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읽기

[회화록]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을 말하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왕상한(진행/서강대 법학과 교수)

* 이 토론은 KBS 1TV ‘TV, 책을 말하다’에서 2006년 6월 19일 방영된 것이다.
 

왕상한(사회) 안녕하십니까? 왕상한입니다. ‘TV, 책을 말하다’가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백낙청 교수가 쓴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입니다. 백교수는 그동안 우리 민족과 남북문제에 대해 깊이있는 통찰을 계속해온 원로학자죠. 6·15남북공동선언 6주년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을 앞둔 지금 백교수가 얘기한 한반도식 통일에 대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책과 함께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나오신 분들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이시죠. 백낙청 교수 나오셨습니다. 백교수님께서는 오랜 기간 동안 통일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오셨습니다. 제가 1998년도로 기억하는데요.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책이 나왔고, 그때 남한은 외환위기로 그리고 북한은 식량난으로 참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났는데, 또다시 우리나라의 통일에 대한 책을 내셨거든요. 이유가 뭘까요? 새로운 통일담론이 필요하다고 보셨습니까?

백낙청 네. 그 책을 낸 이후로 저 나름으로 생각을 발전시키고 또 우리 한반도 현실의 진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을 한꺼번에 써낸 것은 아니고요. 그동안에 그때그때 글을 쓰면서 되도록 일관된 생각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작년 한 해를 지나면서, 그전 책의 제목이 ‘흔들리는 분단체제’인데, 이제는 그런 우리 분단체제가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해체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리고 한반도의 독특한 통일과정이 현재진행형이다 하는 신념을 저 나름으로 굳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올해 들어 그동안 발표한 걸 묶어 제 생각을 한번 세상에 펴내보고 여러분들의 반응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김호기 인문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사회학적인 주제에 가까운 분단과 통일에 대해서 백교수님께서는 1,2년이 아니라 지난 10여 년 동안 꾸준히 연구해오셨고 이것이 사회학자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통일이나 분단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되면 감상적인 접근들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백선생님은 분단체제라는 개념을 포함해서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번째로는 현재 우리의 분단상황이 남한사회, 북한사회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향후 전망, 이런 것들을 우리 사회뿐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서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 의의일 것 같고요. 세번째로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는 통일이 베트남이나 독일이나 예멘과는 다르다는 한국적 특수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제게는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왕상한 그러면 본격적으로 책에 대한 내용을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책에서 통일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통일, 그 개념은 무엇인지요?
 

한반도식 통일의 개념과 그 과정

백낙청 글쎄요. 저희는 6·25전쟁을 어린 나이에지만 직접 겪은 세대 아닙니까? 저는 태어나기를 식민지시대에 태어났고요. 사실 일제에서 해방되었을 때 우리 국민 대다수가 원한 것은 통일된 단일형 국민국가 아닙니까? 다른 모든 나라가 그러듯이…… 그런데 지금도 은연중에 그런 식의 국민국가를 일거에 회복하는 것이 통일이다 하는 생각이 우리 머릿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그것이 그렇게 쉽게 가능한 것도 아니고요. 또 기왕에 그토록 오래 갈라져서 살아왔고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는데 억지로 그렇게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한 거냐 하는 것도 여러 사람들이 의문을 갖는 사항이거든요. 그래서 꼭 그런 식으로 통일하는 것만이 통일이라고 고집할 게 아니라 지금 이 갈라져 있는 상태를 점점 완화해나가면서 가능한 방식으로 한 단계 한 단계 통합해나가는 것이 한반도 특유의 통일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1단계에 대해서는 6·15공동선언에서 이미 남북 정상이 합의를 한 바가 있습니다.

한반도만의 특유의 통일은 무엇일까? 백낙청 교수는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이나 무력에 의한 베트남의 통일, 당국자들에 의한 나눠먹기식 예멘 통일과는 다른 독자적인 형태라고 말한다. 백낙청 교수는 책에서 남북연합의 형태를 제안한다. 남북한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시민이 주도하는 열린 형태의 통일을 먼저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현재진행형이라는 한반도식 통일, 저자는 6·15공동선언이 그런 통일의 들머리였다고 말한다. 양측의 대표는 강대국에 구속되지 않고 남북간에 합의점을 찾아가는 자주적인 통일을 지향할 것을 협의했다. 6·15공동선언 이후 진행되고 있는 남북교류와 공동 추진 작업은 남북연합의 1단계 통일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반도식 통일의 현주소와 미래, 그 모습을 짚어본다.

