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창비 책머리에] 되찾은 6월을 소중하게

올해는 6월항쟁이 10주년이 되는 해다. 20세기 후반의 세계를 통틀어 4·19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한국의 민주화 투쟁만큼 질긴 성공담도 드물고 그 과정에서 1987년의 전국적 항쟁이야말로 가장 결정적인 고비였건만, 그동안 ‘6월’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6월 자체가 그토록 극적이었던 데 비해 직접적인 결과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실망으로 마감한 것이 그 한가지 이유일 게다. 동시에 4·19나 1980년의 ‘서울의 봄’처럼 전면적인 반동을 겪지 않은 것조차 6월의 존재를 흐리는 데 일조했는지 모른다. 사실은 온갖 좌절과 기복을 거쳤어도 그런 결정적 반전만은 겪지 않은 채 문민화·민주화의 발걸음을 지속해온 것이 우리의 자랑이요, 6월이 그만큼 더 빛나는 까닭인데도 말이다.

아무튼 근년에는 6월이 다시 ‘6·25의 달’로 되돌아가 남북대결을 부추기고 개혁작업을 제약하는 연중행사가 판치는 현상마저 보여왔다. 하지만 누가 그것을 단지 수구세력의 책동으로만 돌릴 수 있을 것인가. 87년의 두 김씨 분열로부터 오늘날 여야간의 보수화 경쟁에 이르기까지 정치지도자들의 책임이 일차로 크지만, 시민사회와 민중운동 또한 6월을 제대로 계승하는 슬기를 보여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편에서는 6·10시위 일주년 때부터 6월을 국민적 정서와 동떨어진 일방적인 통일운동의 시기로 바꾸어버렸는가 하면, 상당수의 급진적 민중운동가들은 6월의 전주곡에 지나지 않았고 87년 7,8월의 노동투쟁을 통해 드디어 혁명의 전야가 도래했다고 믿는 듯했다. 다른 한편, 새로 싹튼 이런저런 시민운동들이 분단 문제나 민중생존권 문제를 외면하고는 자신의 한정된 목표마저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런 상황이라 몇 달 전 본지 편집진이 6월항쟁 10주년을 다루는 이번호 좌담 기획을 구체화할 때만 해도, 10년이라는 산술적인 계산에나마 의지하여 6월을 망각과 혼미로부터 건져보자는 의도가 앞섰었다. 잠수함 사건으로 전국이 시끄럽던 그 무렵에 96년 연말께를 고비로 6월의 기억이 국민들 속에 저절로 되살아날 것을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 날치기 처리 이후의 사태 진전을 여기서 새삼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노동자들을 포함한 다수 국민과 정부 간의 대결이 한창일 때 열린 이번 좌담 「6월항쟁 10년 후의 한국현실과 개혁문화」에서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좌담 당시에 이미 사태가 유동적임이 지적되었지만, 그 직후에 여야 영수회담 계획이 발표되었고 뒤이어 ‘국회에서의 재론’과 노동계 지도자들에 대한 영장집행 보류라는 결론이 나왔다. 여기에 또 하나의 대사건이 숨가쁘게 뒤따랐으니 바로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진폭이 얼마가 될지 짐작하기 힘든 ‘한보 사태’가 그것이다.

이런 격동의 와중에 예컨대 우리가 해놓은 좌담이 얼마만큼의 효력을 지닐까? 우리 자신은 그 시점에서의 진지하고 정직한 논의라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사태가 벌어질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통찰도 적지 않은 좌담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고, 어느정도 그리 되었다고 믿는데, 독자 여러분의 일독과 엄정한 판단을 기다릴 뿐이다. 아무튼 1월 총파업을 포함한 지난 몇 주간의 경험은 6월의 유산이 우리 사회에 생생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6월의 되풀이가 아닌 새롭고 진전된 대응을 위해 중지를 모을 필요를 절실히 일깨워주고 있다. 모처럼 되살아난 6월의 정신을 우리 모두 소중히 간직하고 키워나가야겠다.

