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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 D. H. 로런스의 현대문명관

이 책은 백낙청 선생이 1972년 미국 하바드대학교에 제출한 영문학 박사학위논문(“A Study of The Rainbow and Women in Love as Expressions of D. H. Lawrence’s Thinking on Modern Civilization” (1972))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선생의 미국유학은 딱히 순탄하지만은 않은 ‘공부길’이었던 듯하다. 1955년 브라운대학교에 입학해 학부과정을 마치고 하바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이미 허가받은 박사과정 진학을 스스로 접은 채 1960년 귀국했던 선생은, 2년 후 재차 도미하여 하바드 영문학 박사과정에 새로 입학하지만 1년 수료 뒤인 1963년 또다시 귀국한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과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하며 왕성한 비평활동을 벌이던 선생이 박사학위 취득을 결심하고 마지막 유학길에 오른 것이 1969년의 일이었으니, 이 논문은 그로부터 3년, 열일곱의 나이에 브라운대에 입학한 때부터 치면 17년 만의 결실이다.

스승의 학위논문을 번역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일부 제자들 사이에서 처음 나온 것은 선생이 서울대학교를 정년퇴임하던 2003년 무렵이었다. 두툼한 제록스 복사본으로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유통되던 이 논문을 정독한 이들은 거기 담긴 학문적 착상과 발심(發心)이 심오하고 굳건하여 앞으로 선생이 줄기차게 챙기며 돌파해나갈 핵심적 화두들이 이미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컨대 제자들은 이 논문이 선생의 학자·비평가·사회운동가로서의 노정에서 결정적인 전기를 이루는 저작일 뿐 아니라 로런스 연구나 영문학 연구는 물론이고 문학연구 일반에서도 귀한 성취로서 그 현재적 의의가 엄연하므로, 번역을 통해 독자들에게 더 널리 소개해야 마땅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선생의 정년을 기념하는—장차 설준규·김명환 엮음 『지구화시대의 영문학』(창비 2004)이 나옴으로써 마무리될—별도의 출간계획이 이미 추진되고 있었던 까닭에 학위논문 번역은 구상의 단계에 머물고 만다.

그 구상이 마침내 구체화된 것은 촛불혁명이 임박했던 2016년 10월의 일이거니와, 그후 3년여 만에 선생의 30대 초 소산인 학위논문의 한국어판이 (반세기를 격한) 새 저서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와 동시에 출간되기까지의 사정은 본서 ‘저자의 말’에 밝혀져 있는 대로이다. 새 저서에서 선생 스스로도 밝혔듯 학위논문은 개별 장들이 그간 선생의 평문이나 논문에서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원용되기는 했으나, 본서가 출간됨으로써 드디어 그 전모가 한정된 전문연구자들의 울타리를 넘어 일반독자에게도 오롯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선생의 청년기 3년 동안의 치열하고도 주밀(周密)한 탐구와 연마의 결실이 독자, 비평가, 연구자 들의 진지하고 활발한 관심 속에 우리 사회 비평적·학문적 자산의 살아 있는 한 부분으로 합류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학위논문이 선생의 비평적 실천의 역정에서 갖는 의의는 본서 출간에 힘입어 추후 관련 연구자들의 심층적 검토대상이 되리라 짐작하지만, 학위취득을 전후해 발표된 두 편의 평론 「시민문학론」 및 「문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일면을 짚어보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는 그 의의를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학위취득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던 1969년 여름에 발표한 「시민문학론」은 『창작과비평』 창간과 함께 이어져온 선생의 비평적 모색이 그 당시 도달한 지점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선생은 전공분야인 영문학과 “이 땅의 현실을 연결짓는 일이 하나의 의식적 과제”로서 60년대 내내 괴로운 짐이었으며 「시민문학론」에 이르러 그 과제가 일차적으로 정리되었다고 밝힌 바 있을뿐더러(『현대문학을 보는 시각』, 솔 1991, 8면), D. H. 로런스가 서구 시민문학 전통의 참다운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자 토마스 만이나 싸르트르보다 오히려 “우리가 추구하는 시민문학의 핵심적 문제에 근접해” 있는 작가라고 명토박은 것도 다름아닌 「시민문학론」에서다(『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 창작과비평사 1978, 32면). 따라서 이런 로런스의 작품세계를 탐사한 학위논문은 「시민문학론」의 연장선상에서 그 일차적으로 정리된 ‘의식적 과제’를 더욱 본격적이고 집중적으로 파고든 작업이라 하겠다.

