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창비 책머리에] 창비 1987을 엮어내며

이 책의 끝마무리가 진행된 작금의 시국은 유난히 긴박감이 돌고 변화도 많다. 그러나 행동의 제일선에 서 있지도 않으면서 시시각각의 정세변화를 예측해서 대처하려다가는 부질없는 조바심이나 키우기 십상일 터이니, 차라리 좀더 긴 앞날을 내다보며 살필 것을 살피고 다질 것을 다지는 자세를 갖추는 게 현명하리라 생각된다. 길게 보더라도 최근의 정세가 우리 민족의 저력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혀주는 것임은 분명한데, 신뢰가 커질수록 그에 맞먹는 책임이 따르고, ‘낙관’하냐 ‘비관’하냐의 차원을 떠나 행여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 못할까 하는 근심 또한 깊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본서의 편자 역시, 크게는 오늘의 진통이 어떻게 겨레의 숙원인 통일로 보람있게 이어질까 하는 문제로부터, 작게는 어느덧 20년 넘어 쌓여온 ‘창비’의 사업이 어떻게 새로운 나날에도 부끄럽지 않게 거듭날까 하는 데까지, 이리저리 애가 쓰이는 바 적지 않다.

‘창비’의 부단한 거듭남이 대국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생각은 직접 관계된 몇몇 사람의 독단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뭇사람의 공덕으로 이어져온 사업일뿐더러, 현실문제가 절박해지고 그 변화가 급해질수록 어떤 축적된 공력과 어느 정도 일관된 점검·정리의 능력이 더욱 아쉬워지기 때문이다. 이 아쉬움은 설혹 계간지의 간행이 허용된다 해도 완전히 가셔지지 않을 것임은 물론이다. 더구나 그것조차 안되는 상황에서 한 출판사나 몇몇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미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의 민족적 위기에서 우리 문학이 그 맡겨진 민족주체적 대응의 몫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지식인 일반이나 전체 민중의 대응 또한 그러한 창조적 작업의 활기 속에서만 슬기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창비’ 편집진 본래의 신념은, 어떤 방식으로든 실천에 옮겨져야 할 만큼 오늘도 유효한 것이 아닌가. 편자가 여기 『창비 1987』이라는 이름의 잡지형 단행본을 엮어내는 것은 그러한 판단에 의한 것이며, 같은 뜻에서 창작사의 편집진 여러분들은 온갖 협조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이 책의 체재나 내용은 지난날의 『창작과비평』지들과 닮은 데가 많다. 예컨대 지금 이곳에서 진행되는 문학적 작업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가 문학의 건강을 위해서뿐 아니라 사회 천체의 활력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신념에서, 가급적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모을 문학평론들을 빠뜨리지 않았다. 계획된 원고가 안 들어온 경우도 있지만, 소설 『태백산맥』에 관한 최원식씨의 평론 「역사적 진실과 문학적 진실」이라든가 민중문학론을 둘러싼 그간의 논의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황광수씨의 「80년대 민중문학론의 지향」에 더해, 도종환 시집 『접시꽃 당신』에 대해서도 서평의 형식으로나마 비교적 상세한 논의를 실었고, 이시영·이동순·오정희·김향숙 들의 신간 작품집에 대한 서평들도 흔히 있는 짤막한 소개 이상의 평문들이다. 또한 임형택씨의 도남국문학상 수상연설을 대폭 증보한 역작 논문 「국문학,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통해, 오늘의 문학현장에의 관심이 한문학(漢文學)을 포함한 국문학의 유산에 대한 연구로까지 그대로 이어짐을 실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국사연구와 그 대중화작업이 ‘창비’사업의 큰 몫을 차지해왔음에도 이번 책에 본격적인 논문을 싣지 못함은 서운한 일이다. 대신에 두 편의 국사학관계 서평이 그 공백을 일부나마 메워줄 것이다. 『한국사연구입문』 제2판에 관해서건 『한국민중사』에 관해서건 이들 서평은 오로지 기왕에 많은 독자·연구자 들에게 읽히고 있는 책에 대한 건전하고 활발한 논의에 일조하고자 하는 서평자 개개인과 엮은이의 충정을 담은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태 전 ‘계간통산 57호’로 유명해진 간행물에서 시작된 ‘한국자본주의 논쟁’은 독서계의 비상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약속된 후속기획이 나오지 못했었다. 그 까닭은 독자들 대다수가 익히 알 만한 일이므로 여기서 새삼 되새길 필요가 없지만, 논의 자체는 창비사를 둘러싼 엉뚱한 법석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확산되고 또 일정한 심화를 이룩해왔다. 따라서 이번 책에서는 예의 ‘논쟁’을 그대로 계속하기보다, 당시에도 편집자의 희망이었던 문단과 사회과학계의 만남을 구체화해나가는 뜻에서, 일반 문학독자들에게도 좀더 친숙한 논의를 마련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좀더 친숙한 논의를 하는 훈련은 논의를 속화하기보다 좀더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양식에 입각한 비판적 토론을 진행하는 중요한 훈련이라는 생각도 있다. 권두의 좌담 「현단계 한국사회의 성격과 민족운동의 과제」는 그런 취지의 산물인데, 장장 500매가 넘는 이 색다른 토론이 기존 논의의 대중화는 물론, ‘사회구성체’의 개념이라든가 분단문제를 포함한 우리 현실의 구체적 특성에 대한 과학적 인식에 있어서도 다소의 진전을 이루었다고 자부해본다.

애초의 ‘한국자본주의 논쟁’에 참여했던 박현채씨의 「한국사회에서 반봉건의 내용과 민주주의」는 저자 자신으로서도 당시의 총론적 논의를 각론 차원에서 한걸음 전진시킨 것이겠지만, 민주화운동의 숨가쁜 고비에서 ‘봉건성’의 문제가 학계의 새로운 관심사로 된 싯점에서 또 한번 많은 생산적 토론을 자극해주리라 믿는다. 함께 싣는 백영서씨의 「항일전기 중국민족운동의 과제와 통일전선」 및 이성형씨의 「중남미 파시즘 논쟁」은 일관된 특집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나, 둘 다 지금 이곳의 현실인식에 직접간접으로 이바지하는 글이다. 특히 우리 주변에서는 80년대 초 정부당국에 의한 부분적인 ‘금서해제’ 조치 이후의 한결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아직껏 사회운동사나 이념문제에 관해 논의할라치면 맹목적 거부 아니면 무분별한 수용이라는 양극의 현상이 지배적인데, 이런 논의풍토의 개선을 위해서도 자료에 입각한 객관적 검증과 정리를 시도한 이들 논문의 자세에서 얻는 바 크리라 본다.

이런저런 비판적 논의들의 필요성을 절감하다보니, 정작 시와 소설에는 많은 지면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김지하 시인의 근작 「해남에서」를 포함하여 박완서·정희성·김성동 제씨의 소중한 작품들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며, 게다가 투고된 원고 가운데서 새 시인을 하나 찾아 세상에 내보내는 기쁨도 크다. 「김포 1」을 비롯한 열다섯 편의 시를 발표하는 박철씨는 이미 오랫동안 시작수업을 해온 것이 분명하며, 다양한 시적 소재를 고루 일정한 수준으로 다루는 기량을 쌓은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더욱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들려줄 것을 기대하며, 아울러 이 신인을 독자들께 선뵈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신경림·이시영·고형렬 세 시인이 투고작품을 정독하고 흔연한 찬동의 뜻을 표한 바 있음을 밝혀둔다.

1987년 6월
백낙청

부정기간행물 『창작과비평』’창비 1987′ 책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