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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록] 7권 해설

대전환의 길에 함께하다

이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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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출판된 백낙청 선생의 『회화록』이 모두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일곱번째 『회화록』에 담겨 있는 시간은 더 특별하다. 『회화록』 제7권은 2012년 7월 토크콘서트에서 시작해 2016년 12월 한평아카데미 ‘새 세상 만들기와 남북관계’ 강연 이후의 질의·응답으로 끝난다. 박근혜 당선과 ‘촛불혁명’이라는 두 사건이 『회화록』의 시작과 끝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격동의 한국현대사 가운데서도 극적인 전환의 시기이다.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고 2008년 4월 총선에서 새로 여당이 된 한나라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면서 수구보수동맹이 다시 정치무대의 전면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민주세력은 사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987년 이후 한국 사회가 성취한 성과가 보수정부의 행동을 어느정도는 규율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는 이제 ‘보수야당’의 몰락으로 진보세력이 정치의 전면에 나설 기회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이 시작되면서 그러한 판단에는 심각한 잘못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 위기감은 민주세력의 연합을 촉진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승리와 특히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는 다음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높여주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라는 새로운 옷을 걸친 여권이 승리하며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불안감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같은 해 12월에 진행될 대통령선거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높았다.

『회화록』 제7권은 바로 이러한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총선 패배로 기세가 꺾인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비상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창당한 새누리당이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모습과 함께 ‘시대교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정권교체에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야권보다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선생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선거를 통해서 내년에 새 정부가 출범할 때 그냥 2013년이 아니고 ‘2013년체제’라고 문자를 써서 불러도 좋을 만큼 정말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6권 540면)에 기초해서 선거에 임해야 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이는 비단 격려의 이야기만이 아니고 그러한 바람을 담은 대담한 비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 때만 2012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이기도 했다. 그러나 야권은 그러한 바람을 담을 수 있는 비전과 실천의지를 보여주지 못했고, 대선에서도 패배했다. 불행히도 “2013년 이후에 대한 비전과 준비가 부족하면 2012년 선거조차 못 이긴다. 2012년 총선에 지면 대선도 진다”(본서 97면)고 했던 선생의 총선 전 예측이 들어맞은 것이다. 그럼에도 변화의 전기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는 선생의 모습에서 우리는 분단체제라는 간단치 않은 장벽을 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온 실천적 지식인의 일관된 자세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등장 이후 진행된 변화는 왜 2012년 선거가 진짜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 사이의 선택이었는지를 생생하게 증명했다. 이 시기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의 역주행은 수구보수의 영구집권을 추구하는 훨씬 퇴행적인 체제의 출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야당도 이들의 역주행을 막기는 역부족이었고, 엄중한 위기상황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자중지란에서 벗어나기 못했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를 구한 것은 위대한 시민이었다. 2016년 4월 총선에서는 야권이 분열된 상황에서도 절묘하고 지혜로운 선택으로 정부·여당에 정치적 패배를 안겼다. 그 경고에도 정부·여당의 폭주가 멈추지 않자, 2016년 10월 시작된 촛불시위가 촛불혁명으로 진화하며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는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정치변화를 만들어내었다. 이처럼 극적인 변화의 시기에 진행된 회화들을 담은 『회화록』 제7권의 핵심 주제어는 ‘대적공과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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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대적공과 대전환이라는 화두를 본격적으로 던진 것은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 2013년체제론 이후」(『창작과비평』 2014년 겨울호)에서다. ‘적공’이라는 화두의 제시는 2012년 선거 실패는 기본적으로 실력을 쌓는 노력을 게을리 하고 선거 승리에만 몰두한 탓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선생은 2014년에 들어서 박근혜 정부의 실정이 거듭되면서 시민들의 시대변화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겠지만, “2017년에 정권교체를 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선거중독증에 빠지면 선거도 또 진다는 각성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작업을 각자가 지금부터 시작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곳곳에서 실행하면서 그 기운이 모아져야 선거에도 이기고 시대전환에도 성공할 것입니다”(165면)라며 과거와는 다른 자세로 대전환을 준비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문제는 적공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있다. 적공은 좋은 공부방법을 필요로 한다. 그 때문에 적공을 화두로 던진 이 시기의 회화에서는 다른 시기의 회화보다 올바른 학습태도와 학습방법과 관련한 내용을 더 많이 담고 있다. ‘변혁적 중도’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 그리고 ‘도’ 등 다소 추상 수준이 높은 개념들도 자주 출현한다. 물론 선생의 사상적 역정에 어느정도 익숙한 독자들은 이 개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선생의 사유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도 추상 수준이 높은 이 개념들을 생생한 대화, 좌담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는 점에서 또한 『회화록』 제7권의 독특한 가치가 있다. 선생의 사상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개념들에 접근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추어주는 효용도 갖는다.

