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창비 책머리에] 부정기간행물 창작과비평을 내면서

계간 『창작과비평』은 196년 1월에 창간호가 나온 이래 1980년 여름호까지 통권 56호를 기록하던 중 그해 7월 정부당국의 조치로 폐간되었다. 그리고 다시 5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계간지로서 이룬 일 못 이룬 일에 대한 항간의 논의는 심심치 않게 지속되었고 어쨌든 마땅히 있어야 할 잡지가 없다는 아쉬움의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리곤 했다. 물론 그 아쉬움은 바로 우리 자신의 느낌이었기에 주위의 비슷한 목소리가 더러 확대되어 들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우리가 부정기적인 잡지형 단행본의 형태로나마 계간지의 공백을 메꾸려는 것은 결코 한때의 들뜬 기분에서 나온 결정이 아니다. 오히려 때늦었다는 자책감이 들 만큼 긴 시간을 우리대로의 기다림과 성찰 속에서 보냈던 것이다.

계간 『창작과비평』의 사업이 1980년 그때 그런 식으로 꼭 중단됐어야 했는지의 시비는 여기서 새삼 따지지 않으려 한다. 아니,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당국의 조치를 우리는 차라리 고맙게 여기고 있기조차 하다. 첫째는 사업의 직접 담당자들에게 귀중한 자기점검의 시간을 주었다는 점이요, 둘째로는 계간지라는 구심점의 상실이 도리어 80년대 문화운동의 바닥을 넓히고 뜻있는 개개인의 창의와 실천력을 자극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물론 후자의 문제는 우리 민족 여러 사람들의 저력에 힘입은 것이고 이런 기본역량이 있는 한에는 계간지가 남았으면 남은 대로 또 달리 이끌고 갔을 터이니, 문화운동의 저변확대에 대한 고마움을 엉뚱한 쪽에 돌릴 일은 아니다. 다만 계간지의 당사자들 개인으로서는 그간의 강요된 휴식에서 무언가 얻은 것이 있는 한, 고마움을 두루 나눠도 무방할 것이다.

요는 우리 자신이 그간의 세월을 얼마나 알차게 보냈느냐가 문제다. 이에 대해 각자의 개인적 결과는 또 그것대로 가려지겠지만, ‘창비’라는 하나의 집단으로서의 성과는 아무래도 창작파비평사의 그간의 궤적과 앞으로의 사업에 의해 판가름날 것이다. 언젠가 계간지의 복간이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어김없는 시금석이 될 터인데, 부정기간행물 『창작과비평』을 내면서도 문득 시험대에 올라선 두근거림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험을 위한 준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계간지의 폐쇄는 살아남은 출판사에게도 커다란 타격이었고 그것이 마지막으로 닥친 풍랑도 아니었지만 회사는 존속했을뿐더러 (출판계의 현황을 감안한다면) 웬만큼 번창하기조차 했다. 또한 단순한 하나의 회사만이 아닌 모임터로서의 얼개를 짜는 일도 지속해왔다. 그리고 일반 단행본의 간행에 멈추지 않고 계간지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갖가지 모색을 하기도 했다. 첫 사업인 신작시집 『우리들의 그리움은』은 1981년 1월 아직 계엄이 풀리기 전에 비록 상처투성이 모습으로나마 선을 보여 올해까지 네 권의 합동시집이 나왔고, 신작평론집 『한국문학의 현단계』도 82년 2월부터 이제까지 4권이, 그리고 작년과 금년에는 신작소설집이 한권씩 나왔다. 게다가 편역서 『민족주의란 무엇인가』(1981)에 이은 『한국민족주의론』 l~3권의 기획은, 문학적 인식과 역사적·사회적 인식을 하나로 추구하면서 문단 안팎에서 참으로 민족적이자 민중적인 것을 이룩하려는 우리의 일관된 노력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무크지 『창작과비평』은 이러한 다각적인 노력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실은 ‘무크바람’이 한참 일기 시작하던 몇해 전, 우리도 그에 가세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기왕에 주어진 자기점검의 시간을 성급히 단축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당시 계간지 폐간을 상쇄하는 폭발적인 소집단운동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식힐까 염려되기도 했다. 그러면 80년대 후반에 들어선 지금의 사정은 어떤가? 여전히 많은 잡지형 단행본이 나오고 있고, 『실천문학』이 계간지로 되는가 싶더니 곧바로 뒤집힘을 당하는 바람에 무크지들의 상대적 비중이 그만큼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부정기간행물들의 양적 팽창 자체가 문화운동의 중대사이던 시기는 분명히 지났으며, 이제는 무크지들의 질적 심화와 더불어 보다 정규적인 매체의 확보·변혁이 당면의 과제로 되었다. 아니, 지금이야말로 진심으로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고 이 사회의 지적 풍토를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창작과비평』만한 잡지라도 있어서 정리할 것 정리하고 북돋울 것 북돋우는 작업이 진행되기를 갈구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상황인식에서, 그리고 정기간행물을 못 낸다고 하여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이 부정기간행물은 그간의 단행본출판의 한 갈래를 수렴하면서 말하자면 『창작과비평』 57호로도 실망스럽지 않으려는 거창한 포부를 지니고 나온 셈이다. 체재와 내용에서 지난날의 계간지와 많이 닮은 점은 쉽사리 눈에 뜨일 것 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타성이나 향수 때문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70년대 말에 우리가 하고자 했으나 미처 못했던 일들을 우리보다 훨씬 잘하는 집단과 기구들이 지금은 많이 생겼다는 느긋함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에도 ‘창비’만이 그처럼 집중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작업이 더욱 차원높게 수행되어야 할 상황이라는 절박감에서 나온 결과이다. 따라서 닮은 모습과 더불어 이러한 새로운 인식에 걸맞은 내용의 전진이 없다면 우리의 기획은 실패한 것이 되겠다.

