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흔들리는 분단체제
한반도에 분단체제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몹시 흔들리는 중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북쪽에서는 주민들을 먹여살리는 기본적인 과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지 여러 해 되었고, IMF사태가 상징하는 남쪽의 위기가 그보다는 덜 심각하다고 해도 한때 세계에 자랑해대던 고도성장이 갑자기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고 실업과 도산, 범죄가 급증하는 전에 없던 난국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남북에서 우연히 같은 시기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분단체제’의 흔들림이요, 북은 물론 남에서도 분단체제가 굳건히 유지되던 상황에 맞춘 체제운영 및 발전 모형이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된 데 따른 한층 본질적인 위기라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물론 분단체제가 극복해 마땅한 체제라고 믿어온 사람들에게는 이런 범한반도적 위기가 반드시 싫어할 사태는 아니다. 하지만 부당한 체제를 허물더라도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생령이 다치는 일은 피해야 하고, 더구나 나쁜 체제가 무너지면서 그만도 못한 체제가 들어서는 일 또한 없으라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온당한 위기타개와 바람직한 분단극복을 위해서는 분단체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나는 줄곧 강조해왔는데, IMF의 구제금융에 매달리게 된 최근 사태를 겪으면서 그 생각은 더욱 절실하다.
남쪽에서의 대응은 일단 경제회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이는 당연한 일이다. 분단체제극복이나 세계체제변혁 같은 대안 구상이 이 책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는 있지만, 자본주의 세계시장 속에서 어느정도의 경쟁력과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당면과제를 도외시한 이상주의 또한 본서가 일관되게 경계하는 바다. 그 결과 논지가 어찌 보면 너무 급진적으로, 어찌 보면 너무 타협적으로, 엇갈린 반응을 일으키고 심지어 헛갈린다는 인상마저 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내 나름으로 숙고 끝에 도달한, 분단극복의 그날까지는 특히나 유념해야 할 중도주의가 어쩔수없이 떠맡은 짐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현시국의 대처 방안으로 적어도 남쪽의 국민에 관한한 ‘경제회생’이 초점이고 이는 곧 일정한 성장률의 회복을 뜻한다는 데에도 나는 쉽게 동의한다. 다만 올해보다는 다소 나아지더라도 대량의 실업사태가 지속되고 민족의 자주력이 획기적으로 저하되며 장차 또다른 금융위기마저 결코 배제되지 않는 ‘성장률회복’은 원론상으로 가능할뿐더러 세계자본주의의 대세라고 보아야 옳다. 우리가 이 대세를 거스를 힘은 많지 않다. 특별한 부존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흔히 들먹이는 ‘양질의 노동력’이라는 것도 주로 근대화의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이야기지 오늘의 현실에서는 하나의 숙제에 가깝다. 그리고 이 숙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결심만으로 풀릴 일도 아니다. 오직 분단체제극복이라는 민족사적이자 세계사적 과업이 실제로 민주화의 동력과 시장경제에 대한 적응력을 동시에 제공할 때만, 그리하여 딴 곳에서는 길러낼 계제가 흔치 않은 그야말로 양질의 노동력과 경영력과 자치역량이 배양될 때만 해결될 것이다. 당장은 경제회생에 치중하되 좀더 길게는 그 회생의 내용을 분단체제극복사업의 진행에 두고, 더욱 긴 눈으로는 한반도의 원만한 통일을 거쳐 획기적인 문명전환에 이르는 길을 내다보는 우리 고유의 ‘IMF대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요구를 제기하는 것은 지식인의 몫이요 예술가의 몫이며 ‘운동’의 몫이다. 좁은 의미의 정책수행자들은 당면한 경제회생 달성에 헌신성과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족하고, 정치지도자는 ‘시장경제’에 곁들여 ‘민주주의’에 대한 강조를 잊지 않는 것만도—끝까지 잊지 않는다면–특기할 일이며 여기에 남북의 화해와 통일에 대한 경륜까지 함께한다면 더 바랄 나위 없다. 그러나 정치인을 움직이는 것은 현실이지 그 개인의 소망이 아닌 점을 감안할 때, 우리 민족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앞날이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한 우리 모두의 공부가 얼마나 깊어지고 그 사업이 대중 속에 얼마나 뿌리내리는가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4년 전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이라는 책을 묶어내면서 나는 이 논의의 중심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랐다. 지속되는 토론에서 아주 손뗄 생각은 물론 아니었지만, 좀더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분들의 활발한 개입을 통해, ‘전공’도 아닌 문제에 달리는 기운을 쏟아야 하는 부담을 좀 덜었으면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생산적인 토론이 전혀 없지는 않았고, 분단체제라는 말이 도대체 쓰일 필요가 있느냐는 말씨름보다는 이 낱말이 얼마간 관용화되면서 분단현실의 내용에 대한 검토가 늘어난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간에 쓴 글들을 바탕으로 다시 한 권을 펴내면서 착잡한 느낌 또한 없지 않다. 자기가 앞장서 벌여온 논의의 시의성과 유효성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게 아닌지, 잠시 되물어보기도 한다.