김호기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제가 보기에는 두 종류의 통일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다분히 민족주의에 기반한, 감상적이고 정서적인 통일지상론, 통일이 최상의 가치라고 보는 하나의 흐름이 있었고요. 또 하나는 통일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사실상 제가 보기에는 정말 이분들이 통일에 관심이 있을까 싶은, 어떤 점에서는 정치적 수사로서의 통일론, 반통일의 통일론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흐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두 가지 흐름과 대비해볼 때 백선생님이 3부작에서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통일론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백선생님 책에도 나와 있는 개념입니다만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주목해봐야 될 것은 우리와 유사한 위치에 놓였던 국가들의 앞선 경험들입니다. 베트남의 경우에는 무력에 의해 통일을 했고요. 독일의 경우에는 흡수통일에 가까운 강제적 성격이 두드러집니다. 반면에 백선생님께서도 책에서 지적하고 계십니다만 예멘에서는 담합적인 통일이 이루어졌는데, 이런 것과 비교해볼 때 우리만의 특수성을 저는 주목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왕상한 교수님께서는 이번에 발표하신 책에서 한반도식 통일이 ‘도둑처럼 오는 통일’이라고 표현하셨거든요. ‘도둑처럼 오는 통일’이라는 표현은 언뜻 듣기에는 그렇게 썩 좋은 표현 같지 않은데요. 이렇게 표현하시게 된 이유가 있는지요?

백낙청 ‘도둑같이 온다’는 것은 아시겠지만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말이죠. 사람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이 자신이 재림하실 때는 도둑같이 올 테니까 깨어 있으라고 하신 건데 ‘도둑같이’라는 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요. 사실은 우리 8·15해방이 어떤 의미에서는 ‘도둑같이’ 왔는데 그때 우리 동포의 많은 사람들이 깨어 있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전쟁을 치르고 불행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통일이 도둑같이 온다고 할 때는 저는 그런 의미로 오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다들 모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되는 그런 통일이 되는게 아니고…… 사실 그건 불행한 통일이 되는 거죠. 그런 게 아니라 조금 아까도 설명했듯이 이게 통일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로 어물어물 진행되다가 어느 날 문득 ‘야, 이거 통일된 거 아니냐? 우리 일단 통일됐다고 합의하자’ 그러면 그것이 1단계 통일이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로 도둑같이 온다는 표현을 써본 거죠.

왕상한 교수님께서 지금 ‘1단계 통일’이라는 표현을 쓰셨거든요. 그러면 2단계, 3단계 통일도 있을까요?
 

1단계 통일로서의 남북연합

백낙청 예. 아무래도 1단계가 국가연합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고 한다면 2단계에 가면 좀더 통합의 수준이 높은 단계가 되야겠죠. 그런데 김호기 교수께서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저 자신도 그 표현을 썼고요. 거기에 한마디 덧붙인다면 이 과정은 종착점이 정해지지 않은 과정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개방적인 과정이죠. 또 실제로 저는 이것을 달리 표현해서 ‘시민참여형 통일’이다. 이렇게 표현해봤습니다. 그것이 사실은 예멘과의 결정적인 차이죠. 사실 베트남은 무력통일이니까 우리에게는 전혀 해당이 안되는 선례이고, 독일식 통일도 우리에게는 상당히 안 맞는다는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예멘의 경우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실 남북간에 협상을 해서, 타협을 해서 통일을 한 거거든요. 그런데 그 과정이 김교수가 말씀하신 것처럼 복잡했죠. 나중에 무력충돌을 했다가 다시 완전통일이 이루어졌지만, 기본적으로는 결국 당국자들간의 담합, 거래에 의한 통일이었습니다. 네가 대통령 하고 나는 부통령 하고 총리는 누가 하고, 이런 식으로 나눠먹기식 통일을 했는데, 우리는 남북간의 대화를 통해서 접근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과정에 시민들이 얼마나 참여하고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2단계, 3단계의 목표가 뭐가 되는가를 그때 가서 정하는 겁니다. 한반도의 주민들이 정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열린 과정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죠.

