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분단체제론] 반국적 인식을 넘어서: 분단체제론의 형성과 발전

*이 글은 『한결같되 날로 새롭게: 창비 50년사』(창비 2006)에 수록되었습니다―편집자 주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정치학.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등, 편서로 『이중과제론』 등이 있음.

 

분단체제론은 현재진행형

1980년대에 이른바 사회구성체논쟁 등 한국사회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거치면서 온건개혁세력의 민주화 요구를 넘어서는 변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증가했고, 그러한 변혁운동의 목표와 경로를 올바르게 설정하기 위해 변혁을 가로막는 한국사회의 구조에 대한 이론적 인식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분단체제론도 이러한 작업의 중요한 성과이다. 동시에 주목할 점은 분단체제론이 사회구성체논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사실이다. 민족문제와 계급문제 혹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 당시 사회구성체논쟁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변혁운동 내의 이론적 혼란을 부채질하고 분열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결과가 다른 나라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론들을 상이한 역사적 경험과 사회구조, 특히 분단국가로서의 특수성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한국, 나아가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분단체제론을 제기한 중요한 동기였다.

『창작과비평』 지면에서 분단문제 내지 분단모순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백낙청이 1991년부터 분단체제라는 개념을 산발적으로 제시하기 시작했고,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창작과비평』 1992년 겨울호)에서 처음으로 비교적 상세하게 분단체제론을 논의했다. 당시 사회구성체논쟁 과정에서 많이 회자되고 뜨거운 주목을 받은 여러 개념들이 역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소멸한 데 반해, 분단체제론은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실천적 검증을 거쳐 한국 및 한반도 문제를 분석하는 도구로 유효성을 상실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접근방법의 측면에서는 분단체제론이 선험적인 이론모델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원들을 길어온 것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구조적 측면에서는 분단체제론의 개방성이 현실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한 이론의 갱신을 이루어내며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체제론’이라는 명칭이 주는 인상과 달리 분단체제론은 초기부터 폐쇄적인 자기완결적 구조를 전제로 하지 않았고, 완성된 이론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분단체제는 위로는 세계체제, 아래로는 남북한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다소 느슨한 체제이며, 분단체제의 작동방식과 그것이 실천에 주는 함의에 대한 개방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이렇게 보면 분단체제론은 각 부분 사이의 관계를 규명해 하나의 종합적이고 정합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이론모델이 아니라 인식방법에 가깝다. 이에 따라 분단체제론은 체제라는 개념을 너무 느슨하게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지나치게 경직된 구조를 구축했던 급진이론들은 그 이후 전개된 현실변화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반면 분단체제론은 현실변화를 자신의 유연한 구조 속에 용해시키고 또한 스스로를 더 풍부하게 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 결과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개념으로서의 생명력을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분단체제론의 이러한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 물론 분단체제론도 현실을 올바르게 분석하기 위한 나름의 이론적 구조를 갖고 있다. 분단체제론이 한국사회에 대한 기존의 접근법들과 가장 크게 차이를 보이는 것은 남과 북을 자기완결적인 사회체제로 간주하지 않고 분단체제를 매개로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분단체제론에 입각하면 남과 북은 외견상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라는 판이한 사회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양자는 교묘하게 얽혀 상호작용을 하며, 이러한 상호작용 내에는 분단체제를 재생산하는 동력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이 남북 사회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방안을 만드는 데 전제조건이 된다. 분단체제 내에서 남북 사이의 상호작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포착하는 개념 중의 하나는 외견상 적대적인 각 단위의 재생산이 상대를 매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적대적 상호의존’이다.

동시에 분단체제는 독립적이고 완결된 체제가 아니라 세계체제, 그리고 남북한 각각의 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체제이다. 논자들에 따라서 다를 수는 있지만 분단체제론은 이 중 세계체제, 즉 자본주의세계체제가 가장 근본적인 규정력을 갖는다고 인식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회문제의 해결이 세계체제 수준의 변혁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체제, 분단체제, 그리고 남북의 각 사회 등의 세가지 차원이 그 속에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들을 규정하는 힘과 그 작동방식에 차이가 있고 세 차원 사이에 긴장관계도 존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 혹은 접근법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들이 각각 어떤 차원의 체제작동과 더 깊은 관계가 있는지를 따져가며 그에 맞는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는 인식적, 실천적 측면 모두에서 변혁주체들의 부담을 크게 증가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부담을 피하는 방식으로 문제들을 극복할 수는 없으며, 분단체제론은 이 복잡하고 다층적인 과제를 감당하는 인식틀을 제공한다.

