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리얼리즘론] 운동으로서의 리얼리즘론, 도전과 갱신의 역사

*이 글은 『한결같되 날로 새롭게: 창비 50년사』(창비 2006)에 수록되었습니다―편집자 주

 

황정아 黃靜雅
문학평론가,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저서 『개념 비평의 인문학』, 역서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도둑맞은 세계화』 등이 있음.

 

식민지시대 및 해방직후의 시기를 지나 한국문학사에서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다시 생명력을 부여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점에 리얼리즘이 전면에 나선 데는 여러가지 요인을 살필 수 있다. 무엇보다 당시가 급속히 진행된 경제개발이 낳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이 속속 가시화되고 정치적으로도 이른바 비상사태가 일상화되다시피 한 위기의 시대였다는 사실이 주된 배경이리라 짐작된다. 그렇듯 ‘주어진’ 조건뿐 아니라 온갖 위기를 정면으로 떠안아야 했던 주체들이 민중의 이름으로 호명되고 또 스스로를 그렇게 주체화하기 시작한 점도 당대 현실에 대한 관심과 대결의식을 근간으로 삼는 리얼리즘의 재등장과 무관할 수 없다.

70년대초의 리얼리즘 논의는 60년대에 활발히 진행된 참여문학 논쟁의 연장이자 발전이라 할 수 있으며 사실 한국문학에서 리얼리즘의 역사는 곧 리얼리즘 ‘논쟁’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출발점부터 개별 국면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창작과비평』의 발자취는 그 어느 것보다 뚜렷하다. 1969년 여름호에 실린 백낙청의 「시민문학론」에는 당시 문단 일각이 제기한 소시민문학론에 대한 반박과 더불어 이후 전개될 리얼리즘론의 주요 골격이 드러나 있다. 이 글은 서구에서 시민문학의 전통이 발자끄와 똘스또이 등의 리얼리즘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보면서 그것이 참다운 “시민문학이 리얼리즘을 요구하는 어떤 필연적인 사유가 있기 때문인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리얼리즘이 무엇인가 하는 점과 관련해서는 일차적으로 당대 현실을 사실적 기법으로 그리는 것을 리얼리즘이라 지칭할 수 있겠으나 ‘진정한 리얼리즘’은 사회와 인간을 보는 어떤 원숙한 시각과 균형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재와 기법이 전부가 아니고 세계관·인간관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요소라는 설명으로, 리얼리즘에 요구되는 이런 세계관·인간관은 ‘시민의식’으로도 표현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통상 리얼리즘의 핵심적 특징으로 생각되어오던 사실적 묘사와 창비가 내세운 리얼리즘은 애초에 간단치 않은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원숙한 시각과 균형 잡힌 세계관 혹은 시민의식이 결여된 사실적 묘사는 특정한 허구를 현실로 참칭하는 효과적 수단으로만 기능할 우려가 있다. 같은 이유로 나날이 복잡해지는 현대사회를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오히려 반(反)사실주의 기법이 적합하다는 주장도 종종 제기된다. 그럼에도 리얼리즘을 말하는 것은 여전히 “시민의식의 구체적 표현이 사실성을 요구하는 원래의 논리가 변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적 묘사는 어떤 층위에서는 리얼리즘의 핵심이고 또다른 층위에서는 핵심이 아닌 요소가 된다.

창비의 리얼리즘론은 이렇듯 리얼리즘이란 무엇이며 왜 리얼리즘인가 하는 질문을 내포하면서 출발했다. 리얼리즘이 무엇인가는 서구에 존재했던 문학사조로서의 리얼리즘(사실주의)과 연관을 가지면서도 그 사조가 역사적으로 노정한 한계에 머물지 않는 다른 종류의 리얼리즘을 추구했기에 제기된 질문이다. 이 추구는 리얼리즘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는 숱한 비판과 맞부딪혀야 했으므로 왜 리얼리즘인가에 관한 해명과 탐구를 동반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왜 리얼리즘이 요구되는가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다시 리얼리즘이 무엇이기에 그러한가를 말해야 했다. 그렇게 두 질문은 맞물려 있었고 서로의 단서를 붙잡고 이으며 나아갔다.

