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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벌써 8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책 제목을 달면서 당시로서는 약간의 모험심을 발휘했다. 분단체제가 안 흔들리면 어쩔 거냐는 주위의 은근한 귀띔도 없지 않았다. 나 자신은 흔들리고 있음을 확신하긴 했지만 한동안 흔들리다 다시 굳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이것이 이번 책의 주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데–한반도의 분단체제는 남쪽에서 그것을 받쳐주던 군사독재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1987년 6월부터 이미 동요하기 시작했었다. 따라서 1997∼98년께 가서야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제목을 생각해낸 나는 현실에 뒷북이나 치며 따라가는 지식인의 한 표본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런 지식인들의 세계에서는 2000년 6월의 남북공동선언으로 ‘6·15시대’가 열리기 이전에 분단체제의 흔들림을 공언했다는 점에서 얼마간 앞서간 형국이 되었다. 말하자면 책 제목을 잘 지어서 재미를 좀 본 셈이다.

이번 책에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이라는 이름을 달면서도 내 깐에는 다시 모험을 거는 기분이며 저번 못지않은 ‘재미’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0년 6월에 관해서도 나의 인식이 처음부터 확실한 것은 못 되었다. 그러나 6·15공동선언 이후의 세월 동안, 애초의 부푼 기대가 갖가지 난관으로 좌절을 겪는 가운데서도 남북관계가 꾸준히 진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진작에 흔들리던 분단체제가 드디어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며 ‘6·15시대’가 곧 분단체제의 해체기에 해당한다는 믿음을 굳히게 되었다. 즉 6·15공동선언은 한반도의 통일을 독일식도 베트남식도 아닌 우리식으로 하자는 합의였을 뿐 아니라 이러한 한반도식 통일에 시동을 건 사건으로서, 이후 온갖 파란을 헤치면서 그러한 통일작업이 진행되어왔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신념에는 작년 한해 동안 나 개인의 새로운 경험이 적잖이 가세했다. 남·북·해외가 함께 만든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의 남측 대표라는 뜻밖의 중책을 맡게 된 나는 3월과 6월 및 8월에 금강산과 평양, 서울에서 각기 공동행사를 치르는 등 ‘6·15시대’가 크게 활력을 되찾는 현실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식 통일이 현재진행형이라는 판단에 이런 개인적 인상이 지나치게 작용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비록 뒷북을 치는 한이 있더라도 지식인의 판단은 냉정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인데, 다만 우리 사회의 너무나 많은, 그것도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과 사회과학자들이 당장 우리 발밑에서 진행되는 역사를 알아보고 냉철하게 분석하기보다 분단을 모르는 외국에나 해당될 담론을 열띠게 주고받으며 지내는 게 아닌가 하는 불만을 느낄 때가 많다.

책의 제1부는 작년과 올해에 걸친 나의 최근 발언들이다. 그중에서 1∼3장은 공개강연 또는 인터넷에 쓴 글로서, 6·15민족공동위원회 활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 생각을 정리한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 발언임은 발언 도중에 명토를 박아놓은 대로다. 제4장의 본론은 시기적으로 오히려 앞서나 역시 6·15공동위 활동을 시작한 뒤의 발언이며, 이를 보완하고 최근의 내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본론에 거의 맞먹는 길이의 덧글을 달았다.

제2부와 제3부는 『흔들리는 분단체제』(창작과비평사 1998) 이후에 발표한 글 중에서 본서의 주제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추려서 연대순으로 배열한 것이다. 제1부와의 양적 균형을 고려해서 대략 절반씩을 따로 묶었으나, 결과적으로 2002년도의 두 편을 가로질러 분리된 2, 3부의 내용이 단순히 시간적인 기준으로 나뉜 것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느낌도 든다.

제10장이 된 「한반도에 ‘일류사회’를 만들기 위해」를 쓸 무렵부터 나는 ‘분단체제’라는 다분히 개인의 상표처럼 되어버린 표현을 되뇌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친숙한 언어로 한반도에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자는 논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 결과로 제3부의 각 장은 ‘분단체제’라는 낱말이 제목에서 사라졌을 뿐 아니라 다루는 내용도 좀더 다양하고 폭넓어졌다고 믿는다.

그런데 제1부의 최근 발언에서 ‘분단체제’가 다시금 자주 등장하는 사실을 의아하게–또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 웃으면서–눈여겨본 독자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굳이 해명하자면, 이는 한반도식 통일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다소 새로운 명제를 제출하면서 그것이 단지 희망적인 선언이 아니고 내 나름으로 오랫동안 정리해온 개념적 구도 속에 자리한 것임을 밝힐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점이 이 책을 통해 어느정도 밝혀지고 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언어로 한반도식 통일에 요구되는 담론을 전개하고 싶다. 마땅히 그래야 하며, 또 그럴 수 있게끔 일조하려는 것이 책을 내는 중요한 동기이기도 하다.

앞서 우리 학계와 지식층의 담론양태를 꼬집었지만, 현재진행형의 통일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꼭 지식인의 뜬소리 취향 때문만은 아니다. 머리말을 쓰는 4월 중순의 정세를 보더라도, 한반도식 통일의 기본구상에 공감하는 사람조차 과연 그것이 제대로 진행될 것인지 의구심을 가질 까닭이 많다. 북측은 북측대로 좀더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정이 있으리라 짐작되려니와, 무엇보다 작년 6자회담에서의 9·19공동성명으로 북핵문제 해결과 동북아평화체제 구축의 기본구도가 잡히자마자 대북압박을 새롭게 다그치고 나온 미 행정부의 무모한 강경노선이 6·15시대의 순탄한 진행을 가로막고 있다. 여기에 우리 남쪽의 정부마저 통일과정에서 우리의 운신 폭을 크게 제약하고 끝내는 분단체제극복을 위한 우리 사회의 동력을 탕진할 위험마저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졸속협상을 다그치고 있으니 이래저래 걱정이 앞서게 마련이다.

그중 어느 사안에 대해서도 나는 전문가의 식견을 갖추지 못했다. 그에 대한 본격적인 해답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실망을 안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미국의 대북강경론에 대해서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당시부터 미국이 한반도 통일의 과정을 더 괴롭고 느리게는 할 수 있을지언정 아주 막지는 못하리라는 신념을 피력해왔고 최근에도 되풀이한 바 있다. 그에 비해 한미FTA문제는 나의 전문성 부족이 더욱 아쉬운 분야인데다 아직껏 따로 생각을 정리해서 발언할 계제도 없었다. 여기서는 현시점에서 한미FTA 자체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견을 유보한 채, 한반도식 통일의 한 특성이 온갖 혼란 속에서도 한반도 민중의 저력이 발휘되는 과정인 한에서는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일정표에 고스란히 맞춘 어리석은 진행만은 저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강조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또 한권의 저서를 간행하면서 많은 분들의 은덕을 다시금 실감한다. 특히 작년 이래 6·15민족공동위 활동을 함께하며 도와주신 여러 동지와 멀리서 성원해주신 수많은 동포 및 동료시민들의 은혜가 무겁다. 창비 식구들에게도 또 한번 감사하는 마음이며, 편집을 직접 챙겨준 신채용형의 노고가 각별했음을 밝힌다.

2006년 4월 효창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