제6권 첫머리부터 중요한 주제어로 등장하는 변혁적 중도주의는 서울대 교수 송호근의 인터뷰(166~75면), 「라디오 책다방」 105회(276~302면), 창비 50년사 관련 인터뷰(343~75면) 등 여러 회화에서도 주요 화두로 자리한다. 그중에서도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 54회 「백낙청, 대전환의 길을 묻다」(303~42면)에서 유시민, 진중권, 노회찬 등 당대의 논자들과 오고 간 대화가 흥미롭다. 변혁적 중도주의에 입각해 한국의 정치상황을 분석하고 실천적 대안을 찾는 작업을 해왔던 필자에게는 당대의 이야기꾼들이 변혁적 중도주의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반갑게 느껴졌다. 변혁적 중도주의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뜨겁다고 할 수 없고, 간혹 있던 반응도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았던 저간의 사정 때문이다.

유시민은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공부해온 것과 저희가 겪은 데 비춰 보면 선생님이 쓰신 용어로 ‘변혁적 중도주의’, 그게 맞다고 봐요. 저는 이게 단순히 이론적인 입지로서의 중도주의가 아니고, 늘 중도가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를 이루려면 변혁의 목표와 방향을 명확히 하고, 그 실현방법을 찾을 때는 중도적 관점을 되도록 많이 채용하는 쪽으로 해야만 유능하게 성과를 남길 거라고 생각하고요”(324면)라고 변혁적 중도주의를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선생이 주장하는 변혁적 중도주의의 세세한 내용을 모두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이 회화에서 올바른 실천방안을 찾는 데 필요한 태도나 화두로서의 긍정적 의미에 대한 공감대는 생각보다 쉽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호응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변혁’과 ‘중도’라는 일견 상충하는 개념을 결합시키는 변혁적 중도라는 사유방식 혹은 태도는 형식논리에 갇힌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실천적, 수행적 차원에서 사유할 때는 그러한 결합이 가능하고 또 그리 어렵지도 않다는 점을 이 대화가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라는 화두도 마찬가지다. 이중과제론은 자본주의 근대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것이 갖고 있는 세계체제로서의 특징 때문에 국지적 차원에서는 적응과 극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반도에서는 분단체제 극복이 적응과 극복을 동시에 이루어가는 주요 실천이 된다. 선생은 “분단체제론은 더 차원을 높이면 근대에 대한 이중과제론으로 나가는 것이고, 남한 사회의 실천노선으로 내려오면 이른바 변혁적 중도주의로 가는 것”(364면)이라고 분단체체, 변혁적 중도주의, 이중과제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한다.

그동안 분단체제론에서 변혁적 중도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비교적 많다. 이중과제론은 글로서는 1999년 처음 제시된 이래 선생의 사유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풍부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회화록』 제7권 이전의 10여년, 즉 21세기의 처음 10년이 남북관계부터 한국의 정치문제에 이르기까지 선생이 현장에 가장 긴밀하게 개입했던 시기였다는 점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분단체제에서 변혁적 중도주의로 이르는 사유회로는 적극적으로 작동했던 반면 추상 수준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중과제론에 대한 논의가 뒤로 밀린 것은 아닐까.

