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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록] 5권 해설

실천 현장에 나선 백낙청의 분단체제론

유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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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회화록』 제5권은 2005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최근의 대담과 인터뷰를 수록하고 있다. 불과 2년 반 동안의 회화록이 거의 500면에 달하고, 꼭지 수도 앞의 책들에 비해 훨씬 많다. 대화의 주제 또한 아주 다양한데, 군데군데 선생의 개인사와 사상적 궤적을 회고하는 대목도 적지 않게 있다. 아마도 이제 우리 사회의 원로 지성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이 널리 인정되고 요청되는 그만큼, 선생 자신의 이력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도 빈번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신문이나 방송, 잡지 등 각종 매체의 인터뷰와 대담이 부쩍 늘어났는데, 이 2년 반은 선생의 개인사에서도 가장 바쁜 시기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2005년 초 선생은 새로 결성된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의 남측대표를 맡아 통일운동의 현장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짤막한 인터뷰가 부쩍 잦아진 것도, 때로 반복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눈에 띄는 것도 통일운동가로서의 역할과 활동이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회화록 다섯 권은 주제별이 아니라 시기별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런 구성은 시대의 기록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시대와 현장에 밀착해 살아온 선생의 삶의 궤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선생은 지난 40여년간 문학평론, 영문학연구, 사회비평, 『창작과비평』발간,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등 다양한 이론적·실천적 활동을 해왔지만 거기서 모종의 일관성을 확인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책에서 보듯 새로운 방식의 통일운동 이야기에서부터 ‘한국문학의 보람’에 관한 이야기로, 또 불교 이야기로 갔다가 북한 핵실험 사태 이야기로 이어지는 이런 회화록이 세상에 또 있을 성 싶지 않지만, 여기서도 그저 관심사의 다양성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서로 통하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면모를 보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선생은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자, 그리고 『창작과비평』 편집인으로 활동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성이다. 그런데 필자 주변의 지인 가운데는 거대한 문명 전환을 드넓게 사유하는 선생 같은 지식인이 범국민적인 통일기구의 대표로서 남북간, 혹은 조직 내부의 소모적인 갈등에 시달리면서 아까운 역량을 소진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다. 또 혹자는 선생의 창의적인 식견과 경륜이 정치적 고려와 공식적 목소리를 내야 하는 처지 때문에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까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선생을 잘 모르는 소치이기도 하거니와, 이 책은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하다. 아무래도 때로 조심하고 말을 아끼는 부분이 없진 않겠지만, 독립적 지식인으로서 평소의 소신이 한결같이 그러면서도 좀더 대중적으로 개진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생의 한층 근원적인 관심과 구체적 현장에 선 통일운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는 것이 이 책을 제대로 읽는 요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수록된 자료를 이전에 대략 절반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이번에 한꺼번에 읽고 나서는 현재의 범국민적 연대기구의 대표직이 선생에게 절묘하다 싶을 정도로 잘 어울리는 공직(선생의 표현을 빌면 ‘비정규직 공익근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분단체제의 변혁을 역설해온 지식인으로서 민간통일운동이 무척 의미있는 실천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현재 선생이 제창하는 시민참여형 통일의 관점에서 이렇듯 광범위한 범국민적 연대기구만큼 적절한 실천의 장을 찾기는 어려우리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각기 다른 갈래와 노선의 통일운동들이 선생의 통합적 지혜를 정녕 필요로 한다는 실감을 갖게 된 것이다. 아마도 특유의 거시적 시야와 유연한 정세판단은 과거의 통일운동이 넘지 못했던 문턱을 넘어 운동의 지평을 한층 넓힐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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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년간 시대상황에 밀착한 선생의 사유의 특징은 무엇보다 ‘그날그날의 현장’에 충실하되 언제나 ‘긴 안목의 시야’를 함께 견지하는 데 있다고 보인다. 여느 지식인들과 두드러지게 다른 면모가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 정세판단을 무척 중시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언제나 거시적 시야와 결합하고자 하는 점이다. 이렇듯 철저히 실사구시적인 관점은 그날그날의 일에 매몰되어 큰 흐름을 놓치는 논의나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상 무책임한 거대담론 양자에 대한 경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장 이 책에서도 한편으론 “거대담론을 안하다 보면 남의 거대담론에 자기도 모르게 포로가 될 수 있음”(「통일시대의 남남갈등과 실명비평」)을 꼬집기도 하고 다른 한편 “세정(細情)을 헤아리고 폐부를 찌르는”(「분단의 과거, 평화의 미래」) 데 실패하는 원론적 논리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듯 ‘그날그날의 현장’을 중시하는 관점은 선생의 독특한 진리관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듯이, 예술이나 올바른 실천을 통해 드러나는 진리가 과학의 진리보다 한급 차원이 높다는 관점이다. 진리란 인간이 알 수 있는 어떤 대상이나 실체가 아니라, “그날그날 알아야 할 것을 알고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들어주는 것”(「학문의 과학성과 민족주의적 실천」)이라는 선생의 지론은 통상적인 진리관과는 너무 다른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친숙하고 실감에 와닿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생각해보니, 필자가 선생을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이런 사유방식에 공감하고 가르침을 받았으면 해서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선생과 처음 만나 인연을 맺은 것이 1982년 가을이니, 어느덧 25년이 된 셈이다. 그때 복직한 지 얼마 안된 선생을 뵙고 싶던 차에 마침 졸역서가 출간되어 한권 드린다는 핑계거리가 생겨 직접 찾아간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를 빌미삼아 그 이후 맑스에 관한 석사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몇 차례 더 선생의 연구실을 찾았다. 당시 맑스의 진리관이 인식과 대상의 일치라는 통상적인 진리관과는 다른 새로운 진리관을 예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선생께 의견을 물으러 간 것이었다. 실천의 장에서 드러나 지속되는 진리라는 발상을 맑스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물음이었는데, 지금 기억해보면 그런 면이 분명 있지만 딱히 그렇다고 규정하기도 좀 어려운 것 아닐까 하는 정도의 절제된 답변을 들었던 것 같다.

