요충지를 방어하고 서울시장은 탈환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럴 수 없어도 선전을 한다는 수준의 계획을 세우면 이재명씨는 여기저기서 지원유세를 요청할 테니까 자기가 알아서 할 정도는 될 거라고 보고요. 지금 그 이상 하라는 건 이재명에 대한 예우도 아니고 또 일종의 선거중독증이죠. 선거판만 벌어지면 서울시장 꼭 가져와야 된다 이런 생각인데. 그후에 당권 장악하는 문제도 나오는데 그것도 저는 잘 모르겠고, 권리당원들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가서 그분들이 이재명 당대표를 요구하면 될 수도 있는 거고 이재명씨는 처음으로 민주당이라는 당을 장악해서 뭘 해볼 기회도 생기는데, 모르겠습니다 그건. 이재명 후보가 판단할 문제고 시민들의 반응에도 달린 거고요. 저는 이번 선거에도 소위 2030 여성들이 여당 후보를 많이 찍었고 새로 입당하는 당원들 중에도 그분들이 많다고 보는데 참 좋은 현상이죠. 그리고 저쪽 국힘당에서 소위 세대포위 전략이라는 걸 썼는데 그게 백프로 실패했는진 모르겠지만 큰 성과를 못 거두었고. 특히 2030 여성들을 결집시켜서 오히려 그쪽의 젊은 세대 확보를 막지 않았나 싶어요. 이건 참 좋은 것인데 나는 이걸 계기로 그 여성분들한테도 한마디 부탁을 하고 싶어요. 팔십 먹은 늙은 꼰대가 우리한테 뭘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할지 모르지만 그런 건 아니고 여성들이 그렇게 나섰다는 건 정말 나라의 주인으로 또는 촛불의 주인으로 나설 의지를 보인 거 아니에요? 그렇다면 기왕에 나선 김에, 남녀가 같이 살고 또 이렇게나 못난 남자들이 많은 사회에서, 전체의 주인이 돼서 그 못난 사내들도 좀 도와주고 이끌어주면서 이 나라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겠다 하면 좋겠어요. 꼭 우리 여자들 삶이 너무 팍팍하니까 위험하니까 그걸 더 위협하는 새 당선인 새 정부에 맞서 싸우겠다 이것만 아니고. 맞서 싸우는 건 중요해요. 그건 해야 하는데, 그걸 넘어서 정말 나라의 주인이라는, 촛불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정치참여를 해주면 더 좋겠다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연호 함께하는 동지라는 큰 틀에서.

백낙청 못난 사내들도 좀 도와주고 이끌어주고. 혼내줄 건 혼내주고.

오연호 지금 비대위를 맡기거나 지방선거에 차출하거나 이런 건 이재명이란 자산을 너무 헐값에 넘기는 거다 이런 표현 쓰셨습니다. 그런데 아까는 이재명이라는 정치지도자와 촛불이 연대할 것인가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지방선거라는 정치 이벤트를 뛰어 넘어서 두 세력이 어떻게 강고히 연대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죠. 거기에 비전과 가치에 대한 공유 기간이 있어야겠고. 그런데 지난 선거기간에 보면 그걸 충분히 공유하기에는 뒤늦게 두 세력이 결합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아쉬웠는데 오히려 큰 틀에서 본다면 이재명 후보가 이번에 약간 쉬는 시간을 갖는 게 더 강고한 연대를 쌓고 이후에 더 자신있게 성공하는 촛불 2기 정부를 이끌어내는 데 더 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시군요.

백낙청 그렇죠. 우리는 져서 참 비통하고 속상하지만 이재명이라는 정치인 개인의 커리어로 보면 패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후보와 촛불시민들 간의 결합이 좀 늦게 이루어졌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이재명이라는 사람은 촛불정신하고 친연성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고 봐요. 자라오고 살아온 경력도 그렇고 실제로 2016~17년 촛불대항쟁 때 제일 앞장서서 나선 민주당 정치인이고요. 자치단체장이니까 정치인이란 말이 적합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민주당 인사로서 두드러지게 처음부터 나와서 활동한 것이 일개 성남시장이었어요. 그런 걸로 봐서 이재명은 원래 촛불정신과의 친연성이 있는데 이번 대선을 설계하고 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좀 뒤늦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판단을 갖고 있습니다.

오연호 그게 뒤늦게 나타난 게 서울에서의 마지막 유세. 3월 8일 밤. 그 청계광장에서 말이죠. 이재명이라는 정치지도자와 촛불들의 간절함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촛불을 들고 휴대폰으로 촛불을 만들어서 상록수도 함께 부르고 하는 장면이 있었죠. 저도 현장에 있었습니다만 백낙청 교수님이 생각났어요. 백낙청 교수님이 이 장면을 보고 계실까.

백낙청 저는 나중에 그걸 유튜브로 봤어요. 연설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감동적이었고.

