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창비 책머리에] 신념과 실력

1980년대가 신념의 시대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그 말에 절반 이상의 진실을 인정해주기는 힘들다. 불과 몇해 사이에 과거형으로 서술될 운명에 놓인 신념이었다면 과연 온전한 신념이라 불러줄 수 있을 것인가. 사실 많은 경우 그 힘찬 주장들이 실력이 밑받침되지 못했음은 당시에도 얼마간 감지되는 일이었다. 객관적인 정황을 보아도 그런 실력이 나올 데가 없었고, 목소리 자체도 모국어의 용법과 수행자의 발성법에 어느정도 밝은 귀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울림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참다운 신념은 실력을 바탕으로 해서만 성립한다고 할 때 요즈음 80년대적 신념의 상실을 목청높이 공표하는 말소리도 그냥 귀넘어 듣게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처럼 숱한 신념을 상실하고도 그것이 의당 상실되었어야 하는 것임을 곧바로 확인하고 심지어 새로운 확신으로 대체할 만큼 괄목할 실력의 비약이 그새에 있었단 말인가. 실력이 부족한, 신념 미만의 신념이 난무했던 점이 90년대 들어 우리가 반성할 점의 하나라면, 지금부터의 실력배양은 좀더 겸허하고 차분하게 진행되어 마땅할 것이다. 동시에 참 신념이 실력에서 나오듯이 큰 실력 또한 큰 믿음에서만 나온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겠다.

1992년 첫머리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너무도 흔해진 자기반성의 몸짓을 하나 더 보태려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우리의 실력부족을 탓하면서 이제부터 우리 모두 조용히 제 공부에나 몰두하자는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모자라는 실력이라 해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모자라는지 점검해서 신념을 새롭게 할 만큼은 우리 민족의 역량이 축적되어왔다고 믿기 때문에, 그리고 본지 또한 80년대 훨씬 전부터 우리나름의 신념을 키워온 것만은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겠기에, 독자들과 더불어 다시 한번 새해의 다짐을 나누어보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백여년 전의 민족적 위기가 이미, 수백년 또는 수천년에 걸쳐 우리 삶을 지탱하던 신념들이 여러 요인으로 흔들리게 된 위기였고, 금세기 상반 일제 통치는 민족역량의 심각한 결손을 강요했다. 8·15 후 또다른 외세의 진주와 남북분단, 6·25라는 유례없는 민족적 참화, 그리고 이를 통해 굳어진 분단체제에 의한 탄압과 수탈은 그 어느 하나 순조로운 실력배양을 허용하지 않았다. 참 신념이 귀한 시대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거듭되는 위기에도 신념을 아주 잃지 않을 저력이 우리 전래와 삶 속에 있었고 그리하여 고비마다 인식과 실천의 쇄신이 멈춘 일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분단체제 남쪽 성원들이 4·19 이래 이룩한 민중운동·민중사상의 전통은 참으로 자랑할 만하며, 그보다 값지고 튼실한 것처럼 보이던 많은 것이 흔들리고 허물어진 오늘에 와서는 더욱이나 그렇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최근 몇해 사이에 겪은 이념상의 시련은 남한 민중사상의 성숙을 가로막던 큰 제약조건 두 가지가 연달아 타파된 행복의 댓가라 일컬음직하다. 먼저 선진적 활동가들의 헌신적 노력과 87년 범국민적 항쟁의 성과로 새 세상을 위한 싸움에서 결코 몰라서는 안될 고전적 변혁사상이 남한 민중에게 돌려질 길이 열렸던 것이며, 그 때늦은 복권에 수반되는 남용과 주체상실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려는 듯 바깥세상의 엄청난 변화들이 곧장 전해져온 것이다. 너무 좋게만 해몽하는 감도 물론 없지 않다. 그러나 분단체제 아래서나마 우리 모두가 수십년간 피땀흘려 쟁취한 것에 대해서나 그 과정 속에 본지가 자그맣게나마 차지해온 몫에 대해서 정당한 인식을 갖는다면, 그 정도의 자신감을 나무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지금이야말로 본지로서도 5·16으로 좌절된 우리의 민중운동·민중사상이 소생하고 심화되던 60년대 중엽에 태어났음을 되새길 시기이며, 7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90년대초의 숱한 격변을 견뎌온 것이 지속적인 민중역량 성장의 은덕이자 그 반영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세계는 한편으로 너무 빨리 놀랍게 변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낡은것들이 나라 안팎을 막론하고 더욱더 창궐하는 마당이라, 이 세상을 한번 크게 쇄신하려는 변함없는 신념이야말로 변화에 재빨리 대처하는 실력의 다른 이름으로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호에 본지가 특별히 마련한 장장 100여면의 지상토론은 이른바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달라진 세계에 대응할 ‘사상적 지표의 모색’이면서 남한 민중사상의 꾸준한 전진에 대한 우리나름의 신뢰와 자신감을 전제한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물론 스스로 뚜렷한 ‘지표’를 정리해서 내놓을 실력까지 우리가 갖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원주의의 맹신자가 아니면서도 독자에게 다소 혼란을 일으킬 정도의 다양한 의견분출조차 마다않은 것은, 그것이 현시점에서 필요한 창조적 혼란이며 조만간 우리의 현실과 민중의 저력이 식자들의 공부길도 잡아주게 되어 있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실제 성과로 보건대, 우리 시대의 이 지난한 설문들에 대해 열 분이 빠짐없이 약속을 지켜주고 지성스레 응답해주었다는 점이 우선 고맙고, 무조건 다양성만 찾아 선정한 필진도 아닌데 중요한 입장들이 꽤나 골고루 개진되어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

이 지상토론에 담긴 모색은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지만, 이번호 안에서는 이병천씨의 「민주주의론의 새로운 발전을 위하여」와 번역논문 「공산주의 이후의 맑스주의 철학」이 바로 그 작업의 일환이다. 지난호의 손호철씨와 박형준씨의 글이 크게 보아 비슷한 주제를 두고 자못 상반되는 입장을 보였듯이, 이번의 두 편 또한 적어도 그 맑스관·맑스주의철학관에서의 대조가 눈을 끌 것이다.

