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백낙청: 주체적 인문학을 위하여
서울대 기초교육원의 초청으로 2009년 12월에 관악초청강연을 한 것은 정년퇴임한 2003년 2월 이래 사실상 처음으로 관악 교정에서 강연하는 자리였다. 후배 교수의 초빙으로 대학원 영문과 수업을 하루씩 담당한 적은 그 전에 더러 있었으나 다수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나 강연을 할 기회는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날 학생들 외에 영문과 안팎의 재직 동학들이 다수 참석하여 나로서는 더없이 흐뭇하고 보람있는 시간이 되었다.
강연 자체가 듣는 이들에게 그만큼 보람찬 것이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었으면 해서 미리 고민한 바 없지 않았지만, 고민을 제대로 풀었다고는 하기 어렵다. 이런저런 잡사에 쫓기면서 충분히 연마할 시간이 없었던 데다 ‘주체적 인문학을 위한 서양 명작 읽기’라고 스스로 설정한 주제가 공개강연 형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딜레마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문학 공부, 특히 문학 공부는 구체적인 문헌에 대한 구체적인 토론을 떠나 제대로 진행되기 힘들다는 것이 본문에서도 강조하는 나의 논지인데, 막상 특정 작품–그것도 외국어로 씌어진 작품–을 참고대상으로 정하고 보니 이를 단시간 내에 다양한 구성의 청중들과 더불어 검토할 길이 안 보였다. 그래서 강연은 인문학, 문학연구, 서양문학 읽기 들의 성격상 어째서 그런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논의에 이어 콘래드의 {어둠의 속}을 다분히 피상적으로 논하는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강연의 그런 문제점이 그나마 꽤 해소된 것은 관악초청강연 특유의 충실한 후속토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강연에서 미처 말하지 못하거나 간과했던 부분을 질의응답 도중에 보완할 수 있었고, 약정토론자와 청중들의 독자적 의견개진이 내용을 보탰으며, 출판을 준비하면서 주요 참여자들에 의한 녹취원고의 첨삭과 보충을 거쳐 제법 그럴듯한 읽을거리가 되었지 싶다.
어쨌든 토론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토론이 공부의 전부는 아니고, 훌륭한 강의를 듣는 것도 필요하고 스스로 강연해보는 연습도 필요하며 무엇보다 혼자 하는 독서와 사색의 밑받침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반드시 추가되어야 할 것이 강사 내지 연사와의 토론이고 일부 수강자들끼리의 한층 집중적인 토의일 테다. 앞으로 관악초청강연이 이런 공부법을 젊은 세대에 보급하는 하나의 기틀로 발전했으면 한다.
서양문학의 주체적 읽기는 나의 오래된 관심사로 이 주제를 갖고 몇 개의 글을 이미 발표하기도 했다. 콘래드에 관해 처음 쓴 것은 그러한 관심의 이론적 정리를 시작하기 전의 일이지만, 최근에도 {어둠의 속}을 서양문학의 주체적 또는 ‘지구적’ 읽기와 연결지어 고찰하는 한차례 시도가 있었다. 2008년 5월 대만을 방문했을 때 ‘서양문학의 정전들에 대한 지구적 접근을 위해Towards a Planetary Approach to Western Literary Canons’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것이 그것이다. 최근에 {인터아시아 문화연구}Inter-Asia Cultural Studies지의 ‘백낙청 특집호’(제11권 4호, 2010년 12월)에 원문이 실리기도 했지만 그 내용의 부실함이 찜찜했는데, 이번에 언어를 달리해서나마 약간의 향상을 이룬 것이 다행스럽다.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측에서는 되도록 매력있는 단행본을 만들고자 송기철씨가 실무를 맡아 갖가지 성의를 기울였다. 다만 학문적 역량의 부족 말고도 본문 이외의 ‘매력’에 큰 열성을 못 보이는 나의 성격 때문에 충분한 협조를 못해드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어쨌든 간행을 위한 여러 인사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관악초청강연을 마련해주신 기초교육원의 여러분, 그날의 약정토론자와 참석자들, 그리고 오랜 서울대 재직기간 많은 도움과 사랑을 베풀어준 영어영문학과의 동학들에게 두루 고마움을 전한다.
2011년 4월 백낙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