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본 머리말: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 /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
합본 평론집을 펴내며
첫 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뒤에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로 개칭)을 낸 것이 1978년이니 33년 전의 일이다. 한동안 제법 읽혔고 지금도 내 문학평론집 가운데는 그나마 꾸준히 나가는 편이다. 그런데 너무 작은 활자로 된 낡은 판본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이 이따금 들려오는데다가, 그사이 한글 맞춤법이나 외래어 표기법, 그리고 정부가 정한 규칙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 창비식 표기법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아예 책을 새로 조판해서 펴낼 생각을 하게 된 한 가지 이유다.
개정판을 내는 김에 당시 멋모르고 쓴 잘못된 어법이나 비문도 더러 바로잡았다. 그러나 논지나 내용에는 손을 대지 않았고, 33년이 지난 이 시점에 적당히 손대볼 길도 없다. 따라서 당시의 발언을 지금 내 생각에 맞게 ‘개정’해서 내는 책은 아니고, 아직도 초판을 찾는 독자들에게 조금 더 친절한 판본을 제공하는 수준이다. 여기에 감히 한마디 덧붙인다면, 그간의 변화를 감안하며 읽어주는 독자에게는 그런대로 일독에 값할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있다. 내용의 부실함이야 말할 나위 없지만, 저자로서는 민족문학 논의에 뒤늦게 뛰어든 1970년대 중반부터는 그런대로 공부길을 잡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문학’ ‘민족주의’ ‘민중문학’ 같은 낱말을 요즘은 덜 쓰거나 쓰더라도 그 복합적인 의미에 더 주의하며 사용하려고 하지만, 이들 낱말에 내장된 문제의식은 지금도 대부분 유효하다고 믿으며 그 말들을 열띠게 사용하던 때의 초심을 줄곧 지켜왔다고 자부한다.
두번째 저서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가 시인사에서 나온 것은 첫 평론집 다음해였다. 책이 나오던 날 나는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관악경찰서 보호실에 있었다. 당연히 초기 홍보에 차질이 생겼고, 게다가 ‘해방’이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갔대서 언론에서 다루기를 꺼려했다. 그런데도 『민족문학과 세계문학』보다 가뿐한 분량인데다 짤막한 글이 많아서인지 몇차례 중쇄를 했고, 절판이 된 데는 오히려 출판사 사정이 컸다. 그래서 창비사로 가져가서 다시 내도 좋다는 지금은 작고한 조태일 형의 양해가 진작에 있었건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독자들이 뜬금없다고 여길까 망설여졌고, 창비사에 공연한 부담을 안길 염려 또한 없지 않았다. 그러던 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의 개정판 발행을 기화로 합본해서 함께 내기로 한 것이다(부록으로 실었던 「학생 독자들과의 좌담」은 『백낙청 회화록』 제1권에 이미 수록한 바 있으므로 이번 책에서는 생략했다).
지금 볼 때 역시 부족한 책인데도 다시 펴내는 취지는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의 경우와 엇비슷하다. 특색이라면, 사회평론 내지 정치논설 성격의 글이 다수 포함된데다 첫 평론집과 달리 전부가 유신체제 선포 이후에 씌어졌고 그중에도 짧은 글 몇개를 빼고는 모두 나의 해직교수 시절의 발언이어서 그 시대의 분위기가 더 짙게 드리운 점일 것이다. 유신체제의 한복판에서 발언할 때의 갖가지 현실적 제약, 그러면서도 해직교수이자 반정부인사로 낙인이 찍혔기에 오히려 누릴 수 있었던 어떤 여유로움, 이런 것들은 당시 사정을 좀 알면서 문장에 남달리 예민한 독자가 아니면 읽어내기가 쉽지 않을지 모른다. 아무튼 나 자신은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교수직에 복귀했고 정년을 맞아 교수로서 고종명(考終命)한 뒤 지금은 명예교수로 행세하고 있다. 그러나 해직교수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리라고 이 기회를 빌려 새삼 다짐한다.
오래전에 나온 책 두권을 묶어 이렇게 다시 내려니 수많은 고마운 분들이 떠오른다. 이미 저세상으로 간 그리운 얼굴도 적지 않다. 일일이 호명하여 감사드리지는 않겠고, 다만 책을 만드느라 수고해준 창비사 문학출판부의 박신규형 등 여러분께 특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2011년 5월
백낙청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