오연호 연설 중에 그런 게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님이 못다 이룬 것,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것을 제가 해내겠다. 그러면서 김구 선생님 말씀하시면서 자주독립과 분단 이런 말씀을 같이 하신 것 같아요. 상당히 본인의 비전과 가치 이런 것을 녹여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낙청 김구 선생이 하신 말씀 중에 후세에서 특히 새겨들어야 할 말은 우리가 정치나 경제・군사의 강국이 되기를 바라지 않고 문화가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는 것인데, 이재명 캠페인에서 그 점은 좀 약했어요. 교육에 대한 비전이라든가. 그러나 그날 청계광장 시점에서는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환기한 것이 아주 적절했다고 봅니다.

오연호 그렇다면 이후에 촛불, 깨어 있는 시민들이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리해봐야 할 텐데요.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언론의 중요성,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하셨습니다. 또 아까 K트럼프 얘기하셨는데 윤석열을 계급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 시대에 불이익을 당할 만한 서민층이 지지하는 모습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언론과 교육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는데요. 어떻습니까? 앞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는 시민들이 이 분야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더 관심을 갖고 실천을 해야 할까요?

백낙청 언론에 대해서 그전에는 주로 조・중・동의 위력에 비해 진보언론이 너무 약하다,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렇게 말해왔는데, 얼마 전 들으니까 유시민씨는 언론이라는 것도 사기업이므로 사주를 따라가기 마련이니까 거기에 기대할 게 없다고 얘기하더군요. 저는 그 얘기가 우리 언론의 상당히 중요한 문제점을 짚었지만 동시에 설명이 다 안 되는 부분은,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개인기업이 아니잖아요. 『경향신문』은 우리사주 기업이고 『한겨레』는 국민주 모집으로 성립한 언론인데 왜 거기도 그렇게 시원찮으냐는 문제를 우리가 풀어야 하고요. 그다음에 아직까지는 저도 물론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욕할 때 있습니다만 그래도 좀 낫게 하는 언론은 인정해주고 북돋아줄 필요가 있지 싶어요. 그런데 왜 비슷해지냐, 이건 우리 사회의 지배 카르텔의 성격이 바뀐 거라고 봅니다. 옛날엔 독재형 카르텔이었어요. 독재에 붙어서 뭐 하는 그런. 기자들은 정말 정부의 압력에 굴복했다든가 또는 기레기 노릇하는 기자가 아니면 카르텔에 못 들어갔고 저항세력 쪽에 가까웠어요. 그러나 지금은 독재형 카르텔, 독재형 부패 구조에서 엘리트 카르텔 구조로 바뀌었고 꼭 어떤 솟아오른 독재자 없이도 그게 굉장히 촘촘하게 연결돼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카르텔에 편입돼 있다고 봐요, 저는. 거기서 오는 언론계의 체질변화, 언론인의 체질변화를 우리가 더 주목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교육에 대해서는 언론하고 관련된 교육 문제만 얘기하죠. 언론의 사명은 물론 사실보도 진실보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 전체가 갖추어야 할 어떤 미덕이랄까 민주주의를 위한 요건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언론에서 사실을 열심히 캐내서 폭로하고 보도하고 알려만 주면 세상이 변하리라 하는 건, 18세기 서구 계몽주의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서양의 역사에서는 그것이 필요한 이데올로기였고 또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죠.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이데올로기이긴 하지만, 언론에서 사실만 또는 진실만 열심히 알려주면 세상은 바뀌게 돼 있고 만약에 언론이 그렇게 알려줬는데도 대중이 안 바뀌면 몽매한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서구 근대주의에 물들어 있는 엘리트 의식이라고 저는 봅니다. 교육이 지금 대학교육이든 중고등학교부터든 오로지 지식의 축적에 집중돼 있잖아요? 그런데 지식의 축적만을 목적으로 하다보면 결국 지식 많이 가진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 능력만큼 잘사는 게 당연한 게 돼가지고, 사람들이 그런 데 물들어놓으면 진실을 알려줘도 움직일 도리가 없어요, 그런 사람들은. 그래서 지식보다는 지혜, 또 우리의 전통적인 지혜, 인문적인 지혜를 포함해서 그런 지혜를 함양하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목표이고 지식은 그 수단으로 쓰여야 된다 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합니다.

오연호 그래서 지식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혜를 나누는, 그래서 우리 공동체가 어디로 가야 될 것인가를 같이 나누는 그런 걸 평상시에 해야 되겠죠? 선거 때가 아니라.

백낙청 그렇죠. 지혜라는 것도 지식처럼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고, 자기가 그야말로 수행을 해서 깨달아야 되는 게 지혜 아닙니까? 터득해야 하는 것. 그런 훈련을 일상화하는 교육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 물론 정당한 알음알이·지식이 더해져야겠죠. 지금 과학의 시대에 옛날같이 선방에 앉아서 깨달으면 다 되는 건 아니니까요.