『창작과비평』 1970년 여름호에 실린 구중서의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형성」 역시 바로 다음 계절에 나온 『문학과지성』의 「한국소설의 가능성—리얼리즘론 별견(瞥見)」(김현)과 대립구도를 형성하며 리얼리즘의 정의, 그리고 한국문학에서의 리얼리즘의 요구와 가능성에 관한 견해를 제출했다. 특히 자연주의와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묘사에 그치는 것이 리얼리즘은 아니며 사회적 전모의 충실한 묘사를 통해 새로운 현실을 개척하려는 비전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는데, 이즈음의 논의에 발자끄 소설에서 이루어졌다는 이른바 ‘리얼리즘의 승리’에 대한 해석이 빈번하게 거론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 글은 “한국적 리얼리즘의 형성이 원만히 성취되는 데에 따라서 오늘의 한국문학이 비로소 근대적인 체질과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며, 이 리얼리즘의 문학은 한국 현대문학의 창작적 실제와 문학사의 전진에 토대가 되는 원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므로 리얼리즘이 주류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뒤이어 나온 염무웅의 리얼리즘 논의1)도 리얼리즘을 소박모사론으로 규정하는 입장을 반박한다. “객관적 현실의 전체성을 그 발전적 경향에 있어서 민감하게 포착하는 능력”으로서의 작가적 상상력을 갖추지 못할 때 “현실의 일부분에 대한 ‘객관적’ 묘사는 현실 전체에 대한 ‘주관적’ 강조가 될 수도 있고, 사물의 일부분에 대한 정확한 묘사는 자연과 인간현실 전반의 문제에 대한 부정확한 과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실의 깊이를 드러내면서 풍부한 삶에 기여하는 ‘참된 리얼리즘’은 “본질적으로 반도식적”이며 “시적 환상이나 예언적 비전과 결코 모순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70년대초에 전개된 창비의 리얼리즘 논의는 주로 서구문학을 출발점 및 참조점으로 삼아 당대 현실과 리얼리즘의 내적 연관성을 규명하고자 했으므로, 한국문학이 만들어가야 할 리얼리즘이 서구 사조들과 어떻게 같고 다른가를 규명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여기에는 또한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면서 사회의 전모나 전체성을 포괄하는 작업으로서의 총체성 문제, 서구적 시민계급의 부재 혹은 미성숙이 한국의 리얼리즘 문학에 미칠 영향 등, 리얼리즘을 둘러싸고 이후 더 본격적으로 진행될 주요 논쟁점도 함축되어 있었다. 리얼리즘이 무엇인가뿐 아니라 그것이 왜 요구되는가를 물었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논의는 한국문학의 현단계 성격과 과제를 규명하는 문제와 이어져 있었고 그럼으로써 민족문학론의 발전을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같은 시기에 제기된 창비의 민족문학론은 리얼리즘 논의와 긴밀히 조응하면서 상호 진전과 심화의 과정을 촉발했다. 민족문학론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제3세계문학론이 가세하면서, 70년대초에 이루어진 리얼리즘 논의가 서구 리얼리즘 이론의 자장에 머물러 그 이론의 문제점을 예민하게 의식하지 못했다는 반성도 있었다. 백낙청의 「제3세계와 민중문학」(1979년 가을호)은 그같은 한계를 지적하면서 “민족문학론은 제3세계 민중의 현실의식에 부응하는 온갖 반자연주의적 전통과 실험에 대해 좀더 개방적인 자세를 지님으로써 ‘리얼리즘’의 말뜻을 둘러싼 부질없는 논란의 수고를 덜어준다”고 이야기한다. 이 글은 제3세계문학의 성과를 상세히 평가하는 가운데 “단순한 기법상의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는 제3세계의 개별적인 문학 및 작가에 의해 얼마든지 신축성 있게 취사선택될 수 있는 것이며, 해당 민족과 민중의 구체적인 상황에 맞는 현실인식과 현실극복의 노력을 작가가 충실히 해내느냐 못해내느냐만이 성패의 결정적 척도”임을 주장한다. 서구의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와의 차별성을 추구하면서도 발자끄 등 서구 작가에 여전히 매인 채로 진행되던 리얼리즘론이 한결 확장되어 독자적 내용을 축적하게 된 것이다. 민족문학론은 또한 리얼리즘이 천착해야 할 당대의 현실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가 하는 점을 규명하고 민중적 지향성을 강화함으로써 리얼리즘 논의에 내실을 더해주었다.

