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창비 책머리에] 선거후 국면과 계간지

4·26 총선을 치름으로써 작년 6월항쟁의 한 열매로 우리가 얻어낸 선거국면에 일단 마무리가 지어졌다. 원래 선거란 어느 사회에서나 그 공공생활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기존질서의 보전에 가장 효과적인 제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단순한 ‘호헌철폐’가 아니라 좀더 근본적인 민주화를 향한 국민 대다수의 열망이 곧바로 선거국면의 싸움으로 유도되었다는 사실은 항쟁 성과의 미흡함과도 무관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나 집권층이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자기보전 장치인 인물위주·금권위주의 선거조차도 독재연장의 구도에서 한때 배제했던 상황이니만큼, 그 허를 찌른 급작스런 개헌과 선거는 문자 그대로 ‘선거혁명’은 아닐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전환을 이룩할 틈새를 연 것이었다. 다만 이를 위해 민주세력은 특별한 예지와 특별한 단결력을 발휘해야만 될 처지였다.

그러한 슬기로운 단결을 못 이루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두 차례 선거 중 월등히 더 중요한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쓰라린 패배를 겪었다. 국회의원선거 역시 기본적으로는 같은 자세로 임했고 그래서 입법부도 장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2월의 실패로 6월의 성취 자체가 물거품이 된 것처럼 쉽사리 낙담한 일부 식자들이나 4월 선거를 통해 그것을 물거품으로 돌릴 수 있으리라 자만했던 집권세력과는 달리, 다수 국민은 지도층의 분열 아래서도 6월의 저항정신에 충실했다. 그리하여 대통령선거와는 또 다른 총선 나름의 규칙에 따라, 집권당의 구도는 다시 한번 무참히 깨어지고 우리에게는 의회정치의 일정한 활성화라는 또 하나의 기회와 도전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아무래도 작년의 원통함이 가장 사무쳤을 지역민의 쌓인 한이 좀더 손에 잡히는 결실을 맺음으로써, 앞으로 새로운 차원의 단결을 도모하는 데 유리한 계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제 우리는 6월항쟁의 성과가 상당부분 구체화되고 우리 자신의 약점이 좀더 확실히 드러난 상태에서 다음 단계의 일거리에 맞닥뜨리고 있다. 선거국면 특유의 공간이 닫혀버린 대신 곁길의 유혹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지금이라고 당장의 일감을 소홀히할 것은 아니나, 참된 민주주의와 자주적인 민족통일을 위해 오래 견디면서 싸우는 싸움에 한결 큰 비중을 둘 때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튼튼하게 싸우려면, 처음부터 민족 전래의 정서와 생활하는 국민대중의 감성을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는 문화운동 – 그러면서도 문화주의나 정서적 민중주의로 떨어지지 않는 진정한 민중·민족문화운동 –의 몫이 실로 막중하다고 하겠다.

이런 문화운동은 여러 분야, 여러 차원에서 진행되기 마련이며 계간지보다는 훨씬 힘있고 큰 규모의 구심점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러나 아직은 이런 구심점이 확립된 것도 아니려니와, 바로 그러한 구심세력의 생성과 원활한 작용을 위해서도 계간지 특유의 영역 및 수준에서 전체 운동의 방향을 점검하고 정치와 문화, 학문과 예술 등등의 상호연결을 담보해주는 중심 매체가 필수적이 아닌가 한다. 『창작과비평』을 복간하면서 편집·발행에 관계한 우리가 느끼던 설레임에는 바로 이런 인식과 그에 따른 사명감도 끼여 들었던 것이다.

