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세계문학론] 전지구적 자본주의화에 대응하는 ‘세계문학운동’

*이 글은 『한결같되 날로 새롭게: 창비 50년사』(창비 2006)에 수록되었습니다―편집자 주

 

윤지관 尹志寬
문학평론가,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 저서로 『민족현실과 문학비평』 『근대사회의 교양과 비평』 『놋쇠하늘 아래서』 『세계문학을 향하여』 등이 있음.

 

창비의 세계문학론은 1990년대초부터 제기되었지만 어느정도 통합적인 담론으로 제출된 것은 『창작과비평』 2007년 겨울호 특집 ‘한국문학, 세계와 소통하는 길’을 토대로 한 『세계문학론』(창비담론총서 4, 김영희·유희석 엮음, 2010)의 발간을 통해서였다. ‘지구화시대 문학의 쟁점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위 특집에 실린 글 세편1)외에 백낙청의 「지구화시대의 민족과 문학」, 한기욱의 「세계문학의 쌍방향성과 미국 소수자문학의 활력」, 유희석의 「세계문학의 개념들: 한반도적 시각의 확보를 위하여」 등 기왕에 『창작과비평』에 발표된 글 가운데 창비 세계문학론을 대변할 수 있는 논의를 비롯해 여러 필자(이석호 윤지관 백원근 방현석)의 새 원고를 함께 엮었고, 특집의 일부였던 윤지관·임홍배의 대담 「세계문학의 이념은 살아 있다」를 부록으로 실었다.

이 책의 서장인 「지금 우리에게 세계문학은 무엇인가」에서 엮은이 김영희는 지구화가 심화되면서 “유럽 중심의 기존 정전에 대한 비판과 세계문학 지형도의 새로운 구축을 향한 시도”들이 일어나는 동시에 “전지구적으로 팽창하는 세계적 상품으로서의 작품들이 이 지형도 자체를 허물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복합적인 국면’에서 세계문학에 대한 질문에는 지구화에 따른 “국민국가의 경계의 약화와 민족/국민문학의 향배, 유럽중심주의 극복과 탈식민의 문제, 문학들 간의 번역과 소통의 문제”를 비롯한 현단계 문학담론의 중요한 의제들이 동반된다. 창비의 세계문학론은 지구화 국면에서 문학의 의미를 다시 묻고 세계문학의 이념과 그 실천이라는 맥락에서 민족/국민문학을 재정초하고자 하는 이론적 모색이다.

