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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민주당 전당대회와 변혁적 중도주의 연합

그저께 아래 글을 써서 저의 ‘관리 페이지’ 외에 개인 ‘타임라인’에도 올리려 했는데 언제부턴가 새 게시물을 작성 입력하는 기능이 사라지고 없더군요. 여러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오늘 아침 드디어 해법을 찾아냈습니다.

그사이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이재명 후보가 예상대로 압승했습니다. 이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당원과 지지자들의 하나 된 마음에서 간절함을 넘어 비장함마저 느낀다”고 했습니다(한겨레 2022.8.29. 3면).

당원도 지지자도 아니라서 그런지 언론들은 여전히 아무런 간절함이 없이 이재명과 민주당의 장래에 대해 이런저런 우려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항상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성역없는 비판’을 하며 편히 살면 된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간절하거나 비장한 인간들은 다 촌스럽다는 건지?

조중동 얘기가 아니에요. 한겨레도 바로 그래요. 하긴 며칠 전에 민주당이 ‘조국의 강’을 건너서 ‘사당화의 늪’에 빠졌다고 비아냥댄 게 한겨레였지요.

아무튼 전당대회 전에 ‘페이지’에 올렸던 글을 여기 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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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 오후 6:37 ·

<창작과비평> 2022년 가을호가 나왔습니다. 저도 아직 많이는 못 읽었습니다만 이번호도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하다는 첫 인상을 전하면서 몇마디 적을까 합니다.

염무웅 선생이 쓴 “시인 김지하가 이룬 것과 남긴 것”이 특히 감명 깊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김지하 시인이 이룩하고 우리에게 남겨준 빛나는 성과들을 두루 짚었고, 동시에 그의 안타까웠던 면모에 대해 담담한 지적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원래 염선생의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만 이번 글이야말로 원숙한 문장가의 풍모를 느끼게 합니다. 물론 그것은 내용의 밑받침이 있기 때문이지 그냥 글재주로 되는 일이 아니지요. 꼭 한번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김성문ㆍ백민정ㆍ백영서ㆍ유영주 제씨의 대화 “새로운 한국학과 개벽이라는 화두”도 강력 추천합니다. 내용이 워낙 풍부하고 제가 끼어들고 싶은 대목도 많아서 좌담에 대한 논평은 다른 기회로 미룹니다.

특집의 네 편(이남주, 윤영상, 주병기, 김중미) 모두 잘 읽었는데 오늘은 전당대회와 대표선출을 하루 앞둔 민주당을 직접 다룬 이남주 교수의 “촛불혁명, 촛불연합 그리고 민주당”에 대해 몇마디 적겠습니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글은 대선 이후에도 촛불혁명이 여전히 진행중임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 논단에서 희귀하며 그만큼 값집니다. “촛불연합의 균열이라는 객관적 현실을 잘 인식하되,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촛불연합을 재구성하는 일이 긴요하다”(19면)는 것입니다. 나아가, “촛불혁명의 특별한 의미는 시민적ㆍ국가적 역량의 증가에 기초해 사회대전환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가시화했다는 데 있다”(23면)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민적ㆍ국가적 역량의 증가’는커녕 일대 타격을 준 윤석열정부의 출범조차 상당부분 촛불혁명의 결과임을 지적하지요. “촛불혁명이라는 표현에 동의하는가 아닌가와 별개로 ‘혁명’적 변화. 즉 사회대전환에 값하는 정치권의 노력에 대한 요구가 계속 작동”(25면)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교수가 민주당에 대해 주문하는 것은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데 기여할 ‘플랫폼 정당’이 되라는 것입니다. 아니, 새삼스럽게 그렇게 되라기보다 지난날 김대중 같은 정치인의 합류와 성장을 가능케 했고 그의 주도로 폭넓은 진보세력ㆍ시민세력을 포용했던 민주당의 좋은 전통을 본격적으로 되살리고 발전시키자는 거지요. 그리고 여기에는 분단체제 아래서 “계급정당이나 엄격한 의미의 대중정당(mass party)이 발전되지 않았”(26면)고 발전될 수 없었던 한국의 정치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전당대회 이후의 민주당이 시급히 착수해야 할 일로 저자는 세가지 구체적 제안을 하고(32~33면) 시민들도 “민주당이 한국사회의 대전환을 위한 중요 주체의 하나라는 점을 전제로” 적극적인 개입을 할 것을 촉구합니다(34면). 자세한 내용을 여기 요약하기보다 독자들이 몸소 읽고 검토해보시기를 바라면서, 저 자신의 생각 몇가지를 덧붙일까 합니다.

