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창비 책머리에] 산적한 일감 앞에서

사람이 한 해를 살아가면서 누구나 특별히 자신을 가다듬어보는 때가 있다면 그중 하나는 물론 새해를 맞으면서다. 그 다음으로는, 특히 요즘처럼 여름 휴가여행이 흔해지고 대다수 도시인의 경우 안 떠나지도 못하고 떠나도 한바탕 법석을 면키 힘든 시절에는, 가을 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하늘이 드높아지는 시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이 아직 한여름이라서 그런지, 세상의 어수선함이 그 어느 때보다 더하다는 느낌이 앞서며, 산적한 일감 앞에서 과연 어떻게 스스로를 다잡고 어떻게 감당해낼지 망연한 바 없지 않다.

그러나 하루같이 어수선한 것이 우리 현대사의 삶이었고 일감은 언제나 넘쳐흘렀다. 최근 들어 우리의 심란함이 더해졌다면, 이는 우리의 중심이 그만큼 더 흔들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물론 5월투쟁의 좌절과 6월 광역선거에서의 야권참패, 뒤이은 당국의 탄압공세와 야권 내부의 계속되는 분란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크게 보면 반드시 궂은 일들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의 바뀜에 따라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는 가운데 불가피하게 겪는 흔들림과 성장의 진통도 있다. 그야말로 차분히 스스로를 가다듬어, 넘치는 일복에 차근차근 보답해나갈 때인 것이다.

날로 넓어지는 우리의 행동반경과 사고영역은 남북한의 국제연합 가입으로 또하나의 전기를 맞게 되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는 집권층의 불순한 욕심도 작용했고, 국제적 대세인 개방화가 우리에게는 곧 예속화로 귀결하는 어두운 일면도 수반되었다. 또한 남북 정권의 대결이라는 차원에서는 분명히 남쪽 외교의 승리요 북쪽의 일차적 패배로써, 남북의 화해로운 공동경사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북쪽에게도 패배만은 아니라고 믿기에 ‘일차적’이라는 토를 달았거니와, 남북 민중의 입장에서는 정권 차원의 승패보다 동시가입이 분단영구화의 확인이 안 되고 자주·평화 통일을 위해 유엔의 공간을 활용하는 새로운 일감이 생겼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남쪽의 민중이 맡을 몫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우선적 과제임은 더말할 나위 없다.

6공화국의 ‘북방외교’가 민주개혁의 지연을 포함한 내정의 실패를 호도하려는 의도를 지녔음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정세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해온 면도 부인할 수 없는데, 바로 그 점에서 민족민주세력은 훨씬 낙후한 실정이었다. 물론 개혁의 지연과 지속되는 탄압 자체가 민주세력의 발을 묶어 대세에 뒤지게 만들 것을 겨냥한 술책이었지만, 아무튼 낙후하고서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의 냉엄한 논리이다. 민주세력을 ‘변혁’과 ‘개량’으로 다분히 자의적으로 갈라놓은 변혁운동이 다시 자기들끼리의 소모적인 노선투쟁을 되풀이하고, 이른바 온건개혁세력은 그들대로 장기적인 전망의 부재로 지역대립·개인대립의 파쟁에 끝없이 휘말리는 가운데, 어느새 6월항쟁의 또다른 열매인 지방의회선거마저 집권층에 헌납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바야흐로 6공의 외교적 성과가 내치의 밑받침까지 받고 있다는 생각이 정부 안팎으로 만만찮게 번져나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광역선거 승리 자체가 주로 국민의 정치불신과 잘못된 선거풍토에 힘입었다는 사실을 떠나서도, 선거후의 가중되는 사회혼란과 민중탄압 그리고 집권층 내부의 고질적인 잿밥싸움은 이들에게 마음놓고 정권을 맡겨도 좋다고 생각하는 (원래도 많지 않은) 사람들의 수를 더욱 줄여가고 있다. 다만 지금 상태로는 대신 맡길 세력이 없다는 것이 다수 국민의 실감이며, 형식적인 야당통합이 – 그나마도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지만 – 이룩되는 정도로써는 집권당의 온갖 특권을 상쇄할 만큼 그 실감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오로지 우리 현실에서 정녕 필요하고 가능한 개혁이 무엇이고 필요하고 가능한 변혁은 무엇이며 양자의 내적 연관은 어떤 것인지를 새롭게 정리함으로써만, 국내외 정세의 어지러운 변화 앞에서 흔들림이 없을 새로운 연대가 이룩될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본지는 참여·순수의 단순대립을 극복하며 새로운 민족문학의 이념을 찾아나선 6,70년대나, 과학적인 현실인식에 근거하되 예술성을 고수하고 세계적인 시야를 갖춘 민족문학·민중문학을 위해 앞뒤로 고된 싸움을 싸워온 80년대 이래의 세월에서나, 새로운 연대의 가닥을 잡기 위한 노력을 일찍부터 수행해왔다고 자부한다. 오늘의 혼란에 대한 책임의 한몫이야 본지 역시 피할 길이 없지만, 갑작스런 방향전환과 뿌리 잃은 우왕좌왕, 또는 이판사판의 생떼거리도 우리 몫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 가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우리 나름의 일감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것은 물론 한꺼번에 끝내고 말 수 있는 일감이 아니다. 사실 큰일일수록 작은 힘도 헛되지 않게 뭇사람의 정성을 모아서 해나가는 지혜를 우리는 지금 새삼스레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번호 역시 편집자로서는 아쉬움도 있고 다소 우쭐하는 바도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이바지를 하나 더 보탠다는 생각으로 내놓는다. 특히 권두의 좌담 「농업해체 위기와 한국사회의 진로」와 더불어 리영희교수의 「한반도 핵 위험 구조」, 임재경씨의 「통일 이후의 동부독일」, 강문구씨의 「니까라과 혁명건설과 미국의 반혁명 공세」 그리고 미국에서의 중국 지식인들과의 만남에 대한 권태선·백영서씨의 보고 등은 급변하는 현실의 구체적 점검을 추구하는 본지의 의도에 직접적으로 부응하는 품목들이다. 일관된 특집까지는 못 되지만, 함께 읽음으로써 그야말로 적잖은 ‘시야의 확대’가 가능하리라 믿는다.

