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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보현TV의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 서평

보현TV라고 있지요. 도올TV에서 강추하는 말을 듣고 한두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귀띔해주기를, 졸저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를 서평한 프로그램이 올라 있다는군요. 들어가보니 북리뷰를 무려 2회에 걸쳐 할 예정이고 그중 첫회가 방영된 거예요.

관심을 표해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보현님의 독서와 논평이 드물게 예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쎌프홍보가 좀 멋쩍기는 합니다만 여기 공유하니 한번들 봐주세요.

그 책에서 제가 로런스를 ‘베이스캠프’ 삼아 이런저런 주제와 사상을 섭렵했다고 말했는데, 보현님은 그 말을 따오면서 자신은 도올선생의 사상을 베이스캠프 삼아 나의 로런스론까지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했어요. 저는 그 결론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이, 저는 도올과 전혀 경로가 다른 여정을 거쳤지만 많은 결론을 그와 공유하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믿고 도올박사에게 그런 얘기도 해준 바가 있거든요.

이번 서평은 주로 책의 제2장 “<연애하는 여인들>과 기술시대”에 집중하고 있는데, 거기서 제가 끌어대는 하이데거의 기술시대론(및 기술론)은 서양학문의 틀 안에서는 이해하기가 오히려 어렵습니다.

가령 그는 기술이 근대에 와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폭력성을 지적하지요.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기술문명 전체를 너무 부정적으로 본다고 비판하고 또 어떤 이들(특히 많은 생태주의자들)은 바로 그런 도저한 반기술주의를 환영합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근대기술의 그러한 속성을 밝히면서도, 기술 자체는 예술과 마찬가지로 진리(하이데거가 주로 쓰는 용어는 das Sein이라는 독일어 동명사인데 ‘존재’라는 번역이 오해를 일으키기 꼭 좋은 것 같아요)를 드러내는 한 방식이라 주장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 점을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위력이 너무 압도적인 점이 근대기술 특유의 성질이고 그 점이 큰 위험이라는 거지요.

이런 어쩌면 아리송한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는 데는 차라리 동아시아의 사상이 도움이 도지 싶습니다. 가령 노자 <도덕경>에 ‘道法自然’이라는 말씀이 있지요. 이때의 ‘자연’은–도올박사가 누누이 강조하듯이–서양사람들이 nature라고 하는 명사 ‘자연’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뜻으로, “도법자연”은 “도는 스스로 그러함에 바탕을 둔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근대기술의 온갖 작용도 실은 ‘스스로 그러함’의 일부입니다. 다만 ‘스스로 그러함’에 바탕한 ‘도’를 알거나 묻는 인간의 능력을 마비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우리시대가 처한 최대의 위험인 거지요.

따라서 이 문제는 인간이 기술을 더 잘 쓰면 된다는 기술주의적이고 인간주의적인 사고로 해결될 수도 없고, ‘자연(=nature)’을 지키기 위해 기술을 거부해야 한다는 논리로도 대응할 수 없습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의 ‘다시 개벽’이나 소태산 박중빈 선생의 ‘물질개벽에 상응하는 정신개벽’ 같은, 생각과 삶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한 것입니다.

쓸데없이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보현TV의 서평을 보신 뒤 저의 보충발언을 음미하시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2021.6.24.
https://www.facebook.com/paiknc/posts/4137942859574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