창비 세계문학론의 토대는 이 책에 실린 백낙청의 「지구화시대의 민족과 문학」에 축약되어 있다. 이 글은 1994년 국제학술대회의 영어 발표문을 번역한 것으로, 백낙청은 전지구적 자본주의화가 인류의 창조적 유산으로서의 문학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현실에 대응하는 실천으로서 ‘세계문학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족과 문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구화와 더불어 도전받고 있고 국민국가가 과거의 권위를 누리지 못하나, 자본주의 세계체제 자체가 국가간체제를 필수요소로 하는 만큼 민족이라는 엄연한 현실문제에 대응하지 않고는 효과적인 실천이 불가능하다. 비록 자본의 전지구적 지배가 각 민족 문학전통의 급격한 변모 내지 파괴를 동반한다 하더라도 세계체제에 늦게 진입한 민족이나 국가에는 오히려 자신의 민족적 유산을 복원할 필요성과 서구의 근대문학 전통을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그는 지구화가 일정한 단계에 이르렀던 19세기 서구에서 괴테와 맑스가 각기 제기한 세계문학 개념에 주목하고 여기에 내재된 운동적인 측면을 짚어낸다. 이 세계문학 이념이 본격적인 지구화시대에 접어든 현금(現今)에 이르러 더욱 긴요한 것이 되었고 한국의 민족문학운동도 이같은 세계문학운동의 국지적인 실천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이 해외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인 데 비해 좀더 한국문학에 근접한 백낙청의 논의는 그 1년 전에 발표된 「지구시대의 민족문학」(『창작과비평』 1993년 가을호)에서 개진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괴테의 세계문학 개념에 담긴 ‘맑스적’인 의미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괴테의 발상 자체가 단순히 세계 각국의 고전들을 망라하는 어떤 이상적 독서의 대상이 아니라 물질적 여건의 변화를 토대로 이제부터 이룩해야 할 전혀 다른 차원의 실체, 특히 각국 지식인들의 상호교류와 연대활동을 통해 이룩해야 할 새로운 문학을 뜻”한다고 이해하고, 이 지구시대 세계문학운동의 일원으로서 민족문학운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즉 민족문학은 “한반도라는 국지적 현실을 전지구적 관점에서 인식하는 하나의 모형”이 될 수 있으며 실상 1970년대 이후 리얼리즘론이야말로 ‘민족문학의 세계문학적 차원을 해명하는 주된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이상의 입론에서 드러나다시피 세계문학론은 별개의 새로운 담론이라기보다 창비가 그동안 전개해온 민족문학론을 지구시대의 대두라는 새 국면에서 재편성하고 강화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리얼리즘론과 제3세계론, 그리고 분단체제론 등 민족문학론을 뒷받침해온 담론들이 이 세계문학론에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 구도와 맥을 같이하여 한기욱은 ‘쌍방향 교호작용’으로서의 세계문학, 즉 구미 선진문학에서 주변부의 낙후된 문학으로 나아가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근대의 ‘주변’을 형성해온 억압받는 주체들의 ‘밝은’ 눈으로 ‘중심부’ 담론 서사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기도 하는 세계문학운동을 제시하고, 유희석은 나아가서 세계문학을 바라보는 ‘한반도적 시각’을 모색하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지구화시대에 국민문학들 사이에 형성되는 경쟁체제에 주목하고 국지적인 현실 속에서 창출되는 국민문학들의 창조적 요소들을 동원함으로써 유럽 중심의 보편주의를 극복하고 세계문학의 지형을 새롭게 형성할 가능성을 읽고자 하면서 특히 번역의 의미에 주목한 바 있다.2)

창비의 세계문학론은 이상과 같은 이론적 모색과 더불어 세계문학적 시각에서의 한국문학 읽기, 중심부 서구문학의 고전 및 당대 작품에 대한 해석,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주변부문학에 대한 소개와 비평적 관심 등 실제비평으로 논의를 확장해왔고,3) 특히 한·중·일의 문학현실을 토대로 동아시아문학의 지역적 성격이 세계문학의 지형과 맺고 있는 관계를 성찰하였다.4) 이와 함께 2010년대부터 세계문학 번역을 본격화하여 새로운 시각에서 세계문학의 정전을 소개하고 해석하는 ‘창비세계문학’ 씨리즈 간행을 시작하였다.

창비 세계문학론은 2000년대 들어와 국제적으로 학계에서 세계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두된 지구적 문학연구(global literary studies)의 추세에 부응하고 앞으로 그것과의 교섭도 예상되지만, 현재까지의 논의에서도 그 나름의 뚜렷한 특성을 보여준다. 다음의 네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창비 세계문학론은 세계문학에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극복에 기여하는 운동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세계문학은 단순히 세계의 민족문학들의 집합도 아니고 보편성의 이름으로 확립된 유럽 중심의 정전 혹은 그 확장도 아니다. 그것은 지구화의 현실에서 그 동력을 얻되 동시에 그같은 추세가 민중의 삶과 인간의 창조적 가능성을 위협하는 현실에 맞선 새로운 문학의 영역을 구축하는 일을 지칭하며 그런 점에서 세계문학은 하나의 이념이자 실천운동이다. 괴테의 세계문학 개념은 서구 학계의 세계문학 논의에서도 중시되지만, 백낙청이 1990년대초 이를 맑스의 『공산당선언』의 언명, 즉 “일국적 편향성과 편협성은 점점 더 불가능해지며, 수많은 국민문학 지역문학들로부터 하나의 세계문학이 형성된다”는 언명과 결합하여 괴테—맑스적 기획이라고 지칭하고 그 운동적 성격을 강조한 것은 주목된다. 이를 통해 괴테의 세계문학 개념을 자본주의체제 극복운동을 위한 이론적 자원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임홍배가 괴테의 세계문학론을 검토하면서 그것이 근대의 달성과 동시에 근대의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 극복의 전망을 안고 있다고 해석하고 아울러 괴테의 『파우스트』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의 관점에서 읽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이다.5)