그에 따라 왜 리얼리즘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방식도 진전되어, 제3세계 작가일수록 민중의 삶에 더 밀착하고 그들의 아픔을 더 깊이 공유할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현실에 대한 사실적 묘사를 중시하는 것이 당연한 경향으로 이야기된다. 리얼리즘은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추구한다는 차원에서는 ‘근대화’의 문제이고 서구의 성취를 뒤쫓는 모양새로 보이지만, 동시에 서구 과학이 노정한 기술주의적 한계를 비판하면서 과학과 기술의 의미를 인간다운 삶의 성취와 결부시키고자 노력하는 점에서는 오히려 서구보다 더 전위적으로 인류의 보편적 과제를 수행할 가능성을 지닌다. 제3세계문학으로서의 민족문학이 갖는 ‘선진성’도 마찬가지 논리에서 산출되는데, 이후 정식화될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라는 문제의식이 이런 설명 속에 이미 스며 있음을 알 수 있다.

80년대에 걸쳐 창비의 리얼리즘론은 이론적으로 더욱 치밀해진다. 리얼리즘을 소박모사론 혹은 반영론 일반과 구분하는 작업 역시 논리를 강화하면서 여러 각도에서 진행된다.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고수하는 한 현실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반영이라는 층위는 우연적인 것으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었고, 반영이냐 아니냐 하는 양자택일이나 반영 +ɑ라는 절충으로 넘어갈 일도 아니었다. 창비의 리얼리즘론은 문학작품이 담아야 한다는 ‘현실’ 자체, 그리고 그것을 담기 위해 이루어진다는 ‘반영’ 자체를 탐구하고 해체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70년대 리얼리즘 논의에서 현실에 대한 깊이있고 충실한 묘사가 ‘상상력’의 개입과 작용을 요구한다고 이야기되던 대목은 “인간의 세계는 ‘현실’로서 인간이 체험하는 그것 이외에 따로 없지만 이 현실의 정확한 인식은 ‘시적’ 창조의 과정에서만 가능”2)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창조가 인식을 비로소 가능하게 한다는 진술은 리얼리즘이 기법만이 아니라 세계관의 차원을 포함한다는 주장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본다면 이른바 과학적 인식과 문학적 인식의 구분 또한 달리 설명되어야 하며, 근대 학문이 과학성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세계관의 지향이나 실천적 관심을 폄하하게 된 것이야말로 과학의 본뜻을 저버리는 처사가 된다. 다른 한편 창조적 실천을 통해 인식되는 것은 “진술과 외부사실의 상응(correspondence)을 뜻하는, 또는 진술 자체의 내부적 정합성(coherence)을 뜻하는 협의의 진실성”일 수 없다. 그것은 “‘드러나는 것’이자 ‘이룩되는 것’이고 그 이룩됨은 인간의 인간다운 실천과 무관하지 않”은 진리이며,3) 이같은 진리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리얼리즘의 독자성, 나아가 예술작품의 특이성이 분명하게 설명될 수 있다. 창비의 리얼리즘론에서 거듭 물으며 걸어야 할 ‘길’, 곧 ‘도(道)’가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80년대는 다른 한편으로 민중문학론이나 노동해방문학론 등의 ‘급진적’ 문학이론들이 프롤레타리아문학과 사회주의리얼리즘을 논하며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론을 소시민적이라거나 ‘비판적 리얼리즘’에 그친다고 공격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는 ‘리얼리즘의 승리’를 말한 엥겔스의 발자끄론이나 루카치의 발자끄 평가 역시 비판적 리얼리즘에 갇혀 있었던 소산으로 비판받는다. 그러나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엄밀한 구분을 내세우는 급진적 문학론의 논의가 “중요한 문제제기를 담았으면서도 오히려 진지한 모색을 가로막는 효과”를 낳았음은 백낙청이 정치하게 비판한 바 있다.4) 이러한 구분이 하나의 공식이 되어 작품비평에 적용됨으로써 실제 작품을 판단하는 데서 여러 오류를 양산했고 결과적으로 리얼리즘론의 속류화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는 엥겔스의 발자끄론이 “당파성의 부족이 진정한 리얼리즘의 부족임을 설파하는” “일종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론”이기는 했으나 루카치의 발자끄 상찬이나 마찬가지로 리얼리즘의 승리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패배의 흔적, 곧 “민중과 역사에 대한 믿음의 결핍”을 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80년대 리얼리즘 논의가 흔히 제출한, 방법이냐 세계관이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 어느 한쪽이나 양자 조합의 문제가 아니며 방법이든 세계관이든 지혜를 위한 방편이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90년대를 지나면서 급진적 문학담론의 위세는 현격히 꺾인 반면, 리얼리즘은 이번에는 모더니즘을 상대편으로 한 또다른 종류의 ‘용도폐기론’과 마주하게 된다. 