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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현대문학을 보는 시각

이제까지 펴낸 책들이 모두 그때그때 쓴 글을 모은 것일 뿐인 나 에게 평론선집을 내자는 제의는 사실 부담스러웠다. 네 권의 기간 저서 중 ‘진수’를 뽑아 한 권을 만드는 일이 도대체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그렇게 했다고 칠 때 네 권을 이미 읽어준 독자들은 무어라 할 것이며 가뜩이나 잘 안 팔리는 책을 내준 출판사 쪽의 기분은 또 어떨 것인가. 그런데도 모처럼 새 사업을 시작하고 야심적 인 총서 기획을 세운 임우기형의 간곡한 청을 듣는 가운데 슬그머 니 다른 욕심이 동하는 것이었다. 기왕의 저서에서 일부 뽑아내기도 하되 아직껏 평론집에 실린 적이 없는 글들을 보태고, 무엇보다도 나의 작업에 관한 그간의 논의에서 비교적 소홀히 된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런대로 핑계가 서지 않을까? 아무튼 이런 망설임 끝에 결국 완전한 선집도 전적으로 새로운 평론집도 아닌 이 어중띤 글모음이 엮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이론의 형성과정」이라는 제목의 서문을 써달라는 요구만은 일단 사절하고 싶다. 특별히 그 형성과정을 회고할 만한 무슨 이론이 형성되었는지도 의문이려니와, 아직까지는 지난날을 회고하기보다는 계속 앞을 보며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평단생활 4 반세기가 넘도록 전작 저술 하나 못 낸 필자로서야 너무나 당연한 삼경이 아니겠는가. 다만 전진을 위해 필요한 잠깐의 돌이켜봄은 있음직 하겠기에, 이 책에 실린 글들이 씌어진 배경과 맥락을 설명 하는 몇 마디로써 머리말을 대신할까 한다.

나의 작업에 관한 논의에서 비교적 소홀히 된 측면이라고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다. 불후의 업적을 내고도 당대에 거의 인정받지 못한 경우에 비한다면 나는 일찍부터 넘치는 주목 속에 일해왔다. 반면에 떠들썩한 논란에 비해 정곡을 찌른 비판이 적기로 말한다면 내 작업 중 가장 많은 각광이 비쳐진 대목도 크게 다른 바는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의가 이른바 민족문학논쟁에서 쟁점화 된 몇몇 문제로 집중되었고, 나 자신 민족문학적 작업의 유기적 일부로 생각하는 외국문학에 대한 비평은 마치 별도의 전문영역인 듯 치부되는 경향이었음이 사실이다. 생각건대 이는 나의 민족문학론에 대한 충분한 토의를 처음부터 제한하는 처사이기도 하지만, 민족문학 자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고 본다. 창조적인 문학활동은 그것이 비평의 형태가 되는 창작의 형태가 되든 살아있는 작품의 생명을 체받지 않고 제대로 성립할 수 없는 것이며, 민족문학이라고 해서 인류공동의 유산을 외면하기는커녕 오히려 세계문학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처하고 출발한 것이 우리의 민족문학론이었다.

직업상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나에게 이 문제가 특별히 절실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가 그곳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기까지는 개인사의 우연이 더 크게 작용했는지 몰라도, 귀국 후 다시 우연이 겹쳐 일찍부터 대학 강단에 서고 보니 이른바 전공분야와 이 땅의 현실을 연결짓는 일이 하나의 의식적인 과제로 되지 않을 수 없었다. 60년대 내내 그것은 괴로운 짐으로 남았고 계간 『창작과비평』의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당장은 더욱 허덕이는 삶으로 나간 면도 있었다. 물론 결국은 이 사업과 관련된 여러가지 경험과 각성이 예의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69년에 쓴 「시민문학론」에서 일차적인 정리가 되었다면 되었지만, 다시 유학을 다녀와서 74년에 정치적인 이유로 강단을 떠나기까지, 영문학교수로서 나는 문제의 해결과는 너무나 먼 곳에서 제 구실을 못하고 지냈다.