학위취득 후 귀국한 지 1년 만인 1973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발표한 「문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은 마지막 유학기간의 탐구가 선생의 그러한 모색과정에 불러온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첫 평론으로, 여러 해 뒤 선생이 언급하듯 한국사회의 구체적인 현실을 향해 「시민문학론」보다 한걸음 더 다가선, “‘현대문학을 보는 시각’을 정립”하는 작업의 “기점”에 해당하는 글이다(『현대문학을 보는 시각』 9면). 그런데 가령 「문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에서 비중있게 제기되는 관념적·형이상학적 인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바로 학위논문의 핵심적 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이 글에서 그런 괄목할 비평적 사유의 진전이 가능했던 이면에 하바드에서 보낸 3년간의 튼실한 학문적 온축(蘊蓄)이 버티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한마디로 선생의 학위논문은 영문학 본토의 심장부에서 수행한 고도로 전문적인 학술작업인 동시에 『창작과비평』 창간 이후 지속해온 비평적 실천의 일환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 논문은 한편으로는 한국문학계의 현실에 밀착된 문제의식을 집중적인 학문적 탐구와 연마를 통해 확대, 심화함으로써 탄탄한 비평적 입론으로 가다듬어낸 성과인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장차 한국평단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게 될 주요한 비평담론들의 모태이기도 한 것이다.
 

선생은 문학뿐 아니라 정치·사회·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 숱한 저서를 냈지만, 그 가운데 특히 문학과 직결된 책들은 주로 그때그때의 시대적·문학적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산출된 평론모음이 골간을 이룬다. 교사·연구자·현장비평가·사회운동가·계간지 편집인·출판사 경영자 등의 일인다역을 숨가쁘게 수행해온 선생에게는 단일 작가, 단일 주제를 중심으로 통일된 체계에 따라 기획된 저서를 집필할 여유가 없었던 때문이리라. 이는 선생 스스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아쉬움을 표해온 대목으로, 이번에 함께 출간되는 새 저서야말로 그 아쉬움을 결정적으로 지워주는 노작일 터인데, 처음부터 한 권의 저서로서 집필된 본서 역시 그 빈자리를 메우는 데 크게 일조하리라 믿는다.

본서는 존재와 진리에 대한 비형이상학적 탐구 및 그에 기반한 리얼리즘론, 제3세계문학론, 근대 적응 및 극복의 이중과제론, 주체적 외국문학 연구 등 선생이 반세기도 넘는 동안 수행해온 학문적·비평적·사회적 실천의 중심에 자리한 담론들 대부분을 혹은 맹아적 형태로, 혹은 거의 완성된 모습으로 품고 있다는 점에서 선생의 저작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이 논문에 개진된 종요로운 생각들이 향후 선생의 여러 작업을 통해 한층 정교해지고 품을 넓혀간 것은 더 말할 나위 없겠으나, 이를 일관된 서술체계 속에 긴 호흡으로 녹여낸 사례는 이제까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담론들이 작품 외적으로 이미 구축된 이론적·방법론적 틀로서 작품해석에 기술적·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고 작품의 내적 논리와 결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면밀한 분석 및 해석을 추동하며 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깊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뜻에서, 문학작품의 해석과 이해가 각종 첨단이론에 휘둘리기도 하는 현금의 세태를 되돌아보는 데에도 본서가 귀감이 되리라 생각한다.
 

로런스 연구서로 국한해 보더라도 본서는 여러모로 독보적이다. 학위논문이 제출된 1972년은 로런스 사후 40여년이 지난 때였으나 당시 이 소설가에 대한 평가가 확립된 형국은 아니었다. 평자들이 ‘반지성주의자’나 ‘예언자’ 같은 다소 조롱섞인 호명으로 그를 규정하고자 했다면,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펴낸 펭귄출판사가 음란출판물법에 걸려 재판까지 벌어지면서 그를 ‘성(性)문학의 대가’로 여기는 대중적 인식이 더욱 굳어지기도 했다.