서구에서 흔히 모더니즘이 리얼리즘을 역사의 뒤편으로 몰아내고 대신 들어섰다고 얘기되는 만큼, 이미 70년대부터 리얼리즘의 한 대립항으로 모더니즘에 대한 의식이 있어왔다. 리얼리즘론은 역사와 현실의 불모성과 무의미성을 본질적인 인간조건으로 체험하고 강조하는 모더니즘의 성향을 비판했으며 루카치가 지적한 자연주의와 모더니즘의 근본적인 유사성도 중요한 통찰로 받아들인 바 있었다. 2000년대 초엽의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이 보여주는 특징으로는 모더니즘의 승리를 주장하는 논의가 마샬 버먼(Marshall Berman)의 근대성론을 주로 참조했다는 점, 그리고 이 논쟁이 일정하게는 창비의 내부논쟁 성격을 띠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논쟁을 꼼꼼히 살핀 임규찬의 글5)이 지적하다시피 리얼리즘의 극복으로 제출된 모더니즘론은 리얼리즘을 여전히 서구의 사실주의와 반영론에 묶어놓는 방식으로 정의한 다음 그로부터의 극복을 주장하는 논리를 구사한다. 이는 리얼리즘론이 70년대 이래 끊임없이 서구의 문학사조와 스스로를 차별화해왔다는 사실을 철저히 외면함으로써만 가능한 주장이다. 또한 리얼리즘 운동이 지향하고 실천해온 변화가 이미 불가능해진 세계임을 전제하는 태도는 모더니즘론이 기대고 있는 버먼의 담론이 근대성에 관해서는 극히 유연하게 사유하면서도 근대극복의 지평에 대해서는 사실상 닫혀 있었던 데서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창비 내부의 논쟁을 야기한 최원식의 논의6)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보면서 최량의 리얼리즘과 최량의 모더니즘 사이의 ‘회통’을 이야기한다. 회통론은 리얼리즘을 둘러싸고 수년간 지속되어온 진영논리의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었지만 문예사조사적인 관점을 앞세움으로써 리얼리즘론에 대한 통상적 이해를 승인한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밖에도 창비의 리얼리즘론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론의 도전에 맞서 전형과 재현, 당파성과 총체성을 포함한 기본 개념과 명제를 재해석하고 갱신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수행해왔다. 실제비평의 측면에서도 통상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까지 리얼리즘론의 시각으로 평가함으로써 담론의 함의와 깊이를 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을 맞이한 창비의 리얼리즘론은 단순한 용도폐기론을 넘어 더욱 깊어진 망각에 직면하여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창조적인 비평담론으로 살아 있는가를 자문하고 있다. 민족문학 개념과 마찬가지로 창비의 리얼리즘론은 “현실에 대한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대응을 주문”해왔을 뿐 아니라 스스로는 어디까지나 방편일 뿐 “중요한 것은 창조적 대응 자체”7)임을 기억하고자 했다. 그렇듯 창비가 추구해온 리얼리즘은 무엇보다 운동으로서의 리얼리즘이었으며 스스로를 넘어선 어떤 차원을 내장하고 있었다. 이 차원은 때로 인간다운 삶을 향한 비전과 실천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지혜 혹은 진리를 향한 추구로 표현되기도 했다. 리얼리즘 운동이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듯 자율적이고 완결적이기를 고집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리얼리즘이라는 방편이 어디까지나 ‘문학’으로서의 방편이라는 점, 그리하여 문학의 ‘도’가 발휘하는 남다른 ‘덕’에 힘입은 것이 아니었을까. 50주년 이후에도 창비의 문학론에서 리얼리즘이 여전히 중요한 화두가 되리라 예상할 수 있는 것은 그간 창비의 리얼리즘론이 수행한 운동이 여전히 현재형으로 지속되어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1. 염무웅 「리얼리즘의 심화 시대」, 『월간중앙』 1970년 12월호.

  2. 백낙청 「리얼리즘에 관하여」, 『한국문학의 현단계 I』, 창작과비평사 1982.

  3. 백낙청 「학문의 과학성과 민족주의적 실천」, 『한국민족주의론 II』, 창작과비평사 1983.

  4. 백낙청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론」, 기념논총 간행위원회 편 『민족사의 전개와 그 문화: 벽사 이우성 교수 정년퇴직 기념논총 下』, 창작과비평사 1990.

  5. 임규찬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둘러싼 세 꼭지점」, 『창작과비평』 2001년 겨울호.

  6. 최원식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 『문학의 귀환』, 창작과비평사 2001.

  7. 백낙청 「서장: 민족문학, 세계문학, 한국문학」,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창비 2006,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