당시 선생의 다방면에 걸친 글들은 주체적인 서양학을 고민하고 모색하는 연구자에게는 좀처럼 보기 드문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국내에서 서구 이론에 누구 못지않게 밝을 선생이 우리 현실문제에 소홀하면서 외국이론을 들먹이기 좋아하는 우리 지식계를 비판하는 것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서양학을 하는 데 가져야 할 주체적 인식이 단지 고유성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세계사적 시야에서 가능하다는 것 또한 일찍부터 선생이 체득한 신념이었던 것 같다. 선생이 통일의 문제를 단순한 민족문제가 아니라 세계체제 전체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분단‘체제’ 극복의 문제로 보게 된 것도 이런 믿음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그간의 서양사 공부길에서 선생과 교감하기가 좀 용이했던 데는 아마도 세계체제론에 대한 공감이 일부 작용했으리라 짐작한다. 1982, 83년 무렵 일부 서양사학도 사이에서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저작이 막 읽히기 시작했는데, 필자는 그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뭔가 새롭게 개안이 되어가는 느낌을 가졌다. 그런데 선생이 1983년에 쓴 「학문의 과학성과 민족주의적 실천」이란 글에서 세계체제론의 분석틀을 원용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마 선생 특유의 해체주의적 감각과 세계사적 시야로 인해 세계체제 분석틀을 수용하는 것이 좀더 쉬웠으리라 짐작된다. 세계체제론을 적절히 활용하게 되면서 그 이전의 문제의식과 생각은 한층 적확한 표현을 찾아 이론적 정교함을 더할 수 있었고 분단체제론으로 진전해갔다고 할 수 있겠다. 선생이 1977년에 쓴 「역사적 인간과 시적 인간」이란 글을 우연히 다시 읽어본 적이 있는데, 통일은 세계사적 과제이기에 “통일 이전에는 적어도 무엇이 와야 하고 통일 다음에는 대저 무엇이 올 것이냐에 대한 차원 높은 비전이 없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주장을 접하고 분단체제론이 이미 오래전에 싹트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간 보면 선생은 매 글마다 끊임없이 뭔가 새로운 문제를 던지거나 모종의 돌파를 해내는 것같이 보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이전에 쓴 글들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계간 『창작과비평』의 목표인 ‘한결같되 날로 새로운’ ‘나날이 새로워지되 한결같은’이란 문구는 어쩌면 선생을 가리키기에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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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권의 ‘회화’가 이루어진, 2005년부터 지금까지 2년 반의 시대적 정황을 여기서 특기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다만 선생은 통일운동의 현장에 적극 참여한 2005년을 지나면서 6·15공동선언 이후의 현재 국면이 분단체제가 흔들리는 동요기가 아니라 무너지고 있는 해체기임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층 자신있게 말한다.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는 것, 앞으로 과거의 안정적 분단체제의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다고 반드시 바람직한 통일이 된다는 것은 아니고 시민참여형 통일을 이루거나 크게 망하는 갈림길에 들어섰다는 것, 아마도 대략 10년 안에 남북이 국가연합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리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고 마음공부를 하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 등등 다소 모험을 거는 과감한 주장과 지혜로운 대응방안에 대한 숙고된 생각이 이 책에서 명료하게 개진된다.