사실 로런스에 대한 이런저런 일면적이고 부적절한 평가는 지난 일만도 아니다. 그의 저작이 케임브리지대학출판부에서 40권에 이르는 전집으로 간행되고 수많은 연구결과가 축적된 오늘날에도 로런스의 핵심적인 예술적·사상적 성취가 어떤 것인지 방향을 잡기 어렵다는 호소를 드물지 않게 듣게 된다. 이 논문이 제출된 이래 반백년에 이르는 로런스 비평의 흐름을 요약하기란 간단하지 않겠으나, 문학비평에서 이론의 비중이 커지고 이른바 미학적·정치적 비평담론들이 세분화되면서 번성하는 경향은 로런스 연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로런스는 그간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 후기구조주의와 정동이론 등에서 곧잘 소환되는 이름이었지만, 그의 입장에 대한 동의는 격렬한 반론으로 이어지기 일쑤였고 그를 원용한 이론들도 왜곡이 없지 않았다.

동시대 로런스 연구의 현실을 염두에 두면서 로런스의 예술적·사상적 성취의 핵심을 새로 규명해내는 과제에 집중하는 본서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F. R. 리비스의 로런스 읽기와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비판이다. 리비스는 초창기 로런스 비평의 오독과 혼란의 와중에 이 작가를 영국 소설전통의 계승자로 자리매겼으며, 로런스 소설이 추상적·이론적 사유와는 다른 차원의 창조적 사유를 작가의 예지로써 담아낸다고 역설한 바 있다. 선생은 이런 리비스의 시각에 동의하는 한편 로런스를 하이데거와 대면하게 함으로써 로런스의 근대비판 및 새로운 사유의 모색이 갖는 문명적·예술적 함의를 더욱 깊이 궁구해나간다.

돌이켜보면 선생은 로런스의 작품이나 발언의 의미를 묻는 제자들에게 늘 즉답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도록 기다렸다. 통념과 다르고 일견 상충되기도 하는 로런스의 발언들의 진의와 지향을 깨달으려면 각자의 정진과 ‘사유모험’이 필수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 깨달음의 과정으로 선생은 “모든 실존의 단서는 ‘존재’(being)에 있다”는 로런스의 생각이 본질 대 실존이라는 이분법에 매인 서구 형이상학의 극복이자, ‘자기보존’으로만 치닫는 현대문명에 창조적 동기를 부여할 길임을 하이데거의 ‘존재’(das Sein)의 진리와의 비교를 통해 밝히고자 한다. 하이데거라는 거울에 비춤으로써 로런스 문학에 녹아 있는 특유의 진리관과 예술관, 그리고 과학기술의 본질에 관한 통찰은 더욱 명료한 설득력을 얻게 된다. 1999년 로런스 연구자 폴 에거트(Paul Eggert)는 백낙청의 박사학위논문이 하이데거를 로런스와 연결지은 최초의 사례이며, 동일한 시도를 한 마이클 벨(Michael Bell)의 『D. H. 로런스: 언어와 존재』보다 20년이나 앞선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다. 공간(公刊)되지 않은 학위논문까지 찾아본 서구 학자의 부지런함을 칭찬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의 발견이 이 논문의 실제 내용에 대한 관심과 논의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여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실 본서는 향후 서구의 여러 비평담론들이 내놓게 될 유효한 발상들을 내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런 담론들의 전개과정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된 지금의 시야에서 읽을 때 새삼 두드러지는 많은 통찰들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가령 남녀의 새로운 관계 모색이 문명의 차원에서도 핵심적이라는 로런스의 문제의식을 부각한 것은 페미니즘에서도 주목할 만하며, 『날개 돋친 뱀』의 제3세계적 의의를 처음으로 지적한 대목에는 이후 로런스 비평 안팎에서 전개될 탈식민주의 담론의 요체가 들어 있다. 그렇지만 선생의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로런스의 입장이 이런 담론들의 비판적 시각과 근접한 면이 있으면서도 갈라진다는 점, 즉 살아 있는 구체적 생명으로서의 ‘존재’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현대이론의 관념주의적 접근을 넘어서기를 요구한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특히 현대문명의 향방을 묻는 본론의 작품론이야말로 탈근대주의, 해체주의 등의 시험을 거쳐온 21세기의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유의 물꼬를 트는 도전이 되리라 기대하며, 학위논문에서 깊이 다루어지지 못해 아쉬웠던 로런스의 뉴멕시코 시기 저작에 관한 검토가 선생의 새 저서에서 보강되었으니 이 또한 그 도전에 든든한 힘을 보태리라 믿는다.
 