김호기 한 가지만 덧붙여서 간단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지금 통일의 과정에 있다는 구체적 사례의 하나로서 저는 2년 전에 있었던 송두율(宋斗율) 교수 사건을 들고 싶습니다. 그게 2004년 9월, 10월에 있었던 사건인데요. 저로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던 것이 한쪽에서는 송두율 교수에 대한 이념적인 논란들이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2004년 10월 초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북한 평양에 있는 정주영기념체육관에서 정주영씨를 기리기 위한 남북한 친선 농구대회가 열렸습니다. 사회학자로서 저는 대단한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 한쪽에서는 냉전의 유산을 둘러싸고 이념적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백선생님이 전달하려고 하신 과정으로서의 통일, 일견 보면 모순된 과정이지만 점차 우리 사회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메씨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낙청 남북연합만 형성이 되면 1단계 통일이다라고 제가 주장할 때에 거기에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현실적인 반론으로서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로 봐서 그게 어디 쉽게 되겠냐는 상황판단이 있을 수 있고, 또 하나는 이론상의 문제인데요.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는 국가연합이라는 건 독립성을 갖는 두 국가가 주권을 가지면서 연합하는 거니까 이건 통일로 보지 않습니다. 교과서에는 그게 통일로 되지 않아요. 느슨한 단계라도 연방제 형태가 되어서 하나의 중앙정부가 있을 때, 그 안에 남한 정부, 북한 정부가 상당한 자율권을 행사하더라도 그렇게 됐을 때 비로소 통일이라고 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렇지 않고 남북연합제만 해놓고 통일이라고 하는 걸 보고 ‘말장난 하는 게 아니냐?’ 나쁘게 말하면 ‘사기 치는 것 아니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것도 한반도의 특이한 상황에 비추어서 판단할 문제라고 보는데요. 가령 유럽 같으면 지금 국가연합을 하고 있는 셈이죠. 꽤 느슨한 국가연합이지만 많은 나라가 단일 화폐를 사용하고 있고 주민들의 이동이 자유롭습니다. 거주는 못하더라도 이동은, 여행은 자유롭게 하는데, 남북연합이 됐을 때 과연 그 정도 수준이라도 될까 하면 저는 오히려 그보다 통제가 많은 연합일 것 같아요. 그러면 현재의 유럽연합을 가지고도 통일국가라고 부르지 않는데 어째서 남북연합, 그런 느슨한 연합을 가지고 통일이라고 부르느냐? 그것은 유럽의 통합과정과 한반도의 재통합과정의 역사적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으로, 또 오랫동안 하나의 중앙정부 아래서 수백 년…… 수천 년까지는 아닙니다만 천년이 넘도록 살아오던 민족이 외세에 의해서 억지로 분단이 됐단 말이죠. 그래서 통일을 하려다가 전쟁도 하고…… 그래서 지금도 한반도 중간에 철조망이 쳐지고 지뢰가 묻혀 있지 않으면 언제 통일한다고 터질지 모르는 폭발적인 상황입니다. 이런데 어떻게 남과 북을 슬기롭게 접근시켜서 큰 사고 안 치고 통일하느냐? 이 목표는 이미 합의된 상태에서 그것을 이루려면, 그리로 나가는 과정에서 국가연합을 하는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이 국가연합의 성격이 유럽연합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겁니다. 그래서 국가연합만 이루더라도, 우리가 이미 합의하고 있는 통일을 향해서 결정적인 한걸음을 내디뎠고, 뿐만 아니라 이 과정이 너무 폭발적이서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저는 학술적·이론적으로도 그것을 1단계 통일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왕상한 네. 물론 최근에 있었던 사건들이나 내용을 보면 우리의 통일에 대한 꿈을 더 크게 만드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과연 북한이 통일을 향한 과정을 순탄하게, 또 평화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파트너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일련의 사건들도 있고요. 또 달리 생각해보면 정말로 우리가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해나갈 수 있을 것인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백낙청 남북관계는 현싯점에서…… 작년에 여러가지로 잘 풀린 데 비하면 지금 다시 저조한 상태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방북하시게 되는데 그런 것이 또 하나의 계기가 되어서 어떻게 변화가 올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우려하시는 여러가지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남북관계를 보면…… 제가 ‘어물어물’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또다른 표현을 하나 쓰면 이게 ‘구질구질’하게 진행됩니다. 그래서 쌈빡하게 해결되기를 기대하시면 안되고…… 문제는 북에도 있고 남에도 있는데, 한반도식 통일은 독일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가 하도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므로 우선 남북연합이라는 장치, 통일이 너무 빨리 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예 안되지도 않고 어느정도 순탄하게 진행되어갈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내야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북에서 그래도 조심스럽게 그 방향으로 가고 있고…… 가는 과정에서 내부반발도 있을 테고, 또 거기로 가는 과정에 대해 미국이 어느정도 보장을 해줘야 하는데 그것을 안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오는 차질도 있고요. 그런 문제점들이 있지만 1단계 남북연합제로 가면서 점차적으로 개방하고 개혁하는 것 이외에는 북에도 다른 선택이 없고요. 또 남쪽 입장에서도 그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확 빨리 하려고 해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통일 그만두고 우리끼리 각자 잘 살아보자 해도 잘 살아지지가 않는 그런 상황이라고 판단합니다.
왕상한 교수님 말씀처럼 ‘어물어물’이 됐든 ‘구질구질’이 됐든 또는 ‘얼렁뚱땅’이 됐든 순탄하지 않을 것 같은 건 사실인데, 이런 가능성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어느 날 갑자기 북한 체제가 붕괴가 되었을 때 그것이 우리의 통일을 위한 과정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또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인데요.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의 붕괴 가능할까

