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창비 책머리에] 계간 창작과비평을 다시 내며

『창작과비평』 계간지가 8년 만에 부활하여 복간호를 내게 되었다. 마침 창간 22주년 기념호가 되는 뜻깊은 싯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스물두 해의 크고작은 파란을 반영하여, 계간지의 연륜으로는 제16권이요 통권 57호에 해당한다. 다만 그동안 부정기간행물의 형태로나마 『창작과비평』의 명맥을 이었던 두 권을 굳이 합쳐 ‘통산 59호’라 일컫기로 한다.1985년에 ‘계간통산 57호’를 자처하고 나와 한때 발행사의 숨통마저 끊게 했던 부정기간행물 『창작과비평』과, 출판사의 소생 이후 무크 이름마저 『창비 1987』로 손을 보고 출간됐던 ‘내용상의’ 58호가, 이제 적·서를 불문하고 모두 『창작과비평』지의 무리 틈에 입적이 되는 셈이다.

이래저래 경사스러운 오늘이 있기까지 나라 안팎으로 알게 모르게 입은 은덕을 생각하면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이번 복간이 좀더 가까이는 지난해 6월항쟁의 열매임이 분명하기에 더욱이나 그렇다. 6월과 그에 앞선 싸움에서 치러진 엄청난 희생을 생각하건 6월 이후에 거둔 수확의 고르지 못함을 의식하건, 복간이라는 손에 잡히는 열매를 얻은 우리는 남들이 치러준 그 댓가에 대한 책임감으로 가슴이 무겁다. 동시에, 때마침 긴한 일거라가 맡겨졌다는 고마움과 반가움도 생생한 바 있다. 6월의 승리로 쟁취한 공간이 12월의 실패로 한창 어지러워진 지금이야말로, 80년대 들어 크게 확대된 민중세력의 움직임이 새롭게 조직화될 필요성을 누구나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일개 계간지가 그러한 조직화의 주역을 꿈꾼다면 허욕이요 망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 중요한 고비에서 다방면의 작업들을 일관된 민중·민족운동의 관점으로 정리하고 통합해줄 문화적 구심작용도 어쨌든 필수적인데, 『창비』가 없어진 8년 동안 그런 구심점만은 어디에도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판단이다. 그리고 70년대의 상황에서 그런대로 일정한 구심기능을 수행했던 경험과 80년대에도 꾸준히 지속해온 이런저런 준비의 몸부림들이 오늘의 공백을 채우는 데 다소간 유용하리라는 자신감도 우리는 느끼고 있다.

복간호의 체재나 편집노선이 종전과 크게 달라진 바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학 이외의 여러 분야를 망라하되 문학 중심 계간지의 면모를 고수했는바, 이는 부정기간행물 1호를 내면서도 밝혔듯이 타성에 밀린 것도 아니요 편집진의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편의를 노린 것만도 아니다. 정말 문학다운 문학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삶이 요구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변증법적 인식의 가장 충실한 표현임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계간지가 인문사회과학 여러 분야의 논의를 수용하는 것도, 무슨 호사취미나 구색맞추기가 아니다. 문학 본래의 변증법적 성격이 자연스럽게 실천되는 과정의 일부인 것이다. 오늘날 (문단 자체를 포함한) 각계의 수많은 언설이 고질적인 원심작용에 시달리고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 한갓 구호로 끝나는 일도 허다한 것은, 참다운 변증법적 인식의 확보에 필수적인 문학의 밑받침이 부족한 까닭이 크다고 본다.

우리의 문학적 입장은 ‘민족문학’이라 흔히 일컬어진다. 좀더 명세해서 말한다면 이는 민중문학으로서의 내실을 갖는 민족문학이며 민족사의 위기를 능히 감당할 민중문학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학관은 시대의 변천과 문학 자체의 성취에 맞춰 끊임없이 변모하고 발전코자 힘쓰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창비’가 민족문학을 주장해온 자세가 그러했고 재출범한 계간지의 앞날에도 그럴 것이다.