 

분단체제론을 둘러싼 주요 쟁점들

우리 사회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분단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는 꽤 넓지만 정작 분단체제론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논쟁이 산발적으로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때 제기된 주요 쟁점으로는 다음 세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쟁점은 분석단위이다. 국민국가를 분석의 기본단위로 삼는 것은 특히 사회과학 분야의 오랜 관성이다. 이러한 접근법에서는 분단이라는 것이 체제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는 우연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으로 간주됨에 따라, 분단을 사회체제의 성격을 규정하는 요소로 분석에 포함시키는 데 부정적이다. 세계체제론이 이미 국민국가를 분석의 기본단위로 삼는 이론적 전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바 있고, 현실도 그러한 접근법에 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정작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실제 분석들은 여전히 국민국가를 자기완결적이고 독립적인 분석단위로 다루려는 이론적 관성이 강하다. 분단체제 혹은 세계체제라는 새로운 분석단위에 대한 요청이 이론적 부담을 증가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차원에서 발생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이론적 분석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분석단위 문제는 특히 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론적 쇄신이 가장 절실하게 요청되는 영역 중의 하나이다.

분석단위와 관련해, 분단체제라는 새로운 차원의 분석단위를 설정하는 것을 분단결정론 혹은 분단환원론으로 비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계급, 민족, 생태 등등의 문제가 존재하는데 분단체제론은 이를 모두 무시하고 모든 사회문제를 분단에 귀속시킨다는 오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분단체제론은 이러한 문제들의 존재와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출현하고 전개되는 양상에 분단체제가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들이 고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는 너무도 당연한 요청이다. 어떤 분석단위의 설정 자체를 환원론 혹은 결정론으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한 비판이 되기 어려우며 특히 다른 분석단위와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분단체제론에 대한 비판으로는 더 적절하지 않다.

분단체제라는 분석단위의 도입이 어떤 점에서 현실을 더 적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가가 이 쟁점과 관련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이 직면한 문제들이 분단체제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무역과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의 형성에 분단체제가 어떻게 작용했고 이러한 구조를 개혁하는 작업이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노력과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가, 성평등 실현을 분단체제가 어떻게 가로막고 있는가 등이 이와 관련해 제기될 수 있는 질문들이다. 각 영역에서 분단체제의 영향력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분단체제의 작용을 배제한 분석으로는 이러한 질문들에 좋은 답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자명하다. 여기서 분단체제 극복과 남과 북의 사회문제 해결 사이의 관계라는, 분단체제론과 관련된 다른 쟁점이 등장한다.

즉 둘째 쟁점은 분단체제 극복과 각 사회개혁 사이의 관계이다. 분단체제론은 통일지상주의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분단체제론이 추구하는 통일은 남과 북 각각의 개혁작업이 한반도 차원에서 분단체제 극복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의 통일이다.

현재 통일과 관련한 논의는 여전히 하나의 체제로의 통합을 전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접근은 분단체제 극복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의 체제로의 통합은 결국 어느 한 측의 붕괴나 전쟁 등의 무력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베트남식 통일은 민족적 재앙이라는 점에서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다만 남한 사회에서 북한붕괴론에 대한 기대가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붕괴론은 신기루에 불과했고 오히려 북한 핵개발의 명분을 강화해줄 뿐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북한붕괴론에 입각한 흡수통일론이 남한 내 통일논의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북한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보다는 분단체제하에서 형성된 기득권을 지키고 이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개혁세력 내에서도 냉전체제 해체 이후 독일식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로 통일담론 자체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인식에서도 남한 개혁과 분단체제 극복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통일작업이 설 자리는 없다.