오연호 언론의 중요성, 교육의 중요성이 있는데, 지난번 이 자리에 김민웅 교수님이 나와서 선거 때만 되면 너무 임박해서 이 사람 찍어주세요 하는 걸 벼락공부에 비유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5년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만 평상시에 그러한 건전한 토론이 가능한 공동체들을 촘촘하게 만들어가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요. 오늘 백낙청 교수님을 모신 이유는 낙담하고 있는 오마이TV 시청자들에게 뭔가 힘을 갖게 해주자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정읍 유세에서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우금치 선배들의 패배를 반복하지 말자.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승리해야 한다.’ 이런 표현을 했는데, 그러나 0.7퍼센트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역사적으로 패배의 아픔을 간직한 분들이 그동안 한국 근현대사에서 엄청 많지 않았겠습니까? 어쩌면 그 눈물의 역사를 딛고 우리가 여기 서 있는 건데요. 그분들은 어떻게 그런 패배의 역사를 헤쳐나갔나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단 정읍 유세장의 영상부터 짧은데 보도록 하겠습니다.{(영상 시청) 방금 다시 들어봤는데요. ‘우금치 선배들의 패배를 반복하지 말자’ 이 대목이 참 다시 다가오네요. 그동안 근현대사의 수많은 패배가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 선배들은 그걸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는데요. 그 극복할 수 있는 힘, 에너지의 원천을 백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백낙청 우금치 전투는 패배해서 뼈아픈 것도 있고요, 또 희생자가 그렇게 많이 나왔다는 사실이 뼈아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역사적인 의미라고 할까 그런 것은 참 막대하죠. 그런데 신동엽 시인이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를 쓰면서 그중의 한 절에서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인이 정확히 무엇을 껍데기로 보고 뭘 알맹이로 봤는지는 짧은 시에 안 드러나는데, 우금치 전투나 희생자를 우리가 기려야 하지만 그런 패배를 미화하는 경향도 있어요. 이재명 후보가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은 이번에 우리 지지 맙시다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좀 덜 다치고 싸웁시다 하는 것도 있다고 봐요. 그건 이재명씨가 처음 한 얘기가 아니고, 동학 직후에 그때 말로는 한 30만명이 희생했다고 하는데, 30만명이 말이 쉽지 얼마나 참담했겠어요, 유족들까지 다 치면. 그래서 낙담으로 다 주저앉고 온 국민이 집단 우울증에 걸릴 법한데, 이때에 우리가 앞으로는 덜 다치는 안 다치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 세상의 기운을 한번 바꿔야겠다 하고 나서신 분이 강증산 선생이에요. 그래서 소위 천지공사를 하고 해원상생을 주장했고. 그래서 나는 우리가 동학혁명에서 그렇게 처절한 패배를 하고도 불과 25년 만에 3・1운동 일으킨 것, 사반세기 만에 그런 거대한 거족적인 항일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에 꼭 강증산 선생의 노력뿐 아니라 이렇게 시대의 기운을 바꿔놓는 노력이 여기저기서 있었던 덕이라고 봐요. 그래서 3・1운동은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짖으면서도 평화적인 운동으로 시작했잖아요. 물론 하다보니까 일본이 탄압을 하니까 이쪽에서도 산발적인 무력저항이 일어났지만, 우리 민족은 평화적인 혁명을 지향한다는 그 패턴을 확립한 게 3・1운동이거든요. 그런데 3・1운동 이후에 평화시위만 가지곤 안 되니까 무장독립투쟁을 해야 된다 한 분들의 공로를 우리가 폄훼해서는 안 되죠. 그분들은 참 필요한 운동을 하셨고 그 과정에서 희생을 많이 치르셨지만 우리 역사의 주류로 보면 그때부터 평화혁명입니다. 그것이 이어져서 드디어 촛불혁명이라는 참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평화적인 시민혁명을 이루었는데, 앞으로 그 전통을 우리가 확고히 이어가야죠. 그러기 위해서 아까 시민사회가 활발해져야 하고 언론문제도 더 깊이 탐구해야 되고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이 싸움에서 어떤 하나의 요충지라면 그 요충지를 우리가 평화적으로 장악해서 이런 우리의 평화투쟁의 도구로 삼아야 된다는 얘길 했던 것인데, 이재명 후보도 아마 그런 생각까지 하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짐작합니다.

오연호 오늘 백교수님 좋은 말씀 많이 주셨는데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됐습니다. 댓글 보니까 ‘백낙청 교수님 자주 모셔주세요’ 하는 댓글도 있던데요. 종종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백낙청 교수님도 오마이TV에 자발적 시청료를 내는 회원이 되셨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백낙청 사실은요. ‘10만인 클럽’이란 걸 처음 만드실 때……

오연호 자발적 시청료 내는 사람들이 10만인 클럽. 10만인 클럽이 뭐냐면, 10만명이 좋은 언론을 후원하는 모임을 만들자, 이걸 저희가 한 10여년 전에 했었거든요.

백낙청 그거 만드실 때 내가 10만원 냈을 거예요. 그후에는 더 안 내다가 이번에는 다달이 만원씩 내기로 했습니다.

오연호 이제 헤어져야 되니까 오마이TV 시청자 분들께 마무리 말씀 주시면 되겠습니다.

백낙청 글쎄요, 제가 오늘 뭔가 여러분께 힘이 되기도 하고 또 앞날에 더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성찰에 대해서 제 나름의 소견을 밝히고자 했습니다만,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가 얼마나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다들 힘내시고 우리 사회가 겪어온 수많은 시련을 이번에는 더 멋지게 극복하도록 노력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