백낙청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는 사실…… 세상일이라는 걸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가능하죠. 다만 소련이나 동구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했기 때문에 여기도 붕괴한다는 건 전 생각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 나라들은 독일을 빼면 전부 분단국이 아닌 일단 통일된 국가들이었고, 독일의 경우는 분단되어 있다고 하지만 우리처럼 서로 전쟁을 한 후 엄청난 무력을 가지고 휴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붕괴되더라도…… 그걸 또 꼭 문자 그대로 붕괴라고 볼지도 의문이죠. 왜냐하면 독일사회가 변한 거고 동독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서 선택을 한 거니까 어떻게 보면 붕괴라기보다는 더 질서정연한 변화였다고 볼 수 있는데요.
저는 북의 경우 엄청난 파국이 아니고 질서정연한 붕괴는 불가능하다고 보고요. 또 만의 하나 그런 비상사태가 생긴다면, 우리는 독일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우리가 가서 수습을 하고 통일을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돈도 많이 모아놓고 준비를 열심히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웃음) 그러나 가령 북에서 무슨 비상사태가 났을 때 남쪽이 제일 먼저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미국은 미국대로 생각이 있을 거고, 중국은 중국대로 생각이 있을 거고. 국제법상으로 본다면 지금 중국과 북측은 동맹상태이기 때문에 비상사태가 났을 때 북에서 동맹국을 불러들인다면 중국은 합법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또 가장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어요. 남쪽에서 휴전선을 넘어서 들어간다? 이건 우선 너무나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김호기 예. 그 점에 있어서 저는 좀더 적극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우려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남북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우리가 흔히 남남갈등이라고 얘기하는데, 북한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른 우리 사회의 이념적·사회적 갈등이 존재해왔고 현재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남남갈등 같은 것들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통일의 방법, 통일의 전략에 대한 풍부한 논의, 사회적 합의, 공론화, 이런 걸 이끌어낼 수 있는 계기로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을 통독하면서 받았던 느낌인데, 우리가 적어도 통일문제에 관해서는 조급한 인식보다는 때로는 한걸음 물러서서 한반도 문제 전체를 성찰하는 다소 좀 여유있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북이 어느 날 갑자기, 동구 사회주의가 붕괴하듯 붕괴할 가능성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고 일어나보니까 그 다음날 갑자기 붕괴하는, 이런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바로 그런 것을 위해서라도 통일에 대한 우리의 담론을 더더욱 활발하게 논의하고 숙의하고 정교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왕상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한반도식 통일의 키워드는 분단체제라고 생각합니다. 1994년의 저서도 그러하셨고요. 또 98년의 저서에서도, 이번에 발표한 저서에서도 분단체제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요. 언뜻 들어보면 상당히 쉬운 말인데, 또 언뜻 생각해보면 상당히 어렵게도 들리는 그런 말입니다. 분단체제,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백낙청 네. 그게 쉬운 말이면 안되죠.(일동 웃음) 왜냐하면 우리가 분단을 그냥 멋있게 말하기 위해서, 기분 내기 위해서 체제라는 말을 쓴다면 모를까…… 제가 분단체제를 얘기한 취지를 말씀드리면, 남북의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남북을 아울러서 이것이 일종의 체제가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정도 내화된, 우리 내부의 것이 된 면이 있어서 그 구조를 제대로 인식하고 넘어서려면 남북의 각각 다른 면을 보면서도 둘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 취지의 하나고요. 또 하나는 분단체제라는 것이 한반도에만 덩그러니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역시 세계체제라고 할까 세계 전체가 돌아가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힘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다, 이렇게 봅니다.
 

세계체제의 작동과정으로서의 분단체제

왕상한 교수님께서 쓰신 책의 내용을 잠깐 인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97쪽인데요. “군사독재정권의 타도에서부터 지역주의 타파, 인권신장, 부패추방, 언론개혁, 환경보호, 성차별 철폐, 빈부격차 축소 등등을 위한 수많은 싸움들이 모두 ‘제대로 된 통일’의 필수적 요건이다”라고 적고 있는데요. 다른 내용은 다 공감을 할 수 있는 내용들인데, 그중에서 성차별이라든가 환경문제가 통일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가 궁금해지거든요.

