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시민의회 전국포럼 창립대회 격려사
지난 주말에 발족한 시민의회 전국포럼 창립 소식을 전국포럼 운영위원장인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임이사가 소사이어티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헌재가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시국에 관한 자신의 생각도 피력하면서 시민의회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일 행사참석을 사양하는 대신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그 내용을 아래 복사합니다.
시민의회 전국포럼 창립대회 격려사(2025.3.29.)
백낙청(문학평론가,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민의회 전국포럼의 창립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격려와 응원의 뜻을 담은 몇마디를 적습니다.
저는 시민의회에 대한 특별한 연구도 없고 전국포럼 창립과정에 기여한 바도 없습니다. 다만 국내개혁이나 한반도의 평화체제 추진과정에서 시민참여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주장해왔습니다. 시민의회 전국포럼이 출범하여 전국 곳곳에 조직을 만들고 시민들의 국정참여를 확대하겠다는 소식을 반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땅의 시민들은 정치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할 때마다 혹은 직접행동으로 혹은 투표로 그들을 응징함으로써 민주공화국의 왕정화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선거일에만 작동하거나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완전히 포기함으로써만 가능해지는 광장의 주권행사만으로는 민중이 스스로 다스리는 온전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정부기구가 아니면서 행정부나 국회에 일정한 기속력을 갖는 시민의회가 절실한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까닭이겠지요.
시민의회를 만들고자 전국포럼 참여자들이 그동안 많은 준비와 연구를 해오신 걸로 압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지혜로운 설계와 정교하고 끈덕진 실행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과업이니까요. 시민의회는 이제까지 민중을 지배하고 통치해온 입법ㆍ행정ㆍ사법기구와 사회 각종 기득권세력의 권한을 분점하겠다는 것인 만큼, 기득권자들의 자발적 양보를 기다려서는 부지하세월입니다. 그렇다고 무력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한, 일거에 권한을 뺏어올 방도도 없습니다. 시민의회의 법적 근거를 확보하는 일만 해도 기존 의회(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 실정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전국포럼이 곳곳에 지역포럼을 만들어 우호적인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공적인 인정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요.
전국적 시민의회의 권한을 처음부터 넉넉히 보장받고 출발하는 것이 깔끔하겠지만 점진적이고 다소 구질구질한 진행을 각오해야 하리라거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질구질한 걸 좋아하는 ‘국민성’이라거나 인생이 본디 구질구질한 것이라서가 아니라, 한반도에는 분단체제라는 것이 있고 한국은 그 멍에를 지고 사는 특이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멍에를 쓰고 산 지 너무 오래되어 그 존재마저 망각한 채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멋진 구상을 해보기도 하지만 정작 실행을 하려면 몸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게 마련입니다. 멍에를 일단 느슨하게라도 만들었다가 결국 벗어던지려는 노력과 필요한 개혁 구상을 조금씩 실현하는 노력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현행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제’ 헌법이라는 단정도 분단체제에 대한 망각과 무관하지 않은 피상적 진단이라고 봅니다.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을 헌법으로 정한 것은 박정희의 유신헌법과 전두환의 5공화국 헌법이었습니다. 1987년 6월항쟁의 성과인 87년 헌법은 온전한 민주헌법에 미달한 면들을 남겼지만 제왕적 대통령제는 그때 폐기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제왕적’ 행태가 끈질기게 잔존한 것은 헌법의 성문규정보다도, 계약서에 ‘이면계약’이 있는 것처럼 일종의 ‘이면헌법’이 존재하여, ‘친북 반국가세력’ 척결을 위해서라면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무시해도 좋다는 관행이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의 내란은 아예 제왕적 대통령제를 부활시키려는 어이없는 망동이었습니다만, 공화국의 왕정화 시도는 이승만 때부터 거듭되었던 일입니다. 분단체제의 멍에를 지고도 이를 번번이 패퇴시킨 우리 시민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자랑해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열리는 새시대에는 이 위대한 시민들의 조직된 역량과 숙의를 바탕으로 시민의 지속적인 국정참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만 한반도의 점진적이고 단계적이며 창의적인 재통합을 추진하여 분단체제의 멍에를 드디어 청산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이른바 K민주주의가 세계 차원의 민중자치 실현을 선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개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저의 사견을 하나 보태고자 합니다. 저는 ‘투포인트 개헌’을 선호합니다. 포인트 하나는 헌법의 전문이든 본문이든 국회의 동의를 얻어내기 수월한 조항을 택하여 원내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개헌하기 쉬운 나라’를 만드는 일입니다. 일정수 이상의 유권자가 요구한다거나 시민의회가 결정했을 때 국회가 의무적으로 상정 심의하며, 그런 경우에 개헌안 통과 정족수를 낮출 수도 있겠지요.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 다음에 또 시도하면 됩니다. 1987년 이래 과거와 같은 권력자의 야욕에 따른 개헌이 없었다는 사실은 그나름의 의의가 있습니다만,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결정을 오롯이 국회의원들이 독점하여 개헌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태는 정치적 낙후현상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분야에서의 시민권력 확대와 마찬가지로 시민의 개헌 발의권의 확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럴수록 대중의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치는 시민의회 같은 조직이 절실합니다. 오늘 전국포럼의 창립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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