민주당에 대한 이남주 교수의 이런 주문과 기대가 도대체 가능한 것은 지난 대선 때부터 민주당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변화는 시작에 불과했고 충분치 못했기에 선거승리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만큼이라도 바뀐 것은 역시 촛불혁명 덕입니다.

이번 당 지도부 선거를 두고 언론에서는 ‘흥행’이 안 된다느니 ‘사당화’ 논란과 ‘계파갈등’ 외에 보이는 게 없다느니 하는 반응이 대세입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최종 결과야 내일에나 알게 되겠지만 그간의 진행만 보더라도 지금 민주당은 그 역사에서 보기 드문 큰 사태를 통과 중입니다. 당 대표를 의원총회에서 무기명투표로 선출하는 방식이라면 당선되기가 쉽지 않았을 후보가 80% 가까운 당원지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당의 국회의원들과 고위 당직자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들이 민심과 당심을 얼마나 외면해왔는지 성찰해야 할 지점입니다. ‘계파갈등’에서 밀렸을 뿐이라고 자위할 일이 아니지요.

물론 그렇게 당선된 대표는 자신을 반대했던 이들 가운데도 당의 소중한 자산이 상당부분 있음을 인식하고(전원을 결코 아니지만!) 당의 개혁역량을 최대화하는 포용력과 지혜를 발휘해야겠습니다.

촛불연합의 재구성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개혁조치(당강령 정비 및 입법작업)가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때 기억할 것은 “민주당은 대선 선거를 앞둔 2월 24일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정치개혁안을 발표한 바 있다”(이남주, 33면)는 사실입니다. 그냥 발표가 아니라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확정했던 건데 기억하는 분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민주당 의원 대다수가 대선을 치르는 도중이니까 후보의 주장을 따라주자는 소극적 자세였고 후보 자신도 얼마나 숙고한 결과인지 의문이지요.

예컨대 동일지역구 3선 이상을 금지하는 조항은 실현가능성과 실현됐을 때의 효능마저 의심스러운 대중영합적 제스처였고, 비례대표제도 민주당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독일식’보다 ‘한국식’에 가까운)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이번에는 꼼수정당을 안 만들겠노라는 선언 정도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국힘당이 계속 위성정당을 만든다면 어떡할 건가요? (국힘당은 처음부터 선거제도 개혁을 반대했기 때문에 꼼수를 써서라도 개혁에 저항할 명분이 있습니다.)

바람직하고 실현 가능한 선거제도 마련의 관건은 국회의석 수의 확대입니다. 당장에 국민여론이 안 좋다고 이를 포기하는 것은 정치개혁의 의지부족을 고백하는 꼴일 뿐입니다.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을 피하면서 비례대표 수를 대대적으로 늘리고 비례대표 의원으로서도 (일정한 규칙과 제한을 두어) 재선이 가능하고 일부는 3선까지 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의회 풍토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이남주 교수는 새로운 촛불연합에서 자기쇄신을 이룬 플랫폼 정당 민주당이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연합 자체는 ‘변혁적 중도주의 연합’이라고 부를 만큼 한층 폭넓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주장해온 바인데,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용어가 현실정치에서 쉽게 통용되리라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표현이야 어떻든 한반도체제를 현존 분단체제보다 나은 체제로 변혁하기 위해 좌우를 막론하고 온갖 단순논리를 배격한 폭넓은 중도세력의 결집이 절실하다는 거지요. 실은 촛불대항쟁의 과정에서도 ‘변혁적 중도주의’라거나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표현이 안 나왔을 뿐 시위군중의 대다수는 낡은 이념들과 노선들에 대한 거부를 분명히 했다고 봅니다.

변혁적 중도주의 연합은 이남주 교수도 언급하고(27~28면) 특집의 다음 글인 윤영상 박사의 “위기에 빠진 진보정치”에서도 다루는, 민주당보다 더 ‘왼쪽’에 서고자 하는 정치세력들의 입지를 찾아주는 길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이 다양한 정파를 포용하는 플랫폼 정당이 되더라도(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불평등과 기후위기의 근본원인이 바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임을 당 차원에서 명시하기는 힘들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하는 정당(들)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변혁적 중도주의는 ‘한반도체제의 변혁’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현존하는 여러 ‘진보정당’들은 이 목표를 얼마나 공유할 수 있을지 정직한 토론과 치열한 공부를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202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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