복간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폐간 전 『창비』 전성기의 그것을 넘어선 데 대한 우리의 감격 또한 그만큼 벅차다. 우선 계간지 수준에서라도 바람직한 구심력을 행사하는 매체가 튼튼히 자리잡을 필요가 절실한데, 복간된 『창작과비평』이 그 몫에 값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로서는 당연한 포부다. 그리고 이런 포부를 갖는 것이, 작금의 정책전환으로 수많은 잡지들이 탄생 또는 부활하는 현상을 반기며 그로 인한 전반적인 활기에 힘입고자 하는 마음과 전혀 어긋날 바 없음은 물론이다. 수많은 매체가 공존·경쟁하는 활기와 일정한 구심점의 존재는 오히려 표리관계를 이룬다. 건강한 문화를 위해서는 각기 특성을 지닌 잡지들이 여럿 있어야 하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는 한 개의 잡지가 있는 것도 중요하다는 믿음에서, 우리는 복간된 『창작과비평』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을 일종의 대의명분마저 내세워 간곡히 부탁드린다.
복간호가 판을 거듭하여 반응을 얻는 가운데, 그 내용에 대해 칭찬만이 아니라 따가운 비판도 들었다. 전체적인 짜임새에 관해서는 너무 옛날 그대로라는 비판과 함께 너무 성급하게 새 흐름을 따라가려 한다는 정반대의 평가가 있었는데, 내용의 참신성을 추구하되 기본 자세의 일관성을 견지한다는 취지 자체는 크게 보아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느낌이다. 다만 실제로 새로운 필진, 새로운 관점을 끊임없이 찾아나가면서도 이를 기성세대 나름의 책임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 선배들의 활약과 조화시키는 작업은 그것이 중요한 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터이다.

어쨌든 여름호 역시 이런 기본 의도에 따라, 권두의 야심적인 한국사 좌담에서부터 창작·평론·서평들에 이르기까지 신·구세대가 활발히 협동하는 지면을 꾸미고자 했다. 지속되는 민족문학 논의에 소장층의 본격적인 기여를 내놓으려던 기획이 다음호로 미뤄진 것은 유감이지만, 그대신 오랜만에 평필을 잡은 염무웅씨의 김남주론, 보다 젊은 세대의 정지용론, 더욱 젊은 필자들의 연극비평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의 등이 나란히 실린데다가, 최근 우리의 민중·민족문학 토론이 일본으로까지 확산된 사정을 알리는 소특집은 많은 독자의 흥미를 모으리라 믿는다. 세대간의 조화뿐 아니라 무게있는 논문과 짤막한 읽을거리의 적절한 배합도 잡지 편집자가 의당 노리는 일인데, 지난호가 다소 무거웠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이번에는 ‘시평’ 항목을 유지하면서 ‘문학계 동향’이라는 고정란을 신설하는 등, 좀더 친근감을 주는 잡지를 만들고자 애써보았다.

복간호에 유재건씨의 논문을 실으면서 우리는 국내에서도 사적 유물론이라는 중요 주제를 둘로싸고 수준있는 논쟁이 공개적으로 벌어지기를 기대했다. 이번호의 「역사법칙과 자유주의」는 바로 그러한 논쟁의 시발이 될 수 있으리라 보는데, ‘독자의 편지’에서도 확인되듯이 유씨의 글에 대해서는 찬동하는 이도 많다. 그러나 건전하고 발랄한 논쟁이야말로 지적 진보의 활력소임에 비추어, 앞으로도 본지에 실리는 모든 글에 대한 진지한 반론에 지면을 개방할 예정이며, 아울러 독자들의 편지도 더 다양하고 풍부해지기를 기대한다.

편집자로서 이번호에 담긴 글들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밖에도 많지만, 내용 자체에 대한 읽는이의 애정어린 검토와 질정을 기다리며 지면을 아끼기로 한다. 귀중한 글을 주신 필자 여러분과 좌담 참석자들께 감사드리고 부득이 게재가 미뤄진 몇몇 분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창작과비평사의 편집위원들 가운데서 계간지 편집에 좀더 집중적으로 간여할 네 사람을 이번호부터 따로 정했음을 알리며, 투고한 신인들 중 시에서 채호기씨와 소설에서 유시민씨를 촉망하여 문단에 선보이기도 결정하는 데도 이들 4인의 흔쾌한 합의가 있었음을 덧붙인다.

폐간·무크발행·복간 등 큰일이 많다보니 이번이 통권 60호인데도 별다른 기념 없이 넘어간다. 그러나 15년이면 도달할 호수를 스물두해 반 걸려 채우는 감회가 아주 없지는 않다. 앞날은 좀더 순탄하기를 비는 마음이지만 우리의 소임을 저버리고 수월함을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편집인 씀

 

『창작과비평』1988년 여름호 책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