그런데 2012년 이후 적공을 본격적으로 화두로 삼으면서 선생은 우리의 기존 사유에 대한 발본적 검토의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변혁적 중도주의에 대한 논의에서도 구체적인 실천방침보다 사유 태도와 방법의 갱신을 더 강조했으며, 미루어졌던 이중과제론에 대한 논의도 더 체계적이고 풍부하게 진행되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 2014년 11월 22일 네이버 ‘열린 연단’에서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연이다.(『회화록』 제7권에 강연 이후에 진행된 토론과 질의·응답만 실린 것이 다소 아쉽다.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강연 전문을 일독해볼 것을 권한다.)

이 토론에서는 변증법을 화두로 유재건 교수와 선생 사이에 오간 대화가 흥미롭다. 유재건은 “이중과제론이 결국은 적응, 극복이 이중적이지만 단일한 과제라는 뜻인데, 과거 70, 80년대 같았으면 변증법적이라고 얘기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용어가 식상한 단어가 되다보니까 더 새로운 사유를 자극하기 위한 과제를 제기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223면)라고 선생의 사유에서 변증법적 성격을 언급했다.

변증법적 사유는 복잡한 현실을 파악하고 실천적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전문화와 계량화 추세가 변증법적 사유를 배제해왔고 이것이 최근 학문이 사회변화를 해석하는 데, 그리고 현실에 맞는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데 무력함을 보이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재건 교수의 저 발언은 단순히 선생의 사유방법에 대한 설명일 뿐만 아니라 변증법적 방법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에 선생은 그런 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맑스의 변증법이라는 것도, 우리가 새로 사유해야 할 동양의 ‘도’ 개념에 훨씬 친숙한 사고방식이 구체화된 형태로서 변증법이 나타나는 것이지 변증법 자체가 기본이 된다면 제약이 많을 것 같아서, 그런 의미에서도 이중과제론의 변증법적 성격을 충분히 인지하지만 그 개념을 앞세우진 않았습니다”(234면)라며 이중과제론이 변증법이라는 방법을 넘어서는 차원의 사유를 포함하고 있음도 암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데이비드 하비와의 대담(435~71면)이 강연록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준다는 사실을 언급해두고 싶다. 이 대담은 두 석학이 맑스 『자본론』의 현재적 의미, 최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변화, 자본주의 세계체제 극복을 위한 실천까지 중요하고도 쉽지 않은 주제들에 대해 나눈 대화이다. 두 석학의 의견이 모이기도 하고 다소 갈라지기도 하는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저절로 풍성해진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대화의 더 중요한 의의는 이중과제론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중과제론이 자본주의 근대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분명히 제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변혁적 중도론이나 분단체제론은 자본주의라는 사회적·경제적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오해가 끊이지 않았다. 이 대화는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선생의 사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귀한 자료이다.

이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중국의 변화와 관련한 논의이다. 백낙청은 “저는 중국이 호랑이한테 먹히지 않고 꼬리를 붙잡고 충분히 오랜 시간을 견딘다면 나중에 활용할 수있는 복잡한 요인들이 중국 내부에 꽤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468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도 이중과제적 사유가 작동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하비는 “저는 중국의 영토 논리와 자본축적의 논리 사이의 관계를 주목할 것을 강조하고, 그들의 영토 논리가 상당 부분 자본축적의 논리에 종속되었다고 생각합니다”(469면)라고 유보적 태도를 보인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자본주의 미래와 관련한 논의에서 중요한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이중과제론과 관련한 논의 중에 나온 ‘도’도 이번 『회화록』의 주요 화두이다. 선생은 『창작과비평』 2015년 겨울호에 「근대의 이중과제, 그리고 문학의 ‘도’와 ‘덕’」이라는 평론을 발표하며 ‘도’라는 화두를 논한 바 있다. 선생은 박윤철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와의 대화(381~425면)에서 이 글을 쓴 배경과 관련해 “〔진은영이〕 친숙한 문학의 토포스, 즉 문학의 공간을 파괴한다든가, 이걸 벗어나서, 새로운 문학적 공간을 벗어나서 개척하는 것을 아토포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저는 그걸로는 미흡하다고 보는 거죠. 비장소를 제대로 말하려면 동양에서 친숙한 표현으로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그런 경지를 사유하는 게 중요한 거고요”(386면)라고 설명한다.