백낙청 거기에서 제가 ‘제대로 된 통일’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아무렇게라도 통일만 하면 된다는 통일지상주의가 아니고 우리가 지금 분단체제 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 체제가 우리 삶의 여러가지 질곡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걸 넘어서서 분단체제보다 나은 체제로 통일을 하자는 의미거든요. 그런 취지에 비춰본다면 성차별문제도 개선되어야 할 거고, 환경문제도 당연히 개선되어야 할 건데요. 그런데 이게 분단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성차별이건 환경문제건 인권문제건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문제인데 다만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것이 드러날 때 분단과도 연관되어서 문제가 가중되는 면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가령 성차별문제 같은 경우도, 세계적으로 남녀차별을 재는 여러가지 척도가 있지 않습니까? 여성들의 사회진출 정도라든가…… 보육시설을 제대로 안해줬을 때 가장 고통받는 게 여성이거든요. 육아를 도맡아야 하니까……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은 남한사회의 경제력이나 문화수준, 교육수준에 비해서 세계적으로 등수가 엄청 떨어집니다. 그러면 이게 왜 그랬을까? 역시 남북대결 구도 속에서 전통적인 남녀 성차별주의 같은 것이 더 힘을 얻고, 그것이 더 깨지기가 힘들지 않느냐? 북측 사람들은 북에는 여성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만, 북의 경우도…… 동독을 포함해서 대개 사회주의 국가는 남녀차별이 많이 타파됐는데, 북이 이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역시 분단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환경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문제는 어느 나라나 다 있는 겁니다만, 우리처럼 이렇게 심각한 것은 남북이 서로 대립하면서 군사주의 문화가 자리잡고 또 개발 가지고 서로 경쟁을 하니까 물질주의적이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히 환경적인 가치가 뒤로 밀리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김호기 세계화라는 것이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지난 20세기에 들어와서 계속 지속된 과정이라고 본다면, 사실상 오늘날 어느 국가건 어느 사회건 안과 밖을 나누기란 아주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있고, 그 동심원 가장 바깥 속에 세계사회가 있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와 세계사회의 상호작용 속에 분단이라는 현실이 미치는 일정한 영향들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걸 잡아내기 위해서 백선생님이 분단체제라는 말을 고안해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달리 말씀드리면 분단체제라는 것은 세계사회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의 프리즘의 역할을 하는데, 저는 그 역도 성립가능하다고, 우리 사회가 세계사회에 영향을 미칠 때도 분단체제가 하나의 프리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부시의 대외정책이 사실 오늘날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경우는 분단이 됐기 때문에 부시의 대외정책에 세계 다른 국가들보다도 더 예민하고 직접적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듯합니다. 또 저는 금융자본의 세계화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초국적 자본의 투자에 있어서도 현재 남북한이 분단의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논란 중 하나인 평택 대추리 문제만 해도 이것이 분단과 연관된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라든지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 이런 것과 사실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들의 의식, 이걸 분단의식이라고 이름지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역시 이러한 분단체제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지만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상당히 낯섭니다. 이것은 다름아닌 분단에서 비롯된 우리 사회의 특수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분단체제라는 개념은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저로서도 나름대로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왕상한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드려보죠. 모 대학 입시에 출제된 문제였는데요. 북한에 우리 정부가 많은 경제지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동시에 우리나라에도 노숙자라든지 실업자와 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지원이 과연 타당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라는 문제가 모 대학 입시에 나왔는데요. 교수님이라면 그 문제를 어떻게 푸시겠습니까?