괴테와 맑스의 세계문학 기획에 대한 이같은 이해는 창비 세계문학론에서 일관되지만, 그 한계에 대한 지적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도 유의할 만하다. 가령 한기욱은 괴테의 세계문학 개념이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점을 지적하는 한편 맑스에게는 ‘주변부’문학론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이들이 “근대 세계 중심—주변 문학 간의 상호관계라든지 이 양자 간의 ‘쌍방향 교호’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점을 짚는다. 필자는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괴테나 맑스에게 “민족문학들 사이의 경쟁”이라는 개념이 부재했으며 “‘경쟁’과 ‘쟁패’보다 ‘소통’과 ‘교환’을 염두에 둔” 19세기적인 세계문학 전망이 가지는 한계를 짚었다.6) 괴테—맑스 기획에 대한 이같은 의미부여 및 그 한계에 대한 논의는 지구화가 본격화된 국면에서 19세기적인 세계문학의 전망이 세계시장을 무대로 한 지구문학(global literature)의 번성으로 드러나고 있는 현금의 문학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깔고 있다. 창비 세계문학론은 이같은 지구문학의 발흥이 지구화시대에 창조성의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국지현실에 터를 둔 각 국민문학의 창조적 성취들을 토대로 한 소통 및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세계문학운동, 즉 애초의 괴테적인 세계문학 이념을 구현하는 실천을 강조하는 것이다.

둘째, 창비 세계문학론은 문학창작과 미학에서 리얼리즘의 의미를 천착하고 그것을 지구화라는 새 국면에서 재해석한다. 90년대에 지구화가 지배적 흐름이 되면서 담론상으로는 다양성을 내세운 포스트모더니즘이 부각되는 가운데 창비 세계문학론이 모더니즘과의 대립적인 구도에서 리얼리즘의 의미를 재론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극복을 내세우지만 모더니즘적 성취의 ‘깊이’를 희생한 다원론에 침윤된 점에서 모더니즘 이데올로기를 재생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리오따르(J. P. Lyotard)가 말하는 정보사회의 성격을 강조하고 변혁이념을 담지한 대서사의 종언을 내세운다면, 리얼리즘론은 현실을 드러내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변증법적’ 인식과 실천의식을 동반한다. 리얼리즘론은 진작부터 민족문학론과 결합된 미학이념으로, 여기에는 제3세계적 현실에서는 민족해방의 집단적 동력이 문학적 창조력과 맺어져 서구와는 다른 리얼리즘의 성취를 낳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것은 최근 서구에서 성행하는 세계문학 담론에서 민족/국민문학의 특수성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세계문학을 모더니즘으로 설정하는 흐름에 맞서는 태도로, 백낙청은 이같은 논지를 펼친 까자노바(P. Casanova)에 대해 “현대주의의 현대성에 보편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까자노바에게는 가령 ‘근대극복과 근대적응의 이중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민족문학운동과 그에 결합한 리얼리즘 예술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다는 것이다.7) 필자 또한 까자노바의 세계문학 구상에는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특수한’ 민족문학을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모더니즘과 대비시키는 모더니즘 이후 서양의 일반화된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비판하였다.8)