이번호의 또한가지 자랑거리는 브루스 커밍스씨와의 대담이다. 대작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로서, 그리고 미국의 대한정책과 한국의 독재정권들에 대한 비판자로서 그의 명성은 우리에게 친숙한 바이나, 정작 그 저서가 언제 믿을 만한 번역으로 한국 독자들과 만나게 될지는 아직도 막막한 상태다. 따라서 자신의 저서와 개인사를 비롯하여 세계사와 동아시아사의 전망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를 두고 그의 육성을 직접 들을 기회가 그만큼 더 소중하게 느껴지리라 믿는다.

문학평론에서는 무엇보다 염무웅씨가 오랜만에 역작 「‘시와 리얼리즘’에 대하여」를 기고한 것을 특기하고 싶다. 염무웅씨는 본지의 오랜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낯익은 필자이고 근년에도 본지의 여러 작업에 중요한 몫을 해왔으나 본격적인 평론을 본지에 내놓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더욱 왕성한 활약을 기대하며, 아울러 이 자리를 빌어 이 글 집필의 계기가 되기도 한 작년 11월 본사의 ‘창비시선 100권 간행 기념 토론회’ 행사를 성황으로 마치게 해준 참석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당일 약정토론에 나섰던 황정산씨가 다음호에 논의를 지속시켜주기로 승낙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지난호의 「영미문학연구의 현황과 과제」에 이어 한기욱씨의 「『주홍글자』와 미국문학의 특성」을 내보낸다. 우리에게 낯익은 – 적어도 귀에 익은 – 서양의 이 ‘명작’에 대한 독자적인 작품론을 주체적인 미국문학연구의 자세에 대한 좀더 폭넓은 성찰과 결합시킨 글로서 일독을 권하고 싶다. 여기에 민영·우찬제씨의 신간작품집 서평들, 조환규씨의 과학소설평까지 보탠다면 이번호의 문학비평은 제법 풍성한 편이라 하겠으며, 재일동포 김정미씨가 보내준 일본관계 신간들의 서평도 ‘재일’ 특유의 값진 일깨움을 담은 글이라 믿는다.

소개의 순서가 뒤로 밀렸지만 이번호에서 전보다 훨씬 많은 정성과 지면을 들인 것이 시와 소설 작품들이다. 우선 시에서 박형진, 소설에서 유재현 두 신인을 독자들께 선보이게 되었고, 윤정모씨의 장편연재는 다음호에서의 대단원을 앞두고 더욱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게다가 김연현씨의 「집시 아저씨」를 입수할 수 있어 다소 무리할 정도의 증면을 결행하였다.

시에서는 종전의 규격에 얽매임이 없이 새로운 활기를 찾아보는 의미로, 80년대 후반 이후에 등당한 신예시인만으로 특집 10인선을 꾸몄다. 신진시인들의 수효도 워낙 많고 활약도 다채로운 우리 시단에서 이런 특집을 만드는 데는 해당 시인들의 정성어린 반응뿐 아니라 편집진으로서도 많은 성찰의 시간이 필요했다. 독자 여러분의 진지한 검토와 활발한 의견개진을 기대해본다.

지면 사정으로 두어 가지 원고를 다음으로 밀면서도 유달리 두툼한 잡지를 만든 데는 이번이 창간 26주년 기념호인 까닭도 있었다. 작년에 25주년을 화려하게 기념한 우리는 올해는 특별한 행사 없이 조용히 보내면서 독자들께 약속한 자기쇄신·자체정비의 작업에 더욱 진력하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 새해들어 편집진용에도 약간의 변동을 결정했다. 먼저 기존의 편집위원 중 최원식·이시영·백영서씨에 더하여 편집자문위원이던 김영희씨와 본사 조사연구실장 고세현씨가 편집위원이 되었고, 염무웅씨가 편집자문위원으로 옮기면서 새로이 이옥경(李玉卿)씨를 맞아 자문위원회 역시 보강되었다.(계간지 편집인, 편집위원, 자문위원, 그리고 본사 편집고문은 함께 도서출판 창작과비평사의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실무진행은 편집부의 김이구 계간지담당 차장이 맡고 고세현씨가 편집위원회 간사로서 협조할 것이다. 한편 단행본 등 전반적인 편집업무는 이시영주간과 고형렬부장, 부수영차장의 책임 아래 진행되는데, 실무진 역시 금년에 더욱 강화하려고 적임자를 물색중이다. 그러나 사람을 모으고 적소에 배치하는 일에 못지않게, 있는 사람들 각자가 꾸준히 성장하는 일이 집단적 자기쇄신의 요체임을 우리는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모든 원가의 상승을 못 이겨 본지도 이번부터 정가를 5천원으로 올렸음을 알리며 부득이한 사정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창작과비평』1992년 봄호 책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