IMF사태는 우리 현실에 대해 얼마 전까지도 별다른 의문 없이 통용되던 온갖 담론을 일거에 재검토의 대상으로 만들었기에 이런 되물음은 더욱이나 불가피하다. 한데 그야말로 망상인지 모르나 결론은 지금이야말로,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부족한 내용 그대로라도 독자들 앞에 내놓고 다시 한번 공론화를 위해 미력이나마 보탤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었다. 이게 옳은 생각인지는 약간의 두근거림을 안은 채 독자들의 판정을 기다릴 뿐이다.
지난번 책은 지금보다 초보적 단계의 논의였지만 하나같이 그때그때의 특정한 요구에 맞춰 쓴 글이었던 까닭에 분단체제론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이 접근하기가 유난히 힘들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 책 제1장은 그러한 지적을 다소나마 염두에 두고 썼으며, 분단체제론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글은 넣지 않았다는 내용상의 집중성도 독자의 이해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가령 ‘분단체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체계적으로 답해주는 ‘총정리’식 설명은 1장에건 다른 어디에건 없다는 점도 미리 밝혀야겠다. 역량이 있고없음을 떠나, 그런 식의 ‘정답찾기’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분단체제론을 펼치는 의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는 분단체제 문제에 국한된 일도 아니지만, 분단극복의 정답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의식 자체가 이미 분단체제에 의해 적잖이 왜곡되어 있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자기탐구와 자기쇄신의 수행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사업의 관건이라 믿는다.
책의 구성은 앞서 말한 1장에 이어 IMF사태를 겪으면서 새로 집필한 2장을 제1부로 따로 묶어 기왕의 논의에 비교적 생소한 독자가 관심을 기울이기 쉽도록 하였고, 제2부는 『공부길』 간행 직후로 돌아가 그동안 쓴 글들을 대략 발표시기순으로 배열했다. 내용에는 되풀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중복을 아주 제거하기도 힘들려니와, 저자 나름의 고충이 담긴 토론과정을 읽는이가 실감케 하는 의의 또한 있으리라 보아, 따로 명시한 경우 외의 수정은 잔손질에 그쳤다. 논쟁적인 글이 많은 점은 고충이기 전에 오히려 보람이다. 부질없이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피해야 옳지만 어느 분야에서든 평필을 들고 나선 이상 적당한 논쟁은 임무이자 화합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논쟁의 계기를 마련해준 분들께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을 늘상 간직하고 있다.
책을 내면서 떠오르는 고마운 얼굴과 이름은 그밖에도 물론 많다. 그러나 이번 책은 사위를 포함한 내 자식들에게 주고 싶다. 이제는 막내조차 제법 머리가 굵었으니 저마다 주견이 다르고 받아들일 마음이 다를 테지만, 아무튼 통일을 틀림없이 볼 세대이며 그것이 분단체제의 극복에 값하는 통일이 될지를 크게 좌우하게 될 세대의 대표로서 이 책을 주려는 것이다.
끝으로 실무진행을 맡은 창비사 편집국 신채용형의 세심한 노고에 감사와 위로의 말을 전한다.
1998년 5월
지은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