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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록] 제6~7권 후기

『백낙청 회화록』 다섯권(2007)이 간행된 이래 나는 못난이처럼 이 책을 자랑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나의 개인 저서가 아닌 다수 참여자의 업적이라는 것이 대놓고 자랑하는 명분이었고, 그 업적 하나하나에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은근한 자부심을 돋구었다. 사실 이런 자랑은 『회화록』 제5권의 ‘후기’에서 이미 시작했었다. “나 개인의 업적을 넘어 한 시대의 지성사를 담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는 특정인이 출연한 대담·좌담들을 중심으로 그려진 하나의 단면도(斷面圖)에 불과하지만, 그 점을 감안하며 읽는 독자에게는 그런대로 지난 40년간 우리 역사와 담론현장을 증언해주리라 본다.”(592~93면)

10년이 훌쩍 지나 팔순이 다가오자 후학과 동지들이 기념과 축하를 위한 여러 구상을 내비쳤다. 그중 나는 『백낙청 회화록』 추가 편찬이라는 제안에만 반색했고, 결국 그대로 되었다. 애초의 간행위원인 염무웅·임형택·최원식·백영서·김영희 다섯분에 한기욱 교수가 가세하여 두권을 더 마련하게 된 것이다. 처음 다섯권의 회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비해 한국의 담론현장이 훨씬 넓어지고 다양해졌으니 ‘단면도’의 대표성은 더 한정되었는지 모르지만, 40년에 걸친 다섯권 이후의 10년 사이에 내가 인터뷰어로서 전문가 7인에게 묻는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에 실린 7편과 중복되거나 덜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꼭지 상당수를 제외하고도 두권을 채웠으니 나로서는 꽤 부지런하게 토론하고 회화하는 세월을 보낸 셈이다.

이번 『회화록』의 10년은, 정녕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역사의 유달리 혼탁하고 답답한 시기에 해당한다. 1~5권이 간행되고 얼마 뒤에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로 역주행의 역사와 사익추구의 정치로 얼룩진 아홉해가 닥친 것이다. 다만 그나마 다행이고 어찌 보면 약간의 묘미가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은, 제6권이 이명박 시대 개시 이전의 대화 두 꼭지로 시작하듯이 제7권이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전환이 시작될 무렵의 토론으로 끝맺는다는 점일 게다. 반전과 재반전의 드라마를 내장한 셈이다.

이번 『회화록』 6, 7권이 어둠의 시기에 나도 순응과 타협을 거부하는 쪽에 섰다는 증거는 되어주리라 본다. 나아가 희망과 모색의 기록이기를 바란다. 6권 최초의 본격적 회화인 조효제 교수와의 대담 「87년체제의 극복과 변혁적 중도주의」에서 나는 87년체제의 성취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제는 그 체제의 극복이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가 되었고 이는 이명박 정부가 결코 수행할 수 없는 과제임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소회를 덧붙였다. “이제 그 체제의 시효가 다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은 시점에 왔는데, 이 체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체제를 출범시킬 수 있다면 조교수나 나나 한 생애 살면서 두번의 큰 역사적 과업에 동참하는 자랑스러운 인간들이 될 수 있다고 봐요.”(6권 45면)

이때 나는 그 과업이 5년 후면 이룩될 수 있다고 믿었고 2012년 선거의 해를 앞두고 ‘2013년체제 만들기’라는 기획을 내놓았다. 알다시피 이 기획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으로 좌절되었다. 그리고 이 나라는 그 댓가를 혹독하게 치러왔다. 하지만 이 땅의 위대한 시민들은 대통령의 임기만료를 기다리지 않고 촛불을 들고 일어서서 박근혜를 파면, 투옥했으며 촛불계승의 의지를 공언한 새 대통령을 선출했다. 아직 87년체제 극복작업이 완수되지는 않았지만 조교수와 나 같은 많은 사람들이 예의 ‘자랑스러운 인간들’이 될 전망이 한결 밝아진 셈이다.

87년체제론(및 그 상위 개념인 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 그리고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 남북연합 단계를 경과하는 한반도식 통일 등 여러 주제가 이 대화에 등장하고 6, 7권을 통해 거듭 거론된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심화의 과정이며 설득력을 높여가는 과정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문제다.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요체는 단순히 같은 입장을 되풀이해서 내놓는 것이 아니라 날로 새로워가는 가운데서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일이겠기 때문이다.

2007년의 좌절이 6권의 대부분 내용 이전에 일어난 반면, 2012년의 좌절과 이후의 역사는 7권의 몸통을 이루는 꼴이다. 그래도 내 삶이 시국문제와 시국논의에 압도당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 나의 집념이었고 때로는 시국담 도중에, 더러는 별도의 기회를 포착해서 문학평론가와 인문학도로서의 본분을 수행하고자 했다. 이것이 쉽지 않은 고투의 과정이었음을 읽어내는 독자가 있다면 고마운 일이며 지난 10년, 나아가 『회화록』 전체가 망라하는 지난 50년을 살아온 동시대인이라면 고충의 실감만은 공유하리라 믿는다. 이런 공감과 이해가 있었기에 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끝으로 한층 명토 박아 감사를 드릴 분들이 있다. 애초의 회화에 동참하고 이런 형태의 재수록에 기꺼이 동의해주신 수많은 공저자들, 출판을 맡아준 강일우 대표 등 창비사의 동지들, 백낙청 회화록 간행위원회의 동학들과 해설을 써준 한기욱, 이남주 두분, 그리고 편집의 노고를 다해준 염종선 이사와 박대우 팀장을 비롯한 인문사회출판부의 여러분이다. 1~5권의 내용을 생산하던 시기와 마찬가지로 그후의 10년 동안도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도 고마움과 위로의 말을 전한다.

2017년 6월 백낙청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