2006년 5월 출간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에서도 이런 정세관은 어느정도 피력되었지만 이 『회화록』은 통일운동의 내밀한 사정과 전략 방향까지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6·15공동위원회의 활동과 관련해 올바른 정세판단에 근거한 노선정립이 강조되는데, 그 요체는 새롭게 열린 공간에 걸맞는 새로운 통일운동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은 새로운 시대와 국면에 맞게 넓어져야 한다는 데 있다. 6·15공동선언이 한반도식 통일의 윤곽을 제시했고 시민참여형 통일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6·15 이전 시대의 타성에 머물러 가령 통일운동을 정부를 겨냥한 운동공간 확보를 위한 투쟁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선생은 현재 네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 느슨한 연대기구인 6·15공동위원회 결성과 성공적 유지에 일단 큰 의의를 두면서, 과거에 통일운동에 직접 나서지 않던 시민사회단체들이 여기 가세한 사실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통일연대와 민화협이라는 통일운동 기구에 7대 종단과 시민단체가 함께한 4자 구도에서, 길게 볼 때 통일운동에 나서지 않은 대중에 대해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종단과 시민단체들이 어떤 몫을 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식 통일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층 더 중요한 것은 다수 민중이 변해야 할 터인데, 선생은 이 점에서 한결같이 낙관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이다. 이는 현실 자체에서 긍정적인 가능성의 싹을 찾아 가꾸고자 하는, 거의 체화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가령 작년 10월 북한 핵실험 사태 때도 선생은 그것이 당장 시민참여의 폭을 좁히긴 했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분단체제 속에 살고 있음을 일깨워줬기 때문에 “이걸 계기로 시민의식이 한층 더 성숙해서 저는 종국에는 시민참여형 통일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는 것이다.(「북한의 핵실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 또한 남북간의 관계가 지금처럼 빨리빨리 안 풀리는 것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니고 시민참여형 통일에서는 현실에서나 마음공부에서나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기에 오히려 다행인 면이 있다고 본다. “통일의 과정에 중요하게 참여해야 할 당사자로서 필요한 공부를 하고, 준비하고, 사업을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니, 물론 너무 오래 걸린다면 곤란하지만 약간의 시간을 버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한반도식 통일과 북의 핵실험」, 본서459면)

서준섭 교수와의 「불교, 로렌스, 원불교는 내 문학비평의 오랜 화두」란 대담은 이 『회화록』에서도 선생의 사상적 바탕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는 점에서 일독할 만한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지공무사(至公無私)에 관한 두 사람의 대화였다. 요즘 젊은이들이 공보다 사를 우선시한다는 대담자의 말에 대한 선생의 답변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굳어진 상투적 사고를 전복시키는 선생 특유의 면모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말하며 자신과 남을 동시에 위할 줄 아는 사람을 최고로 치지만, 어떤 경전에서는 그 다음 등급으로 남만 위하고 자신을 위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 자신만 위하고 남을 위할 줄 모르는 사람을 꼽는다고 들었습니다. 자기를 제대로 위하다보면 남을 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배우게 되는데 그 반대의 경우 즉 남만 위하다 보면 끝까지 자기를 위하는 공부를 못하기 쉽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대로 ‘사’를 챙기다 보면 ‘이타’를 하고 결국 ‘지공무사’의 경지를 향해 진급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앞 세대가 부르짖던 ‘공’이 과연 정말 ‘공’이었는지도 보아야 하고 혹시 ‘공’이 아닌 걸 ‘공’으로 치장해서 도모했다면 젊은이들이 그걸 일단 깨뜨리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것인데, 확실히 선생은 그저 지당한 말씀으로 점잖게 꾸짖고 마는 그런 원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특히 오래 전부터 이상주의에 대한 선생의 경계와 비판은 남다른 데가 있었지 싶다. 민중의 생활상의 요구를 존중하고 이에 근거한 실천을 수행하는 운동만이 현실적인 위력을 발휘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결국 통일운동도 젊은이들을 비롯한 민중이 자신의 일상적인 문제, 생활상의 요구와 맞물려 있는 분단체제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하는 과제를 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시민참여형 통일에 걸맞은 새로운 통일운동, 혹은 ‘어깨에 힘 빼고 통일하자’는 표현도 곧 이상주의를 버리고 민중의 일상적 요구에 좀더 다가가자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선생이 학술회의나 강연에서도 백병전 같은 토론에 강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이 『회화록』을 한꺼번에 읽고 나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해체와 전복의 사상가이자 토론가임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불과 2년 반 동안의 『회화록』이 30여 꼭지에 500쪽에 달하지만 그 내용 또한 드넓은 사유와 군더더기 없는 치밀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이는 그때그때의 주어진 현실이 요구하는 데 대해 항심으로 응대하면서 삶 자체를 깨닫고 닦아가는 공부길로 삼아온 과정의 소산이 아닐까 싶다. 이 『회화록』을 다 읽고 나서는 거꾸로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깨달음과 닦음의 공부길에 대한 감각을 크게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柳在建│부산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