분단체제론은 통일에 대한 창조적 접근을 강조해왔다. 우선, 복합국가를 통일의 모델로 제시했다. 즉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국가연합(confederation)을 이루어가는 방식이 실현 가능한 동시에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목표에도 부합하는 통일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는 단순히 상상으로 만들어낸 방안이 아니라 1972년 7·4공동성명부터 2000년 6·15공동선언까지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모든 정부가 추진한 남북합의의 역사를 기초로 하고 있다. 국가연합의 실현은 흡수통일의 추진이 초래하는 무한경쟁을 방지하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제도적 환경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복합국가모델을 국민국가 사이의 경계 확정을 위한 시도에서 비롯되는 동아시아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데 적용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가연합으로 통일을 실현해가는 것이 분단체제로부터 발생하는 제약에서 벗어나 남과 북 각자의 실정에 맞는 개혁작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냉전이데올로기와 이에 결합해 생명력을 유지한 각종 지역주의, 패거리주의를 청산하고, 사회복지를 증진시키며, 개발지상주의나 지나치게 높은 수출의존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성장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체제통합적 통일모델에서 벗어난다면 남과 북의 사회개혁과 분단체제 극복을 병행추진할 수 있는 통일방안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셋째 쟁점은 분단체제 극복의 주체이다. 원론적으로 분단체제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한반도의 다수 주민이 분단체제 극복의 주체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남과 북의 대다수 주민이 분단체제로부터 불이익을 받지만 이들이 연합해 분단체제 극복운동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다른 문제도 있다. 현실적으로 분단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정부 간 대화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기득권 세력들 사이의 대화가 어떻게 분단체제 극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 두가지 문제는 분단체제 극복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실천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고 결국 남한의 개혁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당장 남북의 주민이 같이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주체로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실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 통일운동만이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실천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남한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은 분단체제의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지평은 남한 사회의 민주주의와 개혁을 위한 실천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즉 분단체제하에서 민주주의와 사회개혁을 위한 실천은 분단체제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계급문제나 생태주의 등과 관련해서도 근본주의적 접근만을 택할 것이 아니라 분단체제 극복을 목표로 하는 대연합을 실현시킬 때 각각이 추구하는 목표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고 진정한 변혁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은 남북의 기득권 세력들 사이의 대화가 어떻게 분단체제 극복에 기여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정부라고 해서 또는 보수세력이라고 해서 모두 기득권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고 분단체제로 인한 불이익을 받는 행위자들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분화는 종종 정부가 남북 대화와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는 동력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수파 내에서는 분단문제에 대해 이념적 접근을 하는 세력이 여전히 헤게모니를 갖고 있지만 실용적 방식의 접근을 선호하는 주장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를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행위로만 간주해 부정적 태도를 취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흐름이 분단체제 극복에 유리한 방향으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존재한다. 물론 기득권 세력이 이를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계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앞장서서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공감대를 확대할 수 있다면 이러한 계기들을 다수 한반도 주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서는 어느 시점에선가 남북의 주민이 같이 주체로 나서야 한다. 당장 어렵다고 해서 영원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위의 두가지 변화가 결합되어 남북협력의 공간이 확장된다면 남북의 주민이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더 협력하고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기도 올 것이다. 분단체제 극복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가는 작업이다.

 

분단체제론의 새 과제

분단체제론은 처음부터 다른 분석단위들과의 상호관계, 그리고 그러한 상호관계의 이론화에 대해 열린 태도를 견지하고자 했다. 분단체제라는 규정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의 기본틀은 바뀌지 않겠지만 객관적 상황의 변화를 소화하며 더 풍부해져가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 지역질서, 그리고 세계질서 모두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작업의 필요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우선 북한의 핵능력 증강이 북한과 다른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북한의 핵능력이 증가할수록 비핵화는 어려워지고 이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건설을 더 어렵게 만든다. 그뿐 아니라 상황의 불안정성도 크게 증가시킨다. 우발적이든 혹은 계획적이든 남북 사이의 군사적 충돌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이유 중 하나가 냉전체제의 해체가 그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북핵문제의 해결은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과 병행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지만 그 어려움이 크게 증가했다. 분단체제의 본질적 측면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분단체제 극복의 어려움은 더 증가한 셈이다. 이러한 역설적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분단체제론의 새로운 과제이다.

또한 분단체제 극복은 한반도 내부에서만 진행되는 작업이 아니라 새로운 지역질서 구축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냉전체제는 해체되었으나 새로운 평화적 질서가 구축되지 않은 와중에 미·중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며 동아시아 질서의 유동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남북관계의 변화가 동아시아 질서에 큰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반대로 동아시아 질서가 어떻게 변화하는가가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분단체제와 동아시아 질서 사이의 관련은 물론이고 동시에 분단체제 극복과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 사이의 선순환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규명하는 일도 분단체제론에 제기된 새로운 과제이다.

이처럼 21세기 들어 남북관계는 물론 동아시아 정세가 더 복잡해지고 유동적인 상황으로 진입한 현실은 분단체제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분단체제론적 문제의식의 중요성을 더 증가시키는 것이다. 분단체제론이 지난 20여년과 같이 새로운 상황에 맞게 스스로를 갱신해간다면 앞으로도 계속 변혁을 위한 지침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