백낙청 저는 우선 한국경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과 정치적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경제가 너무 많이, 지나치게 개방되어서 국제적으로 신인도가 조금만 떨어진다고 하면 주식시장에서 외국투자가들이 돈 끌어내가고 신용등급이 저하되고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까? 또 지금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을 씁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대기업들의 자산가치가 외국에서 저평가되어 있다는 거예요. 왜 그 가치를 디스카운트해버리느냐? 한국기업이기 때문에,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한반도에 속해 있는 기업이기 때문에 값을 제대로 안 쳐준다는 겁니다. 그러저러한 면을 보더라도 한반도의 안정이 한국경제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보고요. 그 안정을 유지하는 수단의 하나로 경제지원이라든가 이런 것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노동자들이 북한 노동자들과 경쟁해서 여기에 직장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는 세상에 남한과 북한만 있을 때는 그게 통하는 얘기입니다만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가령 북한 개성공단의 노동자들과 경쟁하는 사람들은 우리 남쪽의 노동자들이 아닙니다. 임금격차가 너무 커서 도저히 비교가 안되고요. 이건 중국이나 동남아 노동자들과의 경쟁이에요. 개성공단에 못 가면 그 기업들이 우리 남쪽에 남아 있는 게 아니라 방글라데시에 가고 버마에 가고 어디에고 가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안 가고 개성에 가는 거니까 그렇게 되면 이거야말로 북에도 도움이 되고 우리 중소기업들은 저 멀리 말도 안 통하는 데 가서 관리비 많이 쓰는 것보다 좋고 물류비도 절약되고 그야말로 상생의 길이죠. 그러니까 사실을 놓고 실사구시적으로 봐야지 그런 이념을 가지고 북한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남한 노동자가 더 못살게 된다, 이렇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왕상한 교수님께서는 지금 실사구시라는 말을 하셨는데요. 그렇지만 또 교수님 책을 보면 ‘곳곳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길어야 30년’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는 표현이 있거든요.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지금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고 보시는 건가요?

백낙청 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 경제가 쇠퇴하고 있고 경쟁력이 떨어지고 군사력이나 정치력 가지고 버티고 있다는 것은 세계가 다 공유하는 바이고요. 미국이 엄청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제조업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고…… 그렇다고 내일 당장 망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쇠퇴하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전체적으로 건강할 때는 하나의 패권국이 쇠퇴할 때 후속 타자가 드러나서, 또는 몇 개 후보가 나와서, 가령 독일과 미국이 영국 뒤를 이어서 나타나서 둘이 전쟁을 해서 미국이 이긴다든가 해서 패권국가의 승계가 이루어지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국 스스로가 앞장서서 세계경제 질서를 교란시키고 있고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이제까지 우리가 알아온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수명은 멀지 않았다고 보는데요. 다만 소위 정통 사회주의라든가 맑스·레닌주의를 주장하는 분들은 자본주의가 일정한 모순이 축적되면 망하면서 그걸 통해서 사회주의 사회가 오게 되는 역사의 법칙이 있다고 했는데, 저는 그런 역사의 법칙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자본주의 사회가 경제질서가 교란돼서 언젠가는 무너지면서 더 나쁜 사회, 더 억압적인 사회가 올 수도 있는 거고,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더 사람이 살 만한 체제를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20년인지 30년인지 그런 얘기를 제가 점쟁이도 아니면서 하는 건 허황되다는 소리밖에 듣지 못할 거고, 다만 월러스틴(Wallerstein)이라는 학자가 때로는 30년도 얘기하고, 때로는 40년, 50년 얘기도 하는데 저는 대체적으로 그 얘기는 맞다고 보며, 부시 같은 사람이 나와서 스스로 미국의 국익을 손상시키는 저런 일을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일종의 말기현상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김호기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 같은데요. 백교수님이 말씀하신, 30년 안팎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30년 뒤에 자본주의가 갑자기 붕괴한다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새로운 이행의 시대로 들어간다는 걸로 저는 이해를 했습니다. 이제까지는 우리가 팍스 아메리카라고 하는, 미국 주도의 단일한 헤게모니가 이루어져왔다면 이제부터는 여러 개의 국가들이 경쟁하는 체제로 변화하는 그런 이행의 시대라는 의미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왕상한 오늘날 미국이 취하고 있는 정책노선과 그것이 결국 한반도의 분단체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조금 더 분석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백낙청 미국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또 지금은 여러모로 부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분단체제를 말하는 취지는 분단이라는 게 원래 만들 때는 외세가 강요해서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게 일종의 체제가 되어서 우리도 다 거기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통일과정이 지지부진한 이 모든 것이 미국만의 책임이다, 미국만 몰아내면 해결된다, 이런 생각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그건 단순한 생각이고요. 미국이 우리의 통일과정을 지연시키고 또 힘들게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이미 시작된 현재진행형의 한반도식 통일을 저지할 힘은 없다고 봅니다.
 

‘어깨에 힘 빼고 통일하자’의 참뜻

왕상한 네. 또 한 가지는 교수님께서 지혜로운 민중의 역할을 강조하고 계시는데요. 통일작업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와 사업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또 재미있는 내용을 보면, “각자가 처한 삶의 현장에서 어깨에 힘을 빼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보시는 거죠?