그렇지만 리얼리즘은 서구적 현대성의 미학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모더니즘과의 끊임없는 교섭과 대립 가운데서 갱신되는 면이 있고 지구화시대에 접어들어 새로운 리얼리즘론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이 창비 세계문학론의 입장이다. 즉 백낙청의 표현대로 지구시대에는 ‘눈앞에 있는 현실’과 ‘달리 존재하는 현실’의 뒤섞임이 더 현저해져서 “평면적 사실성과 진정한 리얼리즘의 구별이 더 절실”해졌고, 그만큼 특정한 사실성에 대한 추구가 가지는 의미도 커졌다.9) 따라서 주변부에서 국지적으로 구현되는 지구시대의 현실에 대한 묘사에는 단순한 사실주의로는 획득하기 어려운 복합성이 있기 마련인데, 세계문학의 주변부에서 발흥하는 일종의 제3세계적 리얼리즘에 대한 평가와 논의는 필수적이다. 한기욱은 가령 가르시아 마르께스를 비롯한 중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중심과 주변의 ‘쌍방향적 교호작용’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음에 주목하고, 지구화 국면의 ‘가상현실’의 시대에 모사적 리얼리즘과 변별되는 리얼리즘의 의미, 즉 “주변부 특유의 다차원적 현실과 씨름하는 가운데 전설 설화 꿈 환상 같은 반사실주의적 요소까지 포용”하여 현실의 총체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읽는다.10) 유희석도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을 정독하면서 “지역 특유의 토속성을 세계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사례”로 읽어내고, 이욱연과 백지운은 각각 위 화(余華)와 모 옌(莫言)을 중심으로 역사의식이 동반된 리얼리즘이 주변부 지역의 서사적 전통과 결합하여 특유의 국민문학적 활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국 당대문학을 세계문학의 시각에서 분석한다.11)

셋째, 창비 세계문학론은 서구 이론가들의 세계문학론과 조응하면서 일정한 차별성 및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괴테의 세계문학 개념을 근거로 하는 점은 서구 이론과 마찬가지이나, 괴테—맑스 기획이라는 지칭에서도 엿보이듯 괴테의 개념 자체가 근대가 야기한 근대성의 요소들만이 아니라 근대의 모순에 대한 인식에 근거하고 있음에 착안하고 그 운동성에 역점을 둔 것부터 그러하다. 또 대표적인 서구 세계문학 이론가들인 까자노바나 모레띠(F. Moretti)처럼 월러스틴(I. Wallerstein)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론을 문학논의에 접목시킨 것은 마찬가지이나, 국지현실을 더 천착하여 한반도에 구조화된 분단체제에 대한 인식을 이론에서뿐 아니라 실제 작품읽기에까지 적용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분단체제가 “역사 속에서 형성 변화 중인 세계체제의 한 하위체제인 동시에, 일정한 독자성을 갖고 그 나름의 변동을 겪고 있는 남북한 두 ‘체제’의 특이한 결합이기도” 하기 때문에 분단체제 극복에 기여하는 민족민중문학은 국지적으로 발현되는 체제모순을 드러내고 극복하는 창조적 성취로서 세계문학적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까자노바나 모레띠가 공히 간과하고 있는 주변부 혹은 반주변부의 민족/국민문학적 발현이 새로운 세계문학 창조의 자원이 된다는 것이다. 주변부에서의 창조적 성취에는 서구문학의 근대적 성취는 그것대로 보존하고 활용하면서 동시에 근대체제 자체에 저항하고 그 극복을 도모하는, 말하자면 ‘근대극복과 근대적응의 이중과제’가 구현되고 있다. 비서구 국민/민족문학에는 현재 세계시장의 수요에 부응하는 형태의 ‘시장적 리얼리즘’의 흐름에 맞서서 괴테—맑스적 의미에서의 세계문학을 추동해나가는 힘이 간직되어 있고, 한국문학의 세계화도 단순히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거나 위상을 높이는 차원이 아니라 이같은 세계문학운동의 일환으로서의 방향성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창비 세계문학론은 유럽 중심의 세계문학 지형을 재구성할 수 있는 비서구 지역문학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가운데 동아시아문학에 대한 점검과 사유를 발전시켜왔다. 1990년대초에 대두한 동아시아담론은 당시 냉전종식과 중국과의 수교(1992)에 따라 동아시아로 시야를 열어가는 과정에서 동아시아를 세계체제와 관련지어서 사유하고 형성하고자 하였다. 미국 및 유럽의 바깥에서 동아시아를 하나의 대안적 공동체로 모색하는 가운데 한반도의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운동이 동아시아 민중의 연대와 이어지고 그것이 기존의 패권질서에 균열을 초래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론과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는 동아시아문학론 또한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제기되는데, 최원식은 북한과 대만까지 포함하는 한·중·일 문학을 하나로 묶어 보는 훈련을 통해서 이 지역의 평화구축에 기여하고 나아가서 서구에 대한 문명적 대안으로서 세계문학에 참여할 것을 구상하였다.12)