제자들을 대표해 번역을 맡게 된 네 사람은 길게는 50년, 짧게는 40년 가까이 선생과 사제의 연을 이어온 영문학도들이다. 스승의 영문 저작을 우리말로 옮기는 생광(生光)스럽고도 두려운 작업을 미욱한 역자들은 철저한 협업에 기대어 감당했다. 네 역자가 학위논문을 장별로 배분해 초역했는데, 제1장은 정남영, 제2장 1~6절은 설준규, 7~8절은 강미숙, 제3장은 김영희, ‘에필로그’는 강미숙이 맡았다. 초역은 나누어서 진행했으나 그 결과를 놓고 면밀한 원문대조를 포함한 여러 차례의 상호 교차점검을 실시했으니 최종 결과는 명실상부한 공동작업의 소산이다. 교차점검은 네 역자가 저마다 전체 원고를 검토할 수 있도록 3차에 걸쳐 진행했으며, 점검이 한 단계씩 진척될 때마다 그 내용을 전체토론에 붙이고 결과를 원고에 반영해나갔다. 첫번째 전체토론은 출판사 회의실에서 ‘대면’으로 이루어졌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국면에 들어서면서 이후 수차례는 장시간 원격회의로 대체되었다. 번역 초고가 일단 작성된 다음 저자의 의견을 구할 필요가 있는 사안들을 낱낱이 정리해 선생께 질문하고 그 결과를 반영함으로써 원고를 완성했다. 선생은 제자들의 견해를 대부분 수용하였을 뿐 아니라 몇군데는 원저자주를 추가함으로써 원문을 보완하기도 하였다. 스승의 저작을 제자들이 새겨 옮기는 일 자체가 이미 사제지간의 긴밀한 학술적 공동작업이거니와, 번역원고의 완성 단계에서 그런 작업이 또 실답게 이루어졌으니 역자들로서는 홍복(洪福)이 아닐 수 없다. 스승께 누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에 깜냥껏 정성을 다하였으나 미흡한 점이 적지 않으리라 믿는다. 삼가 독자제현의 매운 질정을 청한다.

학위논문은 『무지개』 『연애하는 여인들』 『날개 돋친 뱀』에서의 인용을 각각 1961년 바이킹(Viking Press)판, 1960년 바이킹판, 1959년 빈티지(Vintage Books)판에 의거했지만, 본서는 1979년부터 연속적으로 출간되어 로런스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판본으로 인정받는 케임브리지(Cambridge University Press)판에 의거했다. 사용판본이 바뀜에 따라 인용문 내용도 미세하게나마 달라졌으나 본문 서술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제3장 제4절 끝부분 한 곳에 판본 변경에 따른 보충설명의 필요가 생겨 한국어판 원저자주를 붙였다.

원저자주 외에도 본서는 책머리에 한국어판 ‘저자의 말’을 실었고, 독자의 편의를 위해 필요한 대목에 옮긴이주를 다는 한편 책 말미에는 로런스 연보를 저자의 새 저서에서 빌려와 덧붙였다.

독어나 불어가 원문이지만 학위논문에서 영어번역본을 사용한 문헌들은 정확한 내용 파악을 위해 원문을 참조하되 번역은 영역본에 준했다. 다만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원문을 좇아 영역본과 달리 옮기기도 했으나 낱낱이 밝히지는 않았다.

선생이 자주 사용하는 역어나 표현을 번역에 되도록 채택함으로써 여타 저술과의 통일성을 기했으며, 외국어 인용문 중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 등에 저자의 기존 번역이 있는 경우에는 필요시 약간 손질해 원용했지만 이 또한 일일이 밝히지는 않았다.

끝으로, 큰 공부의 기회를 주신 선생님께서 오래도록 강건(康健)하시기를 옷깃 여미며 기원함과 아울러, 특별한 번역서 출간의 편집실무를 맡아 애써주신 강영규, 김정혜 두 분께도 각별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2020년 초여름
역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