백낙청 제가 ‘어깨에 힘 빼고 통일하자’는 표현을 썼죠. 그런데 운동선수들한테 그런 말을 많이 하죠? 투수가 공을 던지는데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든가 또는 권투선수가 주먹을 날리는데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에 힘 빼고 던지라는 게 살살 던지라는 얘기는 아니거든요. 어깨에 힘을 빼고 던져야지 강속구도 더 세게 들어가고 커브도 더 정교하게 들어가고 그런 거거든요. 그러니까 쓸데없이 헛힘 쓰지 말고 일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가령 투수면 공 던지는 법을 제대로 알아서 던질 때 제대로 던지자는 뜻입니다.
우리는 통일운동이라면 정말 전투적이고 헌신적인, 그런 열렬한 통일운동가만 할 수 있는 걸로 생각합니다. 또 그런 분들이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많은 기여를 하신 것도 사실입니다만, 어떤 타성으로 그분들끼리만 모여서 계속 통일운동을 해요. 그러면서 민중들보고 ‘나와라. 우리한테 와라’, 이렇게 민중을 계몽하고 설득은 하지만, 오히려 지금 단계는 경제협력, 사회·문화교류, 이런 각계각층의 교류와 협력과 접촉이 늘어난 가운데 실질적인 통합이 진행되는 것이고, 또 여기에 직접 나서지 않는 일반 시민들도 통일운동이란 내가 형편이 될 때는 나서고 안될 때는 그냥 지켜보면서 지지해주고, 이렇게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구나 하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렇게 해야지 이 과정이 제대로 힘을 받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깨에 힘 뺍시다’라는 얘기를 한 겁니다.

왕상한 교수님 운동 좋아하십니까?(웃음)

백낙청 제가 중학교 들어갔을 때가 6·25전쟁 전인데 그때는 소년야구라는 걸 했어요. 연식 야구…… 제가 소년 야구부에……(웃음)

왕상한 아, 그러셨군요. 타선은 몇 번이셨습니까?(웃음)

백낙청 그런데 한번도 시합을 못하고 6·25전쟁이 일어났습니다.(웃음)

왕상한 그런 분단의 비극이 또 있으셨군요.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면…… 물론 많은 분들이 우리의 통일을 간절히 원하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부 젊은 층들을 보면서, 비용도 많이 들 수 있고 또 혼란도 많이 예상되는데 ‘그냥 이렇게 살면 안될까?’ 하는 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또 통일을 원하는 분 가운데에서도 막상 통일비용의 분담 문제가 제기된다면 ‘나는 돈 낼 용의가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와같은 혼란 내지는 어떤……

백낙청 혼란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데요. 저는 여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방금 말씀드린 대로 통일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고, 또 그 고정관념을 바로 통일운동 하는 분들이 굳혀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걸 깨야 한다고 봅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그야말로 한반도에는 한반도식 통일이 있고, 이건 진행중이며 누구나 자기 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이 필요하고요. 또 하나는 우리 객관적인 삶의 조건이랄까 그런 문제인데, 분단이 하도 오래 가니까 분단이라는 인위적인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내 생활이 자연스러운 걸로 알게 돼요. 그래서 분단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런데 이 객관적인 삶의 조건은 지금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고 봅니다. 금강산도 가고 개성도 가고 북에서 사람들이 오고 그러니까……
내 얘기를 하나 하면, 외손자가 하나 있는데, 금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제 어머니를 따라서 금강산을 다녀왔어요.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얘 머릿속에 확실하게 입력이 된 것이 있어요. 뭐냐면, 남한이 있고 북한이 있는데 이게 같은 나라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다, 상당히 헷갈리는 상황이 있다는 것이 얘의 경우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에 이미 입력이 되어 있습니다. 그 전 세대는 어릴 때부터 분단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그렇지 않으면 남쪽을 위협하는 무슨 괴물들이 있나 보다 생각하던 세월이 있었죠. 지금부터는 뭔지 모르는데 굉장히 헷갈리는 상황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인식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거듭 강조하는 겁니다만, 통일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편하게 살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는데,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편한 것이지 다수의 사람들은 결코 삶이 편하지 않고요. 또 편하다고 하는 사람도 조금만 통찰한다면 사실은 분단으로 인해서 우리 삶이 굉장히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의 걸림돌은 남북한 주민들의 힘으로 해결해야

왕상한 오늘 이 자리에 백교수님 팬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셨습니다. 교수님께, 혹은 이 책에 대해서 질문하실 분들이 있으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방청객1(조영재·학생)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한반도식 통일이 진행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그 해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백낙청 글쎄요. 걸림돌이 한두 가지겠습니까? 혹시 염두에 두신 게 있어요? 미국문제라든가……

