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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2

첫 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을 내고서 7년, 제2평론집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 이후로는 6년 가까이 되었다. 어수선한 모듬이 아니고 좀더 본때 있는 한권의 저서가 나올 시기가 충분히 된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일은 나의 힘에 부치는데다, 또 한편 틈틈이 써낸 글들이라도 여전히 얼마간의 시효를 지닌 상황이겠다는 생각도 겹쳐, 세번째 평론집을 엮기로 했다. 그동안 쓴 것 중 영국소설에 관한 논의들은 달리 활용할 기회를 위해 젖혀두고, 문학비평의 범주에 드는 나머지 글들을 거의 다 모은 것이 이 책이다. 모아놓고 보니 구성도 첫 평론집을 많이 닮았고 내용 또한 본격적인 ‘민중문학론’을 자칭하기에는 미흡하다고 느껴져, 제목도 그냥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Ⅱ』로 정했다. 대체로 같은 논지라도 80년대의 작업을 주로 담은 이 둘째 모듬이 먼저 책에 비해 얼마만큼의 전진을 보여주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제1부의 첫번 글은 마침 70년대 중반에 씌어졌다가 평론집에 제때 수록되지 못했던 것이므로 70년대와 80년대 민족문학론의 연결 및 대비에 흥미있는 자료가 되리라 본다. 뒤이어 「80년대 민족문학론의 전망」이라는 짧은 글을 굳이 삽입한 것도 비슷한 의도에서다. 그런데 정작 80년대에 들어와 연간 신작평론집 『한국문학의 현단계』 작업의 일환으로 쓴 두편을 보탰을 때, 기껏 이것뿐인가라는 아쉬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1983년의 무크운동」에 붙인 짤막한 ‘덧글’과 제3부 끝머리의 「민족문학과 민중문학」을 디딤돌 삼아 다음 단계의 좀더 충실한 작업을 기약할 따름이다.

제2부에는 서양문학, 제3세계문학 등에 관한 글들이 그야말로 무체계하게 모였다. 맨끝의 「한국에 있어서 미국의 의미」는 그나마 미국문학론도 아니며 딱이 문학비평의 범주에 든다고도 하기 어려운데, 「미국의 꿈과 미국문학의 짐」에 연달아 읽음직하다고 생각되었다. 어쨌든 비록 영국소설 자체에 대한 논의는 아껴두었다 치더라도 너무나 잡다하고 빈약한 수확이라 뜨내기 영문학도로서의 자화상을 보는 느낌이다. 민족문화운동의 현장에 붙박이로 있기만 하다면 영문학의 뜨내긴들 어떠랴는 배알만은 끝까지 버릴 뜻이 없지만, 아무튼 여기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제3부는 한국문학의 몇몇 현역들에 대한 단편적 고찰들이 주가 되었고 앞뒤로 강연록이 하나씩 실렸다. 1, 2부를 두고 ‘아쉬움’을 거듭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이 대목이야말로 그 말을 꺼낼 자리다. 명색이 문학평론가로서 ‘실제비평’이라 분류될 이런 글들이 많지 못함은 늘상 아프게 느끼는 터다. 그러나 ‘이론비평’이라 흔히 일컬어지는 글도 나로서는 실제비평과 따로 성립하는 것으로 생각한 일이 없음을 덧붙이고 싶다.

마지막 부분의 세편은 모두 각주가 잔뜩 달린, 꽤나 전문가 티를 낸 글들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학술논문도 아니며, 다소 어중띤 성격이다. 나로서는 어디까지나 일반 독자들이 읽을 평론을 쓰되 서양문학 또는 비평이론의 전문가들에게도 크게 책잡히지 않게 쓰려고 상당히 고심한 게 사실이다. 리얼리즘론으로서는 미완의 상태에 있는 것을 여기 내놓는 의도는 이 책을 위해 새로 쓴 마지막 글에 밝혀놓았다.

이렇게 모은 글이 어느새 500면에 육박한다고 편집실에서도 좀 망설이는 기색이다. 그냥 내달라고 염치없이 부탁하면서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어차피 정실로도 내주기는 할 발행자보다도 낯모르는 독자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보채는 아이 밥 한술 더 준다는 말대로, 독자 역시 많은 것을 졸라대는 저자에게 차라리 너그러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래서 변변치 못한 글의 분량을 더 줄이지도 않았을뿐더러, 각 부마다 앞에 그 수록문의 집필연대를 기록하고 글 끝에는 발표지면을 명시하여 독자들이 매편을 그때 그곳에서의 발언으로 이해해달라는 부탁의뜻을 비치기도 했다. 게다가 많은 독자들이 이미 읽어준 글들을 약간의 손질만 더해 다시 내놓을 때에는 바로 그처럼 각별한 애정을 베풀었던 독자들일수록 새로 엮은 책을 한번 통거리로 읽어주었으면 하는 욕심조차 있는 것이다. 독자의 극진한 애정과 너그러움이란 곧 읽은 뒤의 준열한 비판으로 나타나는 것임에 대해서는 저자로서 미리 어느 정도 각오가 되어 있다.

아무튼 어지러운 세월에도 책을 내게 되는 개인의 기쁨은 크다. 그동안 아껴주고 참아주고 밀어준 수많은 이들의 은공에는 낱낱이 감사할 길이 없다. 다만 창비사의 힘든 사업을 해나가는 여러 벗들 특히 김윤수 사장과 이시영 주간의 희생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음을 이 자리를 빌어 밝히고 싶다.

끝으로 이 책의 출간이 효도에 도무지 뜻이 없는 아들을 두신 어머님께 다소의 위로가 되기 바란다.

1985년 3월
지은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