다만 한국 평단의 한 논자로서는 다시 돌아와서 처음으로 쓴 「문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에서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을 향해 「시민문학론」보다 한걸음 더 다가선 바 있지 않았는가 한다. 미흡한 점 이야 여전히 많지만, 어쨌든 내게는 ‘현장복귀’ 의미를 지닌 글이었고 게다가 70년대 민족문학론의 뿌리가 민중문학론에 있음을 증거해주는 문건이어서 적잖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본격적인 민족문학론 이전이고 내용상 문학과 역사에 대한 원론적 성찰이 많이 담긴 것이므로 이 책의 제1부보다 3부에 넣었지만, 1969~72년의 외유 이후로는 자의로나 타의로나 민족문학의 현장을 떠남이 없이 ‘현대문학을 보는 시각’을 정립하고자 해온 일련의 작업에서 그 기점으로 잡아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1부의 첫머리에는 「민족문학 개념의 정립을 위해」를 두었다. 이 글은 내가 ‘민족문학’을 본격적으로 논한 최초의 예인 동시에 그 무렵 이미 진행중이던 민족문학 논의를 정리하는 데 어느정도 기여한 것으로 공인되어, 근년의 논쟁에서도 자주 언급되었고 내 글 중에 서 이런저런 글모음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품목일 것이다. 그러나 60년대 이래 민족문학의 성과를 자랑삼으면서도 “이렇게 자랑스러운 문학의 전개가 70년대의 중턱에 들어 홀연히 멈추고 말 것인 가?”라고 묻던 당시의 절박감이 요즘의 독자들에게 실감될는지는 모르겠다. 그 뒤로 우리 사회는 훨씬 모진 꼴도 많이 겪었으려니와, 민족문학·민중문학의 기반도 엄청나게 넓어져 왔기 때문이다.

아무튼 민족문학론의 시각에서 서양의 근·현대문학을 살피는 작업에 치중한 본서의 기획에도 역시 감초처럼 끼여들게 되었다. 그러나 서양문학 논의를 위한 전단계로서 민족문학의 개념정립을 시도했다기보다, 서양문학(및 제3세계문학)에 대한 저자 나름의 인식이 애초부터 민족문학 논의의 일부를 이루었음을 유의해주면 좋겠다. 동시에, 본서의 표제논문이 된 「현대문학을 보는 시각」이 거의 같은 시기에 씌어진 일종의 자매편이기도 함을 밝혀두고 싶다.

위의 두 편을 발표한 1974년이 다가기전에 나는 강단을 떠나야했고 대학 바깥에서의 활동에도 많은 제약이 따랐기 때문에, 민주 화운동과 민족문학운동의 현장에서 그날그날 부딪치는 문제를 넘어 세계문학 전반에 걸친 본격적인 성찰을 해볼 겨를이 별로 없었다. 「민족문학의 현단계」(1975)에서 제3세계문학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제3세계와 민중문학」(1979)에서는 구체적인 작품들을 다수 논하기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 목표는 우리 문학과 영국을 비롯한 서양의 문학을 ‘제3세계적 인식’을 갖고 읽자는 것이요, 제3세계 나 라들의 문학 자체를 연구하는 일을 나의 몫으로 설정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서양문학에 대해서도 연구다운 연구를 해낸 것은 아니다. 로렌스의 『무지개』론(「소설 『무지개』와 근대화의 문제」(1978))이 그 무렵의 논문으로서는 유일한 셈이고 「역사적 인간과 시적 인간」(1977) 같은 평론이 서양의 현대문학을 보는 시각의 정립 노력을 민족문학론의 일환으로 삼은 예라 하겠다.