동아시아문학론을 본격적인 세계문학론과 연동시킨 백낙청은 까자노바가 세계문학의 장을 설명하기 위해 내세운 ‘문학의 세계공화국’이 유럽 중심의 보편주의를 전제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그 불평등구조에 저항할 동아시아 지역문학의 가능성을 거론한다. 과거 유교문명권 내지 한자문명권에 속하는 한반도 및 중국과 일본, 베트남까지 포함하는 동아시아문학은 그 풍부한 문학적 자산에도 불구하고 세계문학의 변방에 위치해 있고 세계시장에서의 위상도 높지 않다. 그러나 공동의 문화유산과 아울러 일정한 경제능력이 뒷받침되는 등 지역문학으로서 발전의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내부적인 격차를 동아시아 연대를 통해 극소화한다면 유럽 중심적인 단일한 문학의 세계공화국이 아닌 다극화된 연방공화국의 미래상에 기여할 전망을 가질 수 있다.13) 필자는 동아시아가 세계체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동아시아문학은 세계문학에서의 위상이 크게 떨어지는 불균형을 보이고 있지만 중심부로부터의 이같은 거리 때문에 오히려 동아시아 지역은 유럽보편주의에 대한 도전과 극복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장소이고, 동아시아문학은 문학의 세계공화국의 패권구도를 해체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본다.14)

창비 세계문학론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지역문학을 구성하고자 하는 구상과 실천은 동아시아가 서구중심주의에 맞서는 또 하나의 패권이 되기보다 괴테—맑스적인 기획에 종사하자는 방향이며 따라서 동아시아 내부의 패권적인 요소와 대립까지 연대와 소통을 통해 극복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 정홍수 「세계문학의 지평에서 생각하는 한국문학의 보편성」; 이욱연 「세계와 만나는 중국소설」; 이현우 「세계문학 수용에 관한 몇가지 단상」.

  2. 한기욱 「지구화시대의 세계문학」, 『창작과비평』 1999년 가을호; 유희석, 앞의 글; 윤지관 「경쟁하는 문학과 세계문학의 이념」, 『세계문학을 향하여: 지구시대의 문학연구』, 창비 2013.

  3. 김영희·백지운·심진경·이현우 대화 「세계문학, 동아시아문학, 한국문학」, 『창작과비평』 2011년 봄호; 『창작과비평』 2013년 겨울호 특집 ‘오늘, 세계문학을 다시 읽다’(필자: 임홍배, 김동수, 유희석, 백지운).

  4. 『창작과비평』 2011년 겨울호 특집 ‘동아시아 지역문학은 가능한가’(필자: 최원식, 윤지관, 백지운, 안천, 한·중·일 작가 5인).

  5. 임홍배 「괴테의 세계문학론과 서구적 근대의 모험」, 『창작과비평』 2000년 봄호; 임홍배 「괴테가 예감한 근대의 이중과제」, 『창작과비평』 2013년 겨울호 및 『괴테가 탐사한 근대』 , 창비 2014.

  6. 한기욱, 앞의 글; 윤지관, 앞의 글.

  7. 백낙청 「세계화와 문학」, 『안과밖』 2010년 하반기.

  8. 윤지관 「세계문학 담론과 민족문제」, 『세계문학을 향하여』.

  9. 백낙청 「지구시대의 민족문학」.

  10. 한기욱, 앞의 글.

  11. 유희석 「‘세계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창작과비평』 2013년 겨울호; 이욱연, 앞의 글; 백지운 「세계문학 속의 중국문학」, 『창작과비평』 2013년 겨울호.

  12. 최원식 「동아시아문학론의 당면문제」,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 창작과비평사 1997.

  13. 백낙청 「세계화와 문학」.

  14. 윤지관 「세계문학에 지방정부는 있는가」, 『창작과비평』 2011년 겨울호.