반면에 문학평론 분야의 빈곤이 이번호의 주된 아쉬움이다. 임화의 ‘이식문학사론’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고 민족문학론과의 그 내적 연관을 옹호한 신승엽씨의 논문은 어엿한 수확이라 자신하지만, 다른 필자들의 차질로 이번호 문학논의는 주로 서평에 의존하게 되었다. 서평들 자체는 자못 풍성하다. 후배 시인들에 대한 민여 시인의 논평과 중진 및 중견 시인의 시집을 다룬 오성호씨의 서평, 세 권의 단편집을 논한 소설가 현기영씨와 서정인의 장편소설을 평한 김철씨의 글, 게다가 조동일 교수의 최근 저서들에 대한 김명호씨의 평가도 뒤따른다. 그중 민영씨는 지난호까지 시집 고정서평자로 활약한 신경림씨의 뒤를 이어 새로 1년간 시단의 움직임에 대해 오랜 시작생활의 관록을 담은 평가를 그때그때 전해줄 예정이다.

그밖에 박찬승씨의 「한국현대사연구와 통일전선문제」, 강이수씨의 「여성연구,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박진희씨의 「과학기술시대의 교양」 등 다른 세 편의 서평을 보태면 이번호의 서평란이 유달리 돋보일 것이다.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기보다 수준높고 정성어린 서평은 올바른 독서문화 정립의 필수조건일뿐더러 실제로 독자들이 반기는 읽을거리라는 우리의 판단을 반영한 결과이다. 앞으로 좋은 서평을 얻는 데 더욱 힘쓸 생각이다.

이번호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소설이다. 윤정모씨의 역작 연재가 계속되는 데다 화제의 신예작가 방현석씨가 새 중편 「또 하나의 선택」을 완성했다. 거기다가 – 어찌 보면 이제 와서 본지가 발굴의 영예를 차지하게 된 것이 오히려 충격이기도 하지만 – 벽초의 미완의 대작 『임꺽정』 중 아직껏 알려지지 않았던 410여매 분량을 전문게재한다. 독서계와 학계의 큰 수확이자 민족문학을 위한 하나의 경사라고 뽐내어도 독자들이 욕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발굴의 공로에 더해 본문의 세심한 교정에 정성을 쏟아준 정해렴 선생께 특별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시에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유정(柳呈)선생이 시필을 다시 잡으셨고 신경림 시인의 신작 5편도 반가운 소득이다. 그밖에 고규태·유용주·김영산 세 시인의 기고에도 감사드린다. 다만 신인투고가 수효도 많았고 거의 수준에 달한 경우도 몇이 있었으나 좀더 냉엄해지자는 편집진의 방침에 따라 한 사람도 발탁하지는 못했음이 아쉽다. 이것 역시 남에게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하려는 우리 나름의 다짐이요 자기쇄신의 자세임을 양해하고 호응해주시기 바란다.

 

『창작과비평』1991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