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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후기: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

원불교 100주년과 원광대 7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되는 학술총서의 첫 권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큰 영광이다. 다만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이라는 제목을 감당할 온전한 저서가 아닌 점이 못내 면구스럽다. 애초 이런 책을 엮어낸다는 발상 자체가 원불교학자이기도 한 학산 박윤철(맹수) 교무님의 것이지만, 나의 저서와 『회화록』 그리고 잡지 게재 원고까지 샅샅이 뒤져서 원불교와 관련되는 글들을 찾아 모은 것은 학산님의 정성이었다. ‘백 아무개의 원불교 공부’라는 부제가 그래서 붙게 되었는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민망스러운 일이다. 공부 치고는 뜨내기 공부에 해당하는 공부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이런 책을, 원불교 공부를 제대로 한 분들이 보시고 무어라 할 것인가.

원불교의 교서에 관한 한 나는 그 영역 작업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박윤철 교무와의 대담에서 설명했듯이(본서 309-311면) 우연한 기회에 뜻밖의 경로로 얽혀들어서 장장 18년간 간헐적으로 집단작업을 수행하였다. 그 과정에 많은 깨우침을 얻었고, 작업에 착수한 지 얼마 안 되어 비교도인 한국의 한 지식인으로서 이것이야말로 세계에 소개할 만한 한국 사상의 보화(寶貨)라는 자부심이 생겨나는 경험을 했다. 다만 번역팀의 동료들과 작업하면서 교리에 관해 토론하고 내 나름으로 연마하는 기회도 있었다곤 하지만, 처음부터 주석서와 연구서를 참조해 가며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은 아니었고, 그때그때 적절한 영어 표현을 찾아내는 실무적 필요가 우선하였다.

사실 나는 원불교가 아닌 다른 분야, 심지어 나의 ‘전공’으로 알려진 영문학 분야에서도 뜨내기 공부를 해 왔음을 항상 인정해 왔다. 이것은 결코 거짓 겸손이 아니며 실은 진짜 겸손도 아니다. 나는 영문학, 한국문학, 사회평론, 분단체제 연구 등 어느 한쪽에도 집중해서 적공하지 못하면서도 그들 여러 분야를 건드리고 사는 것이 과도한 호사취미가 아니라 금생의 내 업(業)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따라서 무슨 일에서나 축적된 지식의 부족을 실감하게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본서에 실린 한 대담에서 다소 주제넘게 인용한 표현이지만(본서 190면) 나의 잡다한 작업에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맛이 있기를 염원해 왔다. 이 책을 두고도 원불교를 제대로 공부한 분들이 볼 때 ‘본격적인 공부는 없지만 저 나름으로 일관되게 탐구해 온 것은 있구나’라고 인정해주시고, 나의 다른 저서에 친숙한 분들은 ‘그의 일관된 관심이 원불교를 통해 확장되고 심화된 면도 있구나’라고 판정해주신다면 큰 보람이겠다.

아무튼 원불교를 알게 된 지 40년 가량 되는 기간에 띄엄띄엄, 토막토막 공부한 끝에 내 나름으로 도달한 결론도 없지 않다. 첫째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대로 기존 세계종교의 가르침 가운데서 불교가 ‘무상대도(無上大道)’라 일컬음직하다는 점이요, 둘째로 비록 그렇긴 해도 현하 시국에서 불교가 중생제도의 그 본분을 감당하려면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사상과 결합해야 하리라는 점이다. 물론 그것이 딱히 동학이나 증산교, 원불교 같은 한반도의 사상일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벌써 1세기 반이 넘는 이 땅의 자생적 후천개벽운동의 연장선에서 ‘불법을 주체로’ 출발한 원불교가 인류가 찾는 맥을 바로 짚어 앞서 나간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관해 약간의 학문적 고찰을 시도한 것이 본서의 마지막 장 「문명의 대전환과 종교의 역할」인데, 그 판단이 아주 빗나간 것이 아니라면 나의 원불교 공부도 여기서 멈추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세밑을 앞두고 후기를 쓰는 이즈음 한국사회는 바야흐로 대전환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촛불을 든 평화적 시위군중의 힘으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그의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의 최종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촛불군중의 요구는 단순히 헌법을 유린한 대통령의 퇴진만이 아니고 ‘대전환’에 값하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고 아마도 험난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룬 것만으로도 ‘문명의 대전환’을 예감케 하는 바 없지 않다. 평화적 시민봉기로 억압적인 정권을 물러나게 만든 전례는 물론 과거에도 있었다. 한국의 1987년도 일종의 무혈 시민혁명이었거니와, 특히 1989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독재정권을 종식시킨 시민운동은 그 ‘부드러운’ 성공으로 ‘벨벳혁명’이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독재정권을 비폭력적으로 몰아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1987년 이후의 한국에서처럼 일단 민주적인 선거의 공간이 열린 사회에서 집권자를 임기 전에 퇴진시키는 일은 더욱 어려운 면이 있다.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정치인들이 즐비하고 시민들도 조금만 더 기다려서 그때 변화를 이룩하려는 성향이 강한 상황에서, 국민 대다수의 이름으로 ‘무조건 즉각 퇴진’의 단호한 명령을 관철한다는 것은 확실히 새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대중의 반민주적 반란이 줄을 잇는 시대로서, 유독 한국 시민들만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지키기 위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와 창의적인 방식으로 혁명에 나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촛불혁명은 아직 남한 내에서만도 갈 길이 멀고 그것이 87년체제를 제대로 극복한 새 시대로 안착하려면 87년체제의 태생적 한계로 작용한 1953년 이래의 한반도 정전체제 및 분단체제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하는 수준으로까지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렇게만 된다면 이는 한반도 전체의 큰 변화일 뿐 아니라 현존 세계체제의 변혁을 위해서도 하나의 결정적 계기가 되고 ‘문명의 대전환’에 방불한 성과를 이룰 것이다.

이를 위해 정치·경제·법률 등 각 분야에서 수많은 적공이 진행되며 새로운 합력을 달성해야겠지만 종교적·사상적·문화적인 대전환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이 부족한 저서가 그 과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큰 보람이겠다.

책의 간행을 제의하고 내용을 엮어내신 박윤철 교무님, 원불교 100주년·원광대 70주년 기념학술행사 조직위원회의 여러분들, 그리고 출판을 맡아주신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6년 12월
백낙청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