방청객1 네. 북미관계도 그렇고……

백낙청 북미관계가 지금 크게 걸림돌이 되어 있는 건 사실이죠. 이제까지는 핵문제였는데 지금부터는 양상이 좀 달라졌습니다. 핵문제에 대해서는 작년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을 내면서 일단 큰 그림을 제시했습니다. 해법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흔히 말하는 로드맵이라는 것, 이행하는 일정표를 제시하는 일이 남았는데, 그 대목에 가서 미국에서 핵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마약문제, 인권문제, 위조지폐 문제를 제기하고 있죠. 이건 핵문제와 달라서 소위 불법활동에 관한 문제입니다. 핵문제라면 어느 나라가 핵을 가졌다고 그 나라에 미국이 쳐들어갈 권리가 있느냐? 그리고 누구는 핵을 가졌는데 왜 가만 놔두느냐? 이렇게 항변을 할 수가 있는데, 미국이 불법적인 활동에 대해서 규제하겠다고 하면 사실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죠. 증거가 뭐가 있느냐? 또 증거가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냐? 또 이것이 한반도 문제의 전체적인 해결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선에서 하는 길은 없겠느냐? 다만 이렇게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그래서 훨씬 어려워진 건 사실입니다만, 그래봤자 시간이 좀 지연되는 것이지 결정적인 장애는 안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미국으로서도 시간을 끌어서 북이 무너져주면 좋은데 그렇지 않고 점점 더 중국에 가까워지면 좋을 게 없거든요. 그리고 북한문제를 풀지 않으면 미국이 다른 데서 활동하는 데 운신의 폭이 많이 제한됩니다. 이란 문제라든가 이런 데…… 그렇기 때문에 저는 변화가 또 오리라 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남북에서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또 남북 당국도 중요하지만 우리 남북의 주민들, 특히 우리 남쪽의 시민들, 이만한 활동공간과 자유를 확보한 남쪽의 시민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이 과정을 진전시키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방청객2(박운양·통일 서포터즈 동호회) 우리가 통일을 앞두고서 어떻게 보면 서양을 대표하는 미국의 문화와 동양을 대표하는 중국의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교차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이 엄청난 에너지를 우리가 통일을 통해서 승화시키면 인류사회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엄청난 모델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아까 자본주의 체제가 30년, 40년 뒤에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세계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이랄까 새로운 모델이랄까, 그런 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말씀해주시죠.

백낙청 거기에 대해서 제가 무슨 해답을 드리려고 하면 주제넘은 짓이 될 것이고. 지금 질문하신 취지에는 적극 공감합니다. 서양문명이라는 게 자본주의 문명이 전부가 아니고 많은 유산이 있는 것이고, 우리 동아시아는 동아시아대로 문명이 있는 것이지요. 지금 그런 것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만나고 있는데, 한반도가 통일과정을 우리 주민들, 일반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성공적으로 진행한다면 여기서 나오는 엄청난 창의성과 활력이 새로운 인류문명을 건설하는 데도 결정적인 보탬이 되리라고 저는 봅니다. 인류가 지금보다는 더 환경친화적이고, 남녀가 서로 더 존중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고, 또 재화의 분배가 더 균등해지는 그런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통일 한반도가 아주 보람있는, 중대한 공헌을 하는 것을 그리고 있습니다.
왕상한 오늘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 말씀 부탁드릴까요? 김교수님……

김호기 저는 통일의 문제가 다른 나라의 사례와는 좀 다른, 우리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외세에 의해서 분단되었고, 그리고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오랜 통일의 역사적 경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통일한국은 사실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시대사적 과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전지구적인 흐름이나 변화를 보면 현재가 통일한국을 이룰 수 있는 최적기라 저는 생각합니다. 때에 따라서 국민 모두 통일에 대해서 적극적 관심을 갖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백낙청 방금 말씀하신 중에…… 가령 독일은 통일된 것이 우리 역사로 치면 대원군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통일민족으로서 살아온 경험이 우리와는 비교가 안되죠. 그런 우리 민족이 억지로 분단을 당하고, 그러다가 내전을 치르고 나니까 지금 문제가 참 풀기 어렵게 꼬여 있습니다만……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만, 20세기를 통해서 식민지시대를 거치고 독재를 거치면서 많은 댓가를 치렀으니까, 21세기는 그 고생한 보람을 찾는 시기가 되어야 하고, 또 저는 그렇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왕상한 네. 말씀 고맙습니다. 도둑같이 찾아오는 통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해방과 달리 한반도식 통일은 개개인이 주체가 되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6·15남북공동선언 6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한반도식 통일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시각까지 시청해주신 여러분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