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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2013년체제 만들기

‘2013년체제 만들기’라는 제목을 놓고 잠시 망설였다. ‘만들기’는 좀 과한 것 아닌가? ‘2013년체제를 생각한다’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그러나 주변의 다수 의견은 기왕이면 적극적으로 나가라는 쪽이었다. 2013년체제 만들기의 결정적인 고비가 될 2012년의 새해 벽두에 이런 책을 내면서 ‘생각’만 하다 말자는 것이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맞다. 생각을 멈출 시기는 아니지만 생각만 하고 말 때는 결단코 아니다. 새로운 ‘체제’라 불릴 만큼 획기적인 전환기를 2013년에 맞이할 수 있을지 여부가 올해 판가름난다. 아니, 잘하면 금년 하반기부터 낡은 체제의 청소작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어쩌면 ‘2013년체제’라는 이름도 아예 ‘2012년체제’로 바뀔 가능성마저 있다.

바뀔 때 바뀌더라도 지금은 2013년 이후를 내다보며 큰 그림을 그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2012년을 앞세움으로써 선거승리의 공학적 계산에 매몰되었다가는 혹시 승리하더라도 또다른 혼란을 면키 어렵고, 자칫 승리 자체를 놓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이런 고비를 맞아 나로서는 좀 색다른 시도를 한 것이 이번 책이다. 사회비평서에 해당하는 저서를 전에도 내긴 했지만, 더러는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논의를 포함하여 제법 두툼한 책으로 묶어내는 것이 나의 습관이자 취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200면이 채 못 되는 분량인데다, 내용 거의 대부분이 2013년체제론을 직접 개진한 지난 반년여 동안의 발언이다.

제2부 첫머리의 두편만이 예외인데, 제5장 「‘포용정책 2.0’을 향하여」는 기왕의 분단체제극복논의의 연장선상에서 2013년체제론을 예비한 작업이라 말할 수 있다. 제6장 「2010년의 시련을 딛고 상식과 교양의 회복을」은 2011년 새해에 상식과 교양이 회복되기를 염원하면서도 그 일이 2013년 이전에 달성되리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2013년체제론 전개의 예비동작에 해당하는 셈이다. 제2부의 나머지 장들과 제1부 전체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2013년체제론을 펼친 글이다. 제1부는 총론적 성격이 강한데, 그 논의를 일단 마무리하는 의미로 제4장을 새로 썼다.

2013년체제론의 각론은 앞으로 분야별로 활발하고 다양하게 전개되기를 기대하는데, 그 일이 여기저기서 이미 벌어지고 있어 흐뭇하다. 그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나의 게으름이 아쉬울 뿐이다. 이 책에서는 대북포용정책과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약간 구체화된 논의를 보태는 데 머물 수밖에 없었다.

원고의 마무리작업이 한창일 무렵에 북측 최고지도자의 급서 소식이 전해졌다. 그로 인해 대대적인 수정작업을 꼭 해야 한다면 책의 간행을 조금 늦추면서라도 그리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3장 「‘김정일 이후’와 2013년체제」를 비롯한 몇군데서 언명하듯이, 김정은시대의 개막이 2013년체제론의 내용을 크게 바꿀 성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포용정책 2.0’의 전망을 반드시 어둡게 하는 것도 아니며, 한국은 물론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체를 위해 2013년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우리 손으로 열어야 할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을 따름이다. 이곳 남녘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결국은 최대의 관건이며, 이 나라의 시민들이 2013년체제에 대한 열정과 경륜을 구비함으로써 낡은 세력과 진정으로 새로운 세력을 예민하게 식별하여 대응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적인 것이다.

그 과정에 작은 이바지라도 하고자 서둘러 이 책을 낸다. 간절한 염원과 부족한 대로 한껏 공력을 실었지만 독자가 얼마나 호응할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내년 이맘때 가서,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저 책도 한몫을 했지 하는 평가가 나온다면 큰 보람이겠고, 더하여 지금도 다시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넘치는 행복일 것이다.

집필과 수정 작업에서 주변 동학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나하나 거명하지는 않겠고, 다만 이 책의 출간을 제안해준 창비 인문사회출판부의 염종선 부장과 편집업무를 감당한 황혜숙 팀장 등 실무진, 그리고 표지를 꾸며준 디자인팀의 정효진님께 특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2012년 1월
백낙청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