1980년대의 나에게는 ‘70년대 평론가’라느니 ‘70년대적 한계를 못 벗어난 소시민적 민족문학론자’라는 딱지가 따라다니기 일쑤였다. 90년대로 넘어온 점에서 보면 그러한 시류 자체가 ‘80년대적 한계’로 비쳐지는 감이 있지만, 어쨌든 나 스스로 돌이켜보는 80년대에서 온갖 아쉬움을 느낀다 해도 「문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또는 「현대문학을 보는 시각」의 기본적 지향을 견지한 것 자체를 뉘우치는 마음은 없다. 또한 70년대의 수준으로부터 아무런 진전을 못 이루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특히 서양문학도로서 나는 80년 ‘서울의 봄’에 대학에 복직하는 행운을 얻었고 5·17 쿠데타 이후에도 재해직을 면하는 또 하나의 행운을 만났는데,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운수라기보다 수많은 동포의 은공으로 마련된 일자리로의 부름이라고 느낄 만큼은 나도 그간에 철이 들었고 그런 의미로 ‘개전의 정’이 역력했던 셈이다.

그만한 은덕을 입고도 아직껏 전공분야에서 단 한권의 변변한 저서로 보답하지를 못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실로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 다만 70년대에 비한다면, 제3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Ⅱ」의 2부와 4부에 수록된 글들이건 아직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영문학관계 평론이건, 또는 최근의 졸저 『민족문학의 새 단계』 제2부에 모은 짤막한 글들이건, 다소 진전된 성과가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60년대부터 제기했던 리얼리즘의 문제가 이들 논의에서도 일관된 주제로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제목에 ‘리얼리즘’이라는 낱말이 안 들어간 것이 대부분이고 외국 작품들을 다룬 것이 많기 때문에 평단의 리얼리즘 논쟁에서 곧잘 간과되는 사실인데, 가령 본서에 수록한 「리얼리즘에 관하여」와 더불어 「모더니즘에 관하여」(1983), 「모더니즘 논의에 덧붙여」(1985)가 모두 연속되는 리얼리즘론임은 읽어본 독자라면 수긍할 것이다.

책의 제2부를 시작하는 「서양 명작소설의 주체적 이해를 위해」 와 「현대 영시에 대한 주체적 접근의 한 시도」는 각기 똘스또이의 소설과 T.S. 엘리어트의 시(및 시론)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평가를 통해 주체적인 서양문학읽기를 모색한 예이다. 그중 똘스또이는 누구나 알아주는 리얼리즘 문학의 큰 봉우리 가운데 하나로서 그에 대한 언급이 본서 여기저기에 나오는 것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겠지만, 엘리어트에 관한 논의를 리얼리즘과 연결시키는 것은 다소 뜻밖이라 느껴질지 모른다. 첫째 엘리어트가 모더니즘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시인이요, 둘째 시에서 도대체 어떤 식으로 리얼리즘 이 성립될 수 있을지가 아직껏 선뜻 납득되지 않기가 쉽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리얼리즘론과 모더니즘론이 결국 같은 이야기의 안팎을 이루게 마련”이라는 것이 졸고 「모더니즘에 관하여」에서도 밝힌 나의 지론일 뿐 아니라, 엘리어트는 통설 그대로 모더니스트인 일면과 모더니즘을 넘어서는 면모를 동시에 지닌 시인이라는 점에서 리얼리즘 일반에 대한 이해와 함께 특히 시에서의 리얼리즘 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적절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나 자신의 실제 논의가 만족한 해명에 못 미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시에서의 리얼리즘을 해명코자 할 경우, 엥겔스가 장편소설 -그것도 일단 사실주의적인 성격을 띤 장편소설-을 두고 남긴 발언을 무리하게 적용하기보다 예컨대 ‘감수성의 분열’론처럼 시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에서 출발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그리 고 이 작업을 리얼리즘 일반에 대한 끈질긴 관심과 시 특유의 재현 방식에 대한 신뢰할 만한 이해를 갖고 밀고나갈 때, 문득 소설에서도 더욱 진전된 리얼리즘과 리얼리즘론을 내다보게 되리라는 점을 밝히려 한 것이 ‘감수성의 분열’을 재론한 취지였다.

