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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이번호 창비에는 특기할 만한 대담이…”

이번호 창비에는 특기할 만한 대담이 또 하나 있습니다. ‘작가조명’ 란에 최근 <이 한심한 날의 아침에>라는 시집을 출간한 백무산 시인을 황규관 시인이 만나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겁니다.

김수영 시인이 진짜 시인이었기에 사상적 탐구에서도 당대의 첨단에 있었듯이 백무산 시인도 그런 사상의 탐구자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담을 읽으면 그 점이 더욱 실감됩니다.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로 비칠 수 있는 ‘시간’을 논할 때나 문명의 현황 같은 얼핏 너무 거창한 이야기를 할 때나 그의 언어는 결코 남의 말을 답습한 언어가 아니고 자신의 삶과 노동과 시에서 우러나온 말들입니다.

인상적인 발언이 많지만 여러분이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하면서 한 대목만 인용합니다.

“나의 주체가 내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죠. 내 안에는 아주 조금만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마저도 고정된 것이 아니고요. 어떤 매개물에 나라는 주체를 넘겨주면 그 매개가 공통 주체 혹은 공통 자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그 공통 주체인 대지를 잃어버렸어요. 대지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의 공통성을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땅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실은 황규관 시인도 어디까지나 시인이기에 예리한 비평도 하는 사람이지요. (그는 백무산 시인과 달리 <리얼리스트 김수영>이라는 단행본 비평서를 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열권의 시집, 열개의 고원”이라는 대담 제목은 약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듭니다. 들뢰즈와 가따리의 <천개의 고원>을 빗댄 제목이라 짐작되는데, 진짜 시인을 시의 경지에 미달한 철학담론에 복속시킨 느낌이 들어요. 들뢰즈의 틀로 백무산 시인을 보려 하기보다 시인의 눈으로 들뢰즈의 철학을 자리매김해보면 어떨까요?

 

20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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