사실 동양철학의 전통에서 도의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특성을 지적한 사람은 이미 적지 않다. 문제는 어떻게 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 있는데, 선생의 사유가 갖는 특징이 이에 대한 설명에서 나타난다. 선생은 “원불교는 처음부터 목표가 이사병진(理事竝進) 아닙니까. 우리 전통 불교에서처럼 이판사판(理判事判) 구분해서 이판이 한 급 높은 걸로 가는 것과는 입장이 조금 다르죠”(388면)라며 ‘이사병진’의 수행을 강조한다. 동시에 “하지만 사실 이사병진하기가 하나만 파기보다 더 힘들잖아요. (…) 공부와 사업을 같이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란 거죠. 가령 조계종 같은 경우는 너무 수좌들의 공부만을 특권시한다고 할까, 그런 것이 폐단이 될 수 있는가 하면 원불교에서는 말로는 이사병진한다고 하면서 어중되게 될 위험이 있는 것 같습니다”(388~89면)라며 그 어려움을 동시에 강조한다. 현실감각과 이론소양을 겸비해야 하는, 나아가 양자 사이의 긴장까지 감당해야 하는 길이니 도에 다가가는 길이 쉬울 리 만무하다. 이는 허명을 좇거나 상아탑 안에 안주하려는 유혹에 시달리는 후학들의 용맹정진을 채찍질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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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록』을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선생의 글에 대한 저자 직강을 들을 기회를 갖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이 없는 이상 대부분 글을 통해서만 탁월한 사상가들의 사유를 접하게 된다. 그들의 글을 읽다보면 해소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때 저자에게 그 의문을 직접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회화록』은 그러한 소망을 어느정도는 실현해준다. 많은 회화가 선생의 책이나 글을 매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인터뷰어나 대담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책이나 글에 대해 던지는 다양한 질문과 이에 대한 선생의 답변은 선생의 사상체계는 물론이고 이 시대의 사상적 지형의 이해를 위한 생생한 자료들이다.

1980년대 중반의 학생운동은 기존의 모든 권위에 도전적이었고 그 세례를 받은 필자는 『창작과비평』이나 선생의 글의 충실한 독자는 결코 아니었다. 필자는 2002, 2003년 『창작과비평』에 글을 발표하면서 어설픈 독자에서 창비담론의 자장 내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후 창비 내의 공부모임에서 처음 선생을 뵙게 되었는데, 첫 만남치고는 꽤 익숙한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명성을 익히 들어온 덕분이기도 하지만 학생운동 시기부터 분단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활동했던 터라 분단체제론 등 선생이 제출한 담론을 친숙하게 느꼈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2004년 『창비』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이후 선생의 사상을 가까이 접할 기회를 갖기 시작했고, 1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지도와 편달을 받았다.

이 인연은 필자 개인에게 큰 행운이면서 한편 지금까지도 아슬아슬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1990년대 중반 짧은 학생운동과 사회운동 경험을 뒤로한 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후 다행히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사실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필자가 중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사회주의권의 붕괴 등 과거의 이상주의가 여기저기서 무너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공부에 확고한 뜻을 세우지도 않고 유학을 떠난 것 자체가 현실도피적 측면이 있었으니 학위를 따고 왔다고 해서 새로운 인생관이 확고하게 수립될 리 만무했다. 자칫하면 앞서 이야기한 허명이나 대학 안의 안락함이라는 유혹에 빠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 무렵 선생과의 만남은 필자가 한국, 그리고 한반도의 현실에 직핍하는 연구와 실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계기와 동력이 되었다. 『회화록』 제7권의 해설이라며 길지 않은 글을 쓰면서도 적공, 특히 선생이 강조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나 공부방법에 계속 손이 갔던 데도 그 배움의 과정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촛불혁명을 거치며 이제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기운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적공이 대전환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번 『회화록』도 ‘새 세상 만들기’를 주제로 하는 회화로 끝난다. 앞으로 갈 길도 결코 가깝거나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선생의 지혜가 앞으로도 그 길을 더 밝고, 더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李南周|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