90년대에 들어와서는 리얼리즘론이 자체의 존립을 위해서도 일대 전진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종래의 ‘모더니즘 대 리얼리즘’의 논쟁구도를 ‘모더니즘 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바꿈으로써 리얼리즘을 자동적으로 주변화해버리는 포스트모더니즘론이 점차 위세를 더해가던 도중에,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의 본고장이던 소련·동구 사회의 변혁마저 닥쳐 기존의 사회주의 리얼리즘뿐 아니라 리얼리즘 그 자체가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이다. 이는 또한 민족문학론의 보편성에 대한 일대 도전이기도 하다. 이런 마당에 민족현실의 구체성과 민족문학의 실질적 요청으로부터 동떨어진 기존의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을 고집하는 것은 ‘비판적 리얼리즘’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로 리얼리즘론의 존립에 도움이 못 되며, 그렇다고 리얼리즘의 개념이 빠진 다른 어떤 예술이념이 민족문학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도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본서의 내용 가운데 가장 긴 글이자 가장 근자의 논문인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론」은 대충 그런 취지로 씌어진 것이다. 그 성과야 이제부터 토론이 더욱 활발히 벌어짐으로써 가늠되리라 기대하지만, 적어도 민족문학 논쟁에서 서양문학에 대한 구체적이고 독자적인 비평적 논의를 생략할 수 없다는 점만은 분명해졌다고 믿는다.

제3부를 구성하는 네 편의 글은 1·2부에 비해 이론적 성격이 한층 두드러진다. 그러나 「문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에 이어지는 글이 「인간해방과 민족문화운동」이라는 일종의 운동론 중 마지막 토막이고 네 번째 글은 「지혜의 시대를 위하여」라는 평론 중 실제 작품분석을 담은 끝부분을 떼어낸 나머지라는 사실에서 짐작되듯이, 나의 작업에서 ‘이론적 탐구’와 실제 상황 또는 작품에 대한 ‘구체적 논평’ 사이의 경계선은 극히 모호한 편이다. 그리고 이론작업을 포용하는 비평이 비평의 경지에 미달한 이론작업보다 한 차원 높은 실천이라는 것이 「작품·실천·진리」가 그 나름의 이론작업을 통해 논증하고자 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는 곧 ‘지혜’의 개념으로 이어지고 ‘지혜의 시대’라는 역사의식으로 이어지는데, 나 자신은 그것이 내 나름으로 논리적 엄밀성을 기하며 과학에 대한 존중심에 바탕을 둔 입장이라 믿지만 능력의 한계로 인해 또 얼마만큼은 사안의 성격상 무슨 체계적인 논증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다만 『민족문학의 새 단계』 제4부를 이루는 「학문의 과학성과 민족주의적 실천」(1983) 및 「언어학적 모형과 문학비평」(1988), 그리고 이런 저런 평론 속에 흩어져 있는 발언들까지 상호연관지어 살펴줄 성의를 지닌 독자에게는 좀더 체계 비슷한 것이 잡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추려놓은 열편의 글이 그런 독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게 해준다면 저자로서는 더없이 고맙고 보람있는 일이다.

씌어진 글들이 모두 당면의 시의에 맞추고자 했던 것이므로 집필 연도를 목차에까지 명기했고, 처음 발표된 지면이나 그 후의 수록 상황은 뒤에 따로 일람표로 제시했다. 이 책에 옮기면서 더러 표현상의 잔손질을 한 바는 있으나 그 이상의 수정은 하지 않았다. ‘연보’는 훨씬 더 자세한 것을 주문받았으나, 자작연보 작성이 별로 내키지 않는 심경과 수고해준 발행자 및 편집진에 대한 성의 사이에서 적당히 절충하다 보니 장황한 논저목록 비슷한 것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여러 사람의 보살핌 덕분에 또 한 권의 책을 낸다. 나이가 들수록 내 삶이 은혜 속에 있음이 더 실감되는 것 같다. 그중 제일 가깝고 큰 몫의 뒷바라지에 대해서는 동양의 풍속대로 거명을 생략하고, 덩달아 나머지 분들도 마음속에 고마움을 되새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1991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