복간호의 내용도 이러한 기본자세를 살리는 방향이 되고자 했다. 권두의 좌담 「민족문학과 민중문학」은 참석자의 구성부터 20대·30대의 소장들로 채움으로써 가장 최근의 창작성과와 비평적 쟁점들을 새롭게 점검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동시에 민족문학·민중문학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창비 1987』의 좌담을 비롯한 저간의 한국사회성격 논쟁과도 긴밀히 연견되는 것임을 확인해준 토론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좌담과 비슷한 주제를 다룬 평론 「오늘의 민족문학과 민족운동」에서는, 이제 완연히 선배세대의 일원이 되어버린 필자가 자신의 입장을 다시 정리하면서 새 단계의 문학운동과 전체 민족운동의 연계를 도모하는데, 앞으로 본지는 신진 평론가들을 주로 동원하되 선배측에서도 이따금씩의 응답을 요구하면서 민족문학·민중문학에 대한 연속적인 토론을 마련할 생각이다. 동시에 다음호의 한국현대사 관계 좌담을 비롯하여 좌담·논문·서평 등을 통해 인접분야와의 주고받는 작업도 지속할 계획이다.

민족문학 논의에 뒤따르는 세 편의 논문과 시평 「새로운 연구단체들의 현황과 과제」가 서로 무리없이 연결된다면 이 또한 편집자의 의도가 다행히 살아난 셈이 되겠다. 박현채씨의 「분단시대의 국가와 민족문제」는 그간 민족경제론을 제창하고 사회성격논쟁을 주도해온 필자가 민족문학론의 쟁점에도 가장 근접한 문제들을 일단 총정리한 글로서 문학도와 사회과학도의 공통관심사가 될 것이 분망하다. 이어서 심희기씨의 논문은 민주민족운동의 관점이 이제는 법학 분야에서도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 뜻깊은 수확으로 내세우고 싶다. 유재건씨의 「역사법칙론과 역사학」 또한 소장학도의 공헌으로서, 이제까지 맹목적인 거부와 그에 못지않게 일방적인 주장들이 지배해온 ‘사적 유물론’에 관한 논의에 새로운 차원의 논쟁을 가능케 하리라 기대해본다. 여기에 사회과학방법론 및 조선후기연구사에 관한 신간 서평들이, 고은·민영·박영근·고재종·이창동·이은식의 작품을 다룬 문학서평들과 함께, 논의의 깊이와 다양성을 더해주리라 믿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제기를 감행하는 비평의 선도성과 더불어 창작품의 발굴과 선정에 그 성패를 걸 수밖에 없는 것이 문학지의 부담이자 특권이다. 이번에는 창비 독자들에게 무척 낯익은 신경림·황석영 두 분이 오랜만에 신작을 보내준데다 김향숙·서홍관·유종순 등 쟁쟁한 신예의 작품을 얻은 것이 다행스럽다. 특히 450매나 되는 중편을 한번에 실은 것은 그만한 역작이라는 편집자 나름의 판단에 따른 것이며, 투고작품 중 시와 소설에서 각기 한 명의 신인을 뽑아 세상에 내놓는 과정에서도 편집진 내부의 활발한 의견교환을 거쳤다. 그중 김광렬씨는 1954년생으로 현재 제주 신성여고에 재직중인데, 여기 뽑힌 여덟 편을 통해 그가 진솔한 감정을 다양하고 개성있는 가락으로 노래하는 능력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달했음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한편 소설 「깃발」을 투고해준 홍희담씨는 현재 광주직할시에 거주하는 여성이요 신인이라는 것 외에는 본인이 알려온 바가 없다. 그러나 편집자로서는 그의 소설이 광주의 5월을 민중의 시각으로 보는 데로 크게 진일보한 뜻깊은 수확임이 무엇보다 흐뭇하며, 신상관계는 본인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한 방침이다.

민족문학의 건강을 위해서는 지난날의 문학유산이 제대로 간직되어야 하고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앞세대의 탁월한 작품들이 냉전체제의 금기에서 풀려나야 한다. 다행히도 최근 이 방면에 해빙의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백석의 문학도 시전집 편자의 노고로 새로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에 따른 망외의 소득이 있었는바, 그 내용을 전집에 대한 서평과 함께 묶어 소개하기로 했다. 아무쪼록 이 기록도 흥미본위의 읽을거리가 아니고 민족문학의 다채로운 개화에 이바지가 되는 문헌으로 남기 바란다.

1988년 2월
편집인 씀

 

『창작과비평』1988년 봄호 책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