그 판단은 물론 읽는이에게 맡겨져 있다. 어쨌든 목차로 보더라도 이 책은, 문학 쪽에 중심을 두면서도 사회과학·역사·철학 등의 분야로 열려 있고자 한다거나 선도적인 비평작업에 치중하면서도 엄선된 창작품의 발표장이 되고자 한다는 지난날 『창작과비평』의 방향을 대체로 따르고 있다. 이번호의 경우 애초에 계획했던 문학평론들을 다 싣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라는 권두의 논문과 장시간에 걸친 「80년대의 문학」 좌담으로 현단계의 한국문학에 관한 상당히 집중적인 토론이 이루어졌고, 황동규·조태일·박완서 같은 현역문인의 중요 저서나 아동문학계의 신간들을 다룬 서평들은 편집자의 계획대로 소논문 내지 집약된 작가론으로 손색없는 글들이라고 믿는다. 여기에 고은·이동순·김용택 시인의 신작들, 특히 서사시 「홍범도」의 첫머리 1,641행이 한 목에 실렸고, 믿음직한 중견과 촉망되는 신진으로 알려진 두 작가의 단편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마당극의 성과와 과제」에서는 우리의 민중극운동에의 적극적인 애정과 외국의 문학 및 연극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자상한 논의가 공연예술뿐 아니라 민족문학 자체의 시야를 확대시켜주기도 한다, 「일제하 영화운동의 전개와 영화운동론」 역시 중요한 사실의 발굴과 참신한 논의로 우리의 문학운동·예술운동을 살찌게 해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지면을 문학·예술 쪽에 할애한 것이 편집위원들의 인적 구성에 따른 한계만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계간문학지’로 흔히 불리던 『창작과비평』의 맥을 이으려는 생각도 크지만, 가장 바람직한 의미의 문학적 인식은 곧 사회과학적인 인식보다도 더욱 기본적인 인간됨의 요건이라는 우리 나름의 신념이 깔려 있기도 한 것이다. 이 말이 혹 문학주의의 냄새를 풍긴다면, 사회과학적인 인식은 그 자체로서보다 어디까지나 변증법적 인식의 일환으로서 중요한 것이며 참된 문학의 자세야말로 본디부터 변증법적인 것이다라고 표현을 바꾸어도 좋다. 이때의 참된 문학이란 당연히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수용하는 것이며, 이는 또한 계간 『창작과비평』이 처음부터 내세운 목표이기도 했다.

이러한 일관된 목표를 향해 우리는 현단계 한국사회의 성격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을 중요한 새 과제로 삼고 우선 이번호에 박현채·이대근 두 분의 논문들로써 ‘한국자본주의논쟁’이라는 특별기획을 시작한다. 토론이 경제학자들의 글로 시작되는 것은 그간 국내 논의의 수준으로 보나 문제의 가장 과학적인 규명을 꾀하는 편집자의 의도로 보나 당연한 일이지만, 앞으로 정치·사회·역사학자들의 다양한 참여와 함께, 문단 쪽과도 이번호의 평론에서 일부 시도된 것 이상의 본격적안 의견교환이 이루어지기 바란다. 또한 한미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 「한미관계론의 사정(射程)」이나 민중·민족운동의 문제를 논한 서평 「분단시대의 현실인식과 한국민족주의론의 모색」 역시 우리 현실의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고취하면서 그 과학적인 인식에 값진 기여를 하리라고 본다. 끝으로 「실천철학에 대한 검토」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우리 주위의 논의와 직접 연관이 안된 논문이지만, 그 자체의 지적 흥미뿐 아니라 너무나 실천과 따로 도는 우리 철학계의 흐름을 한번 다시 생각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번호의 다른 글들과 맥을 같이한다고 하겠다.

1985년 10월
백낙청

『창작과비평』1985년 부정기간행물 1호(계간통산 57호) 책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