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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조사(弔辭)

어제 박원순 시장 영결식에서 공동장례위원장의 한사람으로서 조사(弔辭)를 읽었습니다. 유튜브로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전문을 여기 공유할까 합니다. 애도와 성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고, 저와 생각이 다르신 분들로부터 비판을 받더라도 제가 말한 정확한 내용을 두고 비판받았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창작가는 아지지만 저 또한 문학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제 글이 상투적인 언어에서 벗어나고자 항상 마음을 씁니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으나 이번 조사에서도 그 점을 유념하였습니다.

발언의 초점은 애도였고 성찰을 수반하는 애도이고자 했습니다만 본격적인 성찰 이전의 시간에 나온 발언입니다. 새로운 발언을 한다면 더 많이 생각해서 상투성을 더욱 철저히 벗어던진 언어가 되어야겠지요.

조사에서 “이미 당신의 죽음 자체가 많은 성찰을 낳고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다행히 틀에 박힌 공방을 넘어선 발언들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들을 비롯한 여러 분으로부터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박시장에 대한 한결 객관적인 평가를 포함해서요. 이는 박시장도 반겼을 일이 아닐까요.

끝으로 조사 전문을 아래 옮겨오면서, 피해호소 여성분에 대한 악의적인 신상털기나 억울한 비방이 없어야 되겠다고 다짐하며, 박시장에 대한 애도 역시 영결식을 끝으로 시한이 다하지 않았음을 상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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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사

박시장, 이렇게 갑작스레 떠나시니 비통함을 넘어 솔직히 어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럴진대 유족들의 마음이야 어떻겠습니까. 사는 동안 나도 뜻밖의 일을 많이 겪었지만 내가 박원순 당신의 장례위원장 노릇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아니, 거의 20년 터울의 늙은 선배가 이런 자리에 서는 것이 예법에 맞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우리 사회를 크게 바꿔놓은 시민운동가였고 시장으로서도 줄곧 시민들과 가까운 곳에 머물던 당신을 떠나보내는 마당에, 시민사회의 애도를 전하는 몫이 내게 주어졌을 때 사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애도의 시간입니다. 애도가 성찰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만 성찰은 무엇보다 자기성찰로 시작됩니다. 박원순이라는 타인에 대한 종합적 탐구나 공인으로서의 그 행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애도가 끝난 뒤에나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며 마땅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지금은 애도와 추모의 시간입니다.

한 인간의 죽음은 아무리 평범하고 비천한 사람의 죽음이라도 애도 받을 일이지만, 오늘 수많은 서울시민들과 이 땅의 국민과 주민들, 그리고 해외의 다수 인사까지 당신의 죽음에 충격과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었고 특별한 공덕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은 삼십년이 넘도록 이런저런 활동을 당신과 더불어 벌여왔어도 정작 어깨를 맞대고 일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개는 당신이 “일은 저희가 다 할 테니 선배님은 이름이나 걸고 뒷배가 되어주십시오”라고 해서 따라 하였고, 더러는 내가 주도하는 사업에 당신을 끌어들이면서 “당신 일만도 바쁜 걸 알지만 이름이라도 걸어놓고 이따금 도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지요. 어느 경우든 내가 항상 놀라고 탄복한 것은, 끊일 줄 모르고 샘솟는 당신의 창의적 발상들과 발상이 발상에 머물지 않고 현실이 되게 만드는 당신의 실천력과 헌신성이었습니다. 참여연대가 그렇게 태어나서 오늘까지도 시민의 힘으로 유지되는 시민단체의 모범이 되었고, 당신은 그 사업이 자리를 잡자마자 후진들에게 넘겨주며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 전혀 다른 운동을 개척했습니다. 드디어는 서울시장이라는 공직에 진출하여 우리의 시민운동과 서울시의 행정에 새로운 기원을 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당신이 펼친 시정의 상세한 내용을 알아서가 아닙니다. 시장이 된 뒤로 나는 주로 먼빛으로 지켜보며 응원하는 축이었지요. 그러나 당신의 서울시장 당선이 ‘시민후보’의 자격으로 이루어진 것 자체가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세월호 유족들에게 기억과 진상규명운동의 공간을 열어준 것도 당신이었으며, 무엇보다 이 나라의 역사를 근본부터 바꾼 2016년~17년의 촛불항쟁은 서울시장이 그 ‘인프라’를 마련하고 지켜주었기에 세계사에 드문 평화혁명으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시민사회에 대한 당신의 알뜰한 보살핌과 뜨거운 북돋움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제 당신 없이 우리가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이어갈지 막막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당신은 우리에게 새로운 일감과 공부거리를 주고 떠나셨습니다. 이미 당신의 죽음 자체가 많은 성찰을 낳고 있습니다. 당신의 엄청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권과 언론계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부족한 점이 아직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애도에 수반되는 이런 성찰과 자기비판이, 당신이 사는 동안 일어났고 당신이 빛나게 기여한 우리 사회의 엄청난 변화와 전진, 세계적으로 특히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 건강한 시민운동이 쇠퇴하는 판국에 더욱 돋보이는 우리 시민사회의 활력을 망각하게 만든다면 이는 당신을 애도하는 바른 길이 아니며 당신도 섭섭해하실 일일 것입니다.

그리운 원순씨 박원순 시장! 우리의 애도를 받으며 평안히 떠나십시오. 이제는 그런 평안만이 유족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을 것입니다.

2020년 7월 13일 백낙청 삼가 드림

 

20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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