지난 96년은 ‘창비’에 영광도 많고 힘든 일도 적지 않은 한 해였다. 창간 30주년을 맞아 나라 안팎의 수많은 분들로부터 과분한 찬사와 덕담을 들으며 한껏 보람을 느낀 반면, 이런저런 기념행사에는 노고가 따르게 마련이었고 높아진 위상에 걸맞는 자기쇄신의 부담이 가중되었으며, 이를 위한 노력의 도정에 시련과 시행착오 또한 없지 않았다. 그러나 편집인중심 체제에서 최원식주간 중심으로 편집위원들과 실무진이 적극 참여하는 체제로 이행하는 계획만은 (편집인 개인의 갑작스런 신상변화와도 겹쳐 예정보다 오히려 앞당겨지면서) 순탄한 진행을 보았다. 이번호의 내용도 이 점을 입증하고 있다고 믿는다.

좌담 이외의 논단은 특별한 초점을 잡기보다 그동안 본지가 중요하게 제기해온 문제들에 대한 후속 논의를 확보하는 쪽에 힘을 기울였다. 생태계 문제에 관한 권혁범씨의 「무엇이 생태지향적인 사고를 가로막는가」, 91호와 93호의 가상현실 논의를 잇는 류승호씨의 「싸이버 스페이스에서의 자아와 공동체」, 지난호 글루센꼬의 글에 대한 반론의 성격을 띠는 배은경씨의 「다시 읽는 ‘서구 페미니즘과 우리’」, 그리고 본지가 여러 차례 다루어온 새로운 학문적 패러다임 문제를 ‘유럽중심주의 극복’이라는 지난한 과제로 파악하는 월러스틴의 최근 방한강연록 등이 그런 예들이다. 여기에 성격과 체제가 좀 다른 전수연씨의 「역사와 상징―프랑스 현대사 속의 마리안느」가 색다른 읽을거리를 보태준다.

문학지이자 종합 지성지요, 정론지를 겸하려는 본지의 야심 때문에, 한정된 지면에 다양하고 수준높은 작품들을 모아보려는 편집진의 시도는 호마다 힘겨운 도전이 되곤 한다. 아직도 완전히 만족스러운 답을 못 얻기는 했지만 노력에 따른 성과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으며 이번호의 경우도 그 정도의 자부는 할 만하지 않은가 한다. 공지영, 윤영수, 한 강 세분의 소설과 신경림 선생을 비롯한 여덟 시인의 역작을 얻은 것이 다행스럽고, 특히 정철훈씨를 문단에 선보이게 되어 반갑다. 여기 실린 여섯 편을 보아도 역사의 상처를 다루는 자세가 상투성을 벗었고 「선거에 대하여」가 보여주는 현실풍자 솜씨나 「고산족」에 엿보이는 또 다른 세계가 신선함을 풍기며 그의 정진에 대한 기대를 안겨준다.

문학평론에서는 계간소설평의 필자로 임홍배씨가, 신간시집 서평자로 이영진 시인이 각기 당분간 새 고정필자 역을 맡기로 해주었다. 두 편 모두 첫회부터 독자들의 입맛을 돋우는 바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타계하신 요산 김정한 선생을 추모하는 글로는, 그간 이미 많이 논의된 면보다는 선생을 모시고 부산 지역을 지켜온 후배 문인으로부터 그 분의 인간적 모습에 관해 들어보기로 했다. 그밖에 이종숙씨의 「번역, ‘번역바람’, 번역지침서의 세계」는, 한국의 문학과 학문 풍토를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항인데도 최근에야 뒤늦게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된 번역 문제를 정면으로 대결한 평론이다. 여기에 이선옥씨의 서평을 더할 수 있겠으며, 소설가 이문구 선생의 『자유종』 촌평은 소설은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신조를 그가 한 뼘 길이의 평문에서도 그대로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촌평이 이래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 터이나, 하나의 모범이 되기에는 충분할 것 같다.

김영혜씨의 영화수상도 내실과 격조를 갖춘 수준높은 에쎄이로 눈길을 끈다. 그밖에 김종엽, 권태선 두 분의 서평, 민현기·김중배·심경호·김필동·한정숙·조홍섭 제씨의 촌평들이 모두 이번호를 살찌운 옥고이며, 편집진을 대신해서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

끝으로 출판계의 불황 속에 원가상승이라는 괴로운 사정 때문에 이번호부터 책값을 올리게 된 데 대해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창작과비평』1997년 봄호 책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