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민주당 전당대회에 대한 저의 발언과 천주교정의평화연대의 지지성명
며칠 전에 백낙청TV에서 내놓은 민주당 전당대회에 대한 저의 발언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반박하는 말씀도 더러 있지만요. 그런 가운데 천주교정의평화연대가 지지 성명을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저와 마찬가지로 정파정치 차원의 발언은 안하시는 걸로 알고 있기에 더욱 기뻤지요. 그 단체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공유합니다.
백낙청 선생의 시대 진단을 접하며
-빛의 혁명을 완수하라!
백낙청 선생이 최근 민주당 전당대회를 두고 매우 이례적으로 강한 언어를 사용했다. 그는 이번 전당대회를 단순한 당권 경쟁이 아니라 ‘2기 촛불정부’를 둘러싼 정치적 충돌로 규정하고, 그 결과를 “당내 반란의 진압”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평생 절제된 언어로 한국사회의 변화를 말해온 원로 지식인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그분이 왜 지금 이토록 단호한 언어를 선택했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백낙청 선생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2016~2017년 촛불은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을 교체하기 위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앞으로 옮기라는 시민들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거대한 에너지를 제도와 정치의 구조적 변화로 충분히 연결하지 못했다.
시민이 만들어낸 정치적 공간을 기존 정치세력이 관리하는 데 머물렀고, 검찰, 사법, 언론, 경제 구조를 비롯한 개혁의 과제들은 상당 부분 미완으로 남았다. 결국 우리는 윤석열 정부의 출현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를 단순히 민주당의 네 번째 정부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백 선생의 지적은 중요하다. 이 정부에는 중단되었던 촛불혁명의 과제를 다시 이어가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가 남긴 질문은 ‘누가 누구를 이겼는가’가 아니다.
민주당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당이 되는 것이 답일 수는 없다.
민주정당에는 비주류가 있어야 하고, 이견이 있어야 하며,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어야 한다.
백낙청 선생 역시 이 점을 분명하게 인정한다. 정책과 노선을 가지고 정부를 비판하는 비주류는 오히려 정당의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비판과 권력투쟁은 다르다.
정책을 놓고 경쟁하지 않고 사람을 공격하며, 노선을 놓고 토론하지 않고 지지층을 갈라 세우며, 대통령의 성공보다 차기 권력의 향방을 먼저 계산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비주류 정치라고 부르기 어렵다.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 민주당은 너무 많은 상처를 남겼다. 친명과 친청, 친문과 반문이라는 이름들이 다시 등장했고, 정치인들의 경쟁은 지지자들의 전쟁으로 번졌다.
상대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동지가 적이 되고, 조금 다른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배신자가 되는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백낙청 선생이 ‘원팀’이라는 말 자체를 경계한 것은 역설적으로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원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동의 책임을 지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똑같아질 필요가 없다. 김민석을 지지했던 사람도, 정청래를 지지했던 사람도, 송영길을 지지했던 사람도 민주당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모두가 인정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경선은 끝났다는 사실이다.
승자는 패자를 조롱해서는 안 되고, 패자는 결과에 불복하며 또 다른 전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김민석 대표에게는 승리의 권리보다 통합의 책임이 더 크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40%의 당원까지 품어야 한다. 그것이 대표의 정치다.
동시에 정청래 후보와 그를 지지했던 세력 역시 선거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호남에서 나타난 압도적인 선택을 단순한 지역주의나 조직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백낙청 선생의 표현처럼 그 안에는 정권을 안정시키고 개혁을 계속 추진하라는 당원들의 정치적 판단, 즉 일종의 집단지성이 작동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유시민 작가를 향한 백 선생의 비판 역시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그 논쟁의 핵심에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진보정치는 중도로 가야 하는가, 더 왼쪽으로 가야 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 자체가 낡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백낙청 선생이 오랫동안 말해온 ‘변혁적 중도’에 가깝다.
중도는 적당히 타협하는 정치가 아니다. 중도는 좌와 우의 산술적 중간도 아니다. 사회를 실제로 변화시키기 위해 가장 넓은 시민의 연대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방법이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중도실용주의 역시 그렇게 평가되어야 한다.
경제를 살리고, 불평등을 줄이고, 청년에게 미래를 돌려주고, 지역소멸에 대응하고, 검찰·사법·언론개혁을 완수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낮추고, AI 시대에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권리를 지키는 것.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중도이면서 동시에 가장 급진적인 변화가 될 수 있다.
천주교 사회교리가 말하는 공동선 역시 다르지 않다. 정치는 어느 진영의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공동선을 확대하기 위해 존재한다.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 청년과 노인, 수도권과 지역, 다수와 소수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다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민생으로 돌아가야 한다.
개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시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백낙청 선생의 이번 발언 가운데 우리가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도 결국 이것이다.
촛불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빛의 혁명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광장에서 시작된 변화는 정권교체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더 나은 민주주의, 더 공정한 경제, 더 평화로운 한반도, 그리고 인간이 존중받는 대한민국을 요구했다.
그 과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번 전당대회의 진정한 승자는 김민석도, 어느 계파도 아니다. 승자가 있다면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기 위해 다시 정치에 참여한 시민이어야 한다.
이제 민주당은 그 시민들에게 답해야 한다.
누가 당권을 차지할 것인가의 정치는 끝내고,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가의 정치를 시작하라.
승리한 사람에게는 겸손을,
패배한 사람에게는 성찰을,
대통령에게는 성공할 책임을,
민주당에는 개혁할 의무를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 시민사회 역시 구경꾼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빛의 혁명은 특정 정치인을 위한 응원봉이 아니었다. 권력을 시민의 자리로 되돌려놓으라는 명령이었다.
그 명령은 지금도